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산업 성장률 위축, ‘걱정 없다’던 민생 어디에

산업 대출 증가폭 둔화, 산업별 성장률 ‘급감’ ‘우격다짐’하던 정부, 결과는 처참하기만 제 역할 못하는 저축은행, “과한 이익 추구 지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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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분기 산업 대출 증가 폭이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이 기업 대출의 문턱을 높인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직접 금융 위축 여파로 대출 수요가 이어지며 증가세가 지속됐으나 금융기관이 대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며 증가 폭이 축소됐다.

지난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4분기 중 예금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모든 산업 대출금은 1,797조7,000억원으로 지난 분기 대비 28조원 증가했다. 회사채 시장 위축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금융기관 대출을 주된 자금 조달창구로 활용한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박창현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예금취급기관 입장에서 기업 대출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기 때문에 수요에 응답해 대출을 확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별대출금 증감액을 살펴보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모두 3분기 대비 증가 폭이 축소된 경향을 보였다. 지난해 말 기준 제조업 대출 잔액은 454조6,000억원으로 9월 말 대비 4조6,000억원 증가했으며, 서비스업 대출 잔액은 15조9,000억원이 늘어 1,176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제조업은 설비투자 증가의 영향으로 시설자금 증가의 폭이 늘었다. 다만 운전자금 대출은 줄었는데, 이는 연말 일시상환 등 배경적 요인이 영향을 준 결과로 풀이된다. 서비스업 중엔 금융·보험업 대출 잔액이 2조원 줄어 3년 반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자금시장 불안이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업도 지난해 3분기 97,000억원에서 4분기 58,000억원으로 축소됐으며, 도·소매업은 89,000억원에서 48,000억원으로, 숙박·음식점업은 3조원에서 12,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증가 폭이 축소됐다. 전반적으로 대출액 증가세는 여전하나, 증가 폭이 줄어든 모습이다.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라 산업별 성장률이 급감한 데 따른 결과다.

사진=pexels

예견된 성장률 감소세, 경기 침체 그림자 드리운다

대출액 증가에 따른 성장률 감소는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기준금리 인상으로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바 있다. 당시 한은이 발표한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에 따르면 기업대출 금리는 지난해 10월 연 5.27%에서 11월 연 5.67%로 0.4%p, 가계대출은 0.63%p 뛰었다. 약 10년 만에 최고점을 찍은 것이다.

그나마 지난 2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3.5%로 유지하며 1년 만의 숨 고르기에 들어갔으나 경기 침체의 그림자는 떠나지 않았다. 한은은 2021년 8월 금리를 0.25%p 인상한 이후 지금까지 총 3%p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지난해 4월부터 7연속 금리 인상을 단행했으며, 그중 두 번은 빅스텝(0.5%p 인상)을 밟기도 했다.

사실상 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액 폭탄이 코로나19 사태보다 더 심각한 경기 침체를 낳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실제 지난해 12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비금융기업 2만2,388개 사를 분석한 결과 2021년 한계기업의 수는 코로나19 이전보다 23.7%나 늘어났다. 특히 중소기업 내 한계기업 증가세는 25.4%로 중견 및 대기업 내 한계기업 증가세인 15.4%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금리 인상 국면이 완전히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공공요금과 국제유가 등 물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가 예상보다 더 오를 경우 강달러 기세가 이어지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산업 침체가 더욱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

금리 인상 문제없을 거라던 정부, 하지만

당초 정부는 금리 인상이 대출액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견지해왔다. 금리를 인상해도 대출금리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라 대출엔 영향이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당시 한은은 “금리 인상 시 은행 대출금리 파급효과는 은행의 가산금리 인하 등으로 직전 금리 인상 시에 비해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또 “과거 금리 인상기에도 대출금리 파급률은 대체로 하락했다”며 “향후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되더라도 대출금리 파급률은 과거 평균에 가까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 이는 우격다짐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현재 금리 인상에 따라 경기 침체는 가시화되고 있으며, 특히 서민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자영업자들의 불안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한은이 발표한 ‘자영업자의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변동 규모’ 보고서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1%p 오를 때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7조4,000억원씩 늘어난다. 지금까지 금리가 3%p 늘었다면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총 22조2,000억원 불어난 셈이다.

지난 2월 정부 차원에서 대출금리 완화 정책을 내놓긴 했으나 실질적인 체감은 안 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은행별로 대출금리 산정체계가 달라 금리 하락 폭이 제각각인 탓에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대출상품이 뭔지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산 동구 범일동 BNK 저축은행의 모습/사진=네이버 지도 캡처

치솟는 저축은행 대출금리, 고름 지는 서민의 삶

이런 가운데 서민금융기관인 저축은행의 대출금리도 나날이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삶에 고름이 지고 있다. 저축은행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설립됐으나, 정작 지난달 평균 가계신용대출 금리는 연 16.3%로 지난해 말 대비 0.6%p 상승했다.

신규 대출 축소도 문제다. 저신용자들이 저축은행에서마저 거절당할 경우 마지막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제2, 제3 금융권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축은행들이 스스로 과한 가산금리를 붙여 이익을 남기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高(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어려운 상황에서 저축은행이 서민금융기관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최근 금융권은 역대급 성과급 호황을 누리면서 정치권으로부터 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금융권은 임원들에게 통상 임금의 300%를 지급하거나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포인트 수백만원어치를 따로 챙겨 지급했다. 말 그대로 ‘잔치’를 벌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신규 은행 사업자 진입을 촉진하는 정책을 구상하고 나섰다. 진입장벽을 낮춰 신규 사업자를 들여옴으로써 금융권 내 경쟁을 촉진시키겠단 것이다. 이에 대해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취약계층에 도움이 될 방법에 대해 복지가 아닌 은행 차원에서 은행에서 영업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방안을 고민 중에 있다”며 “그런 방법론에서 나온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구상에 민생이 쏙 빠져 있는 건 문제다. 정부가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갈 데 없이 쥐구멍 끝에 몰린 저신용자들이 제2, 제3 금융권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틀어막는 일이다. 지금 정부의 시선은 서민보단 은행에 쏠려 있는 상태다.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보다 다각적인 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