美 MRO에서 호주로 시선 옮긴 HD현대重, 선두 주자 한화오션에 ‘경쟁 부담감’ 작용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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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SEA3000에 총력 다하는 조선업계, HD현대중공업도 호주 진출 타진
중국발 군사 위협 증대에 美 오커스 방산 지원↑, 호주 방산 사업 날개
저수익에 후발주자 부담감까지, "HD현대重으로선 '신시장 개척'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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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 업계, 특히 HD현대중공업이 호주 함정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초 미국 해군 함정 유지 보수 및 정비(MRO) 시장을 겨냥해 왔으나 호주 시장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미국 MRO 사업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 정비 등에 몰려 있어 수익성이 낮다는 점, 중국과의 지정학적 갈등을 배경으로 호주 정부의 함정 사업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호주 진출 가능성 모색하는 조선 업계

24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업체들은 미국이 아닌 호주와 캐나다, 유럽 등 지역으로의 진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미국 MRO 사업에 집중돼 있던 업계의 관심이 분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주목도가 높은 시장은 호주다. 앞서 지난 7월 호주 퍼스에서 개최된 방산전시회 ‘인도양 방위안보 2024(IODS 2024)’에 국내 조선 업체가 참가해 호주 정부 측과 커넥션을 이어간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 따르면 당시 한화오션은 IODS 2024에 참여해 장보고-III 배치-2 잠수함을 소개했다. 한화시스템 차원에서 무인수상정 해령(Sea GHOST), 대잠정찰용 무인잠수정(ASWUUV), 저궤도 통신위성(LEO Comsat), 해양 유·무인 복합체계(MUM-T) 등 초연결·초지능·초융합 역량을 바탕으로 해안무인체계 토탈 솔루션을 제시하기도 했다. 자사의 최신 무기체계 및 관련 인프라를 부각해 호주 정부의 함정 사업 참여를 타진한 것이다. 최근 호주는 자국의 안작(Anzac)급 호위함을 대체할 호위함을 수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은 MRO보다 호주 함정 사업에 더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HD현대는 IODS 2024에서 울산급 호위함 시리즈(울산급 Batch-Ⅰ·Ⅱ·Ⅲ)를 호주 정부 측에 소개하는가 하면 호주 현지 조선소에 대한 인수 및 합작사(JV) 설립 등 투자를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HD현대 차원에서 호주 사업 참여를 진지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현재 생산 거점을 찾고 있으며,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건 헨더슨 조선소 중 한 곳”이라고 전했다.

호주 정부 ‘SEA3000’ 계획 발표, 중국과의 갈등이 주요 배경

업계의 관심이 호주로 옮겨간 건, 호주 정부가 제시한 사업의 수익성이 더 좋아서다. 미국 MRO 사업은 물량 자체가 비전투함, 단순 정비, 중기 점검 등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에 몰려 있는 탓에 단가가 다소 낮게 책정돼 있다. 이에 대해선 최태복 HD현대 특수선사업부 이사도 “미국이 보내는 사업은 주로 보급선 MRO로, 이는 비용 대비 사업성이 상당히 낮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반면 호주의 함정 사업은 기본적인 단가 수준이 높다. 지난 5월 호주가 발표한 ‘SEA3000’ 사업 계획을 보면 호주 정부는 2034년까지 총 111억 호주달러(약 10조원)을 투입해 11척의 신형 호위함을 구매할 방침이며, 척당 계약 금액만 약 1조원에 달한다. 통상 일반 군수지원함 등의 계약 금액(4,000억~5,000억원)의 두 배 수준이다. 호주 정부의 사업 의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처럼 호주 정부가 방산 사업에 적극적인 배경은 다름 아닌 중국이다. 최근 중국은 랴오닝함, 산둥함, 푸젠함 등 총 3척의 항공모함을 포함해 각급 함정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군사적 위협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군사동맹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회원국인 호주를 대상으로 무기 및 군사기술 수출 규제를 완화하며 본격적인 군사 협력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3월엔 핵잠수함 기술 교환에 대한 내용을 논의했고, 올해 8월엔 핵잠수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핵물질을 호주로 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호주 입장에선 본격적인 군사력 증강을 위한 ‘판’이 마련된 것이다.

중국과의 직접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했단 점도 영향을 미쳤다. 앞서 지난해 11월 UN(국제연합)의 대북 제재와 관련해 지원 작전을 벌이던 호주 해군 잠수부들을 향해 중국 해군이 음파탐지기(소나)를 작동하면서 잠수부들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군의 작전으로 호주군 인원이 직접 부상을 입은 건 사상 초유의 일로, 현지에선 ‘소나 공격’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파급이 컸다. 중국과의 물리적 충돌이 현실화한 만큼 호주 정부로서도 자위적 차원에서 해군 전력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단 의미다. 지정학적 갈등의 심화가 호주를 조선·방산 업계의 ‘블루 오션’으로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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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 ‘MRO 후발주자’ 부담감도 영향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한화오션이 미국 MRO 사업의 선두 주자로서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한 탓에 타 업체의 미국 진출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한화오션은 지난달 22일 미국 해군보급체계사령부와 MSRA를 체결해 미국 MRO 시장에 먼저 진입했다. 한화오션이 MSRA를 신청한 건 지난 1월이다. MSRA 인증이 이뤄지는 데 통상 1년의 기간이 소요됨을 고려하면, 한화오션이 7개월 내 MSRA 인증을 받은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8월에는 국내 조선소로선 최초로 미국 MRO 사업을 수주하면서 K-해양 방산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 한화오션이 수주한 사업은 4만 톤 규모의 미 해군 군수지원함 창정비 사업이다. 이번 계약에 따라 미 해군 군수지원함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입항해 함 전체에 대한 정비 및 검사를 받게 됐다. 또 조선소의 플로팅 설비를 활용한 육상 정비 작업도 수행한다. 사실상 한화오션이 미국 MRO 시장을 선점한 상태란 의미다.

기술 인증 차원에서도 후발주자와의 격차가 벌어졌다. 지난 20일 한화오션은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가스텍(Gastech) 2024’에 참여해 미국 선급 ABS, 노르웨이 선급 DNV, 라이베리아 기국 및 프랑스 선급 BV 등으로부터 친환경 선박 추진 기술 관련 승인을 잇달아 획득했다. 당시 한화오션은 ABS와 정량적 위험도 평가 수행을 통해 암모니아 확산 안전성을 검증받은 후 DNV로부터 국내 최초로 ‘복합재료를 적용한 로터세일’에 대해 형식승인을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미국 진출에 첫걸음을 뗀 수준에 그친 HD현대와 비교하면 상당 부분 앞서 나간 셈이다. 결국 HD현대가 호주 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건 수익성이 낮은 미국 MRO 시장을 한화오션과 나눠 먹기보단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는 판단을 내린 결과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