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제작사에 자금 쏟아붓는 VC들, 제2의 ‘재벌집 막내아들’ 꿈꾼다
네이버 계열 콘텐츠 제작사 ‘플레이리스트’, 142억원 규모 투자 유치 성공 좀처럼 식지 않는 콘텐츠 시장 열기, 자체 콘텐츠 제작·IP 확보 역량에 초점 ‘대박 작품’에 기대 거는 투자사들, 관건은 ‘IP’와 ‘OTT 의존 탈출’
종합 콘텐츠 스튜디오 플레이리스트가 알토스벤처스와 하나증권 Club1 WM센터에서 142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투자는 별도의 라운드를 설정하지 않았다. 투자사들은 플레이리스트가 가진 우수한 IP 파이프 라인 및 제작 역량, 누적 구독자 수 1,100만 명 이상의 디지털 채널 영향력 등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레이리스트는 2017년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웹툰과 스노우가 공동 출자해 설립된 콘텐츠 제작사다. 지난해 ‘약한영웅 Class 1’과 국내 첫 쇼츠 드라마 ‘편의점 고인물’ 등을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시장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투자금을 바탕으로 차후 멤버십 서비스 출시, 음악 관련 사업 전개 등 사업 범위를 확장하며 종합 스튜디오다운 면모를 극대화한다는 목표다.
콘텐츠 제작 역량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
플레이리스트는 2019년 알토스벤처스가 단독 참여한 시리즈 A 투자에서 53억원을 유치했으며, 2020년 9월 기존 투자자인 네이버웹툰과 스노우, 알토스벤처스 대상 60억원 유상증자를 진행한 바 있다. 2021년 3월에는 IMM인베스트먼트, 프리미어파트너스, 고릴라프라이빗에쿼티 등에서 25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이번 투자 이후 플레이리스트가 네이버 외부에서 유치한 자금은 총 465억원에 달한다.
수년에 걸쳐 투자사들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은 비결로는 플레이리스트의 콘텐츠 제작 역량이 꼽힌다. 플레이리스트는 원천 지식재산권(IP) 기획부터 제작·유통 등 다방면에 걸친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히트작 드라마를 만든 크리에이터를 대거 보유 중이다. ‘사랑의 불시착’ 등을 제작한 윤현기 플레이리스트 제작1본부장, ‘이태원 클라쓰’, ‘청춘시대’ 등을 제작한 이미나 플레이리스트 제작2본부장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플레이리스트는 드라마부터 음악, 예능 콘텐츠까지 제작 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가는 추세다. 이번 투자를 기반으로 일본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국내외 협력 관계를 늘리며 글로벌 시너지 창출을 노릴 예정이다. 올해 내로 웨이브 오리지널 ‘거래’와 일본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Hulu)의 오리지널로 편성된 ‘플레이, 플리’ 등을 선보인다.
한편 이번 투자를 이끈 알토스벤처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벤처캐피탈(VC)이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쿠팡과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크래프톤 등 수많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을 발굴·육성했으며, 쏘카, 타다, 직방, 지그재그 등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다수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성공적으로 익을 거둔 바 있다.
성장세 굳건한 콘텐츠 시장, 승부수는 ‘IP’
국내 콘텐츠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굳건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콘텐츠 2022년 국내 콘텐츠 산업의 매출 규모는 146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4% 증가했다. 국내 무역수지가 2022년 3월 이후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K-콘텐츠 관련 수출만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하며 무역수지 개선을 견인하기도 했다.
점차 고도화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IP’는 최고의 경쟁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OSMU)’의 매력이 업계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이다. OSMU는 핵심 콘텐츠 하나로 다양한 방법으로 재가공하여 많은 채널에 확산하는 방법을 의미하는 용어다. 하나의 IP를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장난감, 출판 등 광범위하게 재가공하는 ‘디즈니’를 OSMU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OSMU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콘텐츠 노출 증가로 자연스러운 마케팅 효과가 발생한다는 장점이 있다. 콘텐츠 제작사와 플랫폼 기업들이 ‘IP 전쟁’을 벌이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플레이리스트 역시 오리지널 콘텐츠 기획·제작 역량을 보유한 기업인 만큼, 이번 투자를 기점으로 글로벌 IP 경쟁에 박차를 가하며 시장 영향력 확보에 힘쓸 것으로 전망된다.
‘대박 콘텐츠’ 노리고 제작사에 투자하는 VC들
일반적으로 콘텐츠 시장에서의 투자는 콘텐츠 자체, 즉 ‘생산비’ 투자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정부의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도 제작사가 아닌 생산되는 ‘콘텐츠’를 지원하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3년 방송영상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을 통해 올해 방송 시장 대세로 자리 잡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겨냥한 드라마에 총 439억원 규모(장편 드라마 한 편당 최대 3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간혹 작품이 아닌 ‘콘텐츠 제작사’ 자체에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해당 제작사의 미래 수익에 기대를 걸고 자금을 쏟아붓는 것이다. 인기리에 종영한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제작사 래몽래인에 투자한 VC들이 큰 수익을 올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콘텐트리중앙의 자회사 에스엘엘중앙과 래몽래인이 50:50의 비율로 투자해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재벌집 막내아들의 최종회 시청률은 자체 최고인 전국 26.9%, 수도권 30.1%, 분당 최고 32.9%를 기록했다. 2022년 미니시리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입증한 것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대흥행 이후 지난해 10월 말 2만400원 수준이었던 래몽래인의 주가는 11월 25일 3만8,400원까지 치솟았다. 래몽래인의 주가가 뛰자 초기 투자 VC들은 곧장 차익 실현에 나섰다. 래몽래인 3대 주주였던 SBI인베스트먼트는 2020년 9월 50억에 매입했던 주식 52만6,925주(10.56%)를 처분해 약 136억원의 수익을 챙겼다. 메이플투자파트너스도 3년 동안 보유하고 있던 래몽래인 주식 40만 주를 전량 매도해 원금 대비 약 6배에 달하는 115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플레이리스트에 거금을 쏟아부은 투자사들 역시 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대박 IP’를 통한 차익 실현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차후 플레이리스트 성장의 관건은 신선한 자체 IP를 확보할 수 있을지, OTT 플랫폼 상대 ‘방영권 장사’ 외로도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