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조합 ‘수탁 거부’ 해결책, 외면 받는 소형 펀드에 전담 수탁사 생긴다

신한투자증권 및 유안타증권, 전담 수탁사로 최종 낙찰 금융권의 수탁 거부, 라임·옵티머스 사태 이후 펀드 수탁 기준 높아진 탓 수탁 업무 의무화 등 금융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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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이하 협회)가 25일 이사회를 열고 신한투자증권과 유안타증권을 전담 수탁사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선정된 2곳의 수탁사는 벤처투자조합의 규모와 상관없이 0.3% 이하의 수수료율로 수탁 업무를 맡게 된다. 협회는 소속 액셀러레이터(AC)의 수탁 요청을 이들 수탁사와 연결해 주고, 수탁사는 협회의 수탁 의뢰에 적극 협조하기로 협의했다.

이번 전담 수탁사 선정을 계기로 그간 소형 벤처펀드의 수탁사를 찾지 못해 애를 먹던 스타트업 AC와 중소형 벤처캐피탈(VC)의 벤처펀드 모집 및 운용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협회 관계자는 “수탁 배정은 수탁사에 이미 배정된 규모와 우선 수탁 여부 등을 고려하며 두 곳에 배정된 수탁 규모는 투명하게 공개한다”며 “수탁사는 협회가 의뢰한 수탁을 적극 수용해야 하며 수탁 관련 정보의 공유에 성실히 협조해야 한다”고 전했다.

소형 펀드 수탁 거부하는 이유

그동안 금융권은 소형 벤처펀드 수탁에 대해 난색을 보여왔다. 라임펀드와 옵티머스펀드 불법운용 사태 이후 수탁사에 대한 책임논란이 거세지면서, 신탁업자의 사모펀드 등 펀드 수탁 기준이 높아져서다. 신탁업자는 수탁의 대가로 펀드 설정액의 0.05%를 수수료로 받는데, 이 때문에 규모가 작고 수수료도 낮은 소형 벤처펀드는 관리 부담이 늘어난 신탁업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워진 것이다.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는 “만약 수탁 거부 사태가 없었다면 더욱 많은 벤처펀드가 결성돼 글로벌 투자 혹한기 상황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유망 K-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발굴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금융권의 소형 벤처투자 수탁 거부는 유망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AC와 중소형 VC는 어렵게 스타트업 등에 투자할 출자자(LP)를 모집하고도 수탁기관을 구하지 못한 탓에 벤처펀드 결성에 애를 먹고 있다. 벤처투자촉진법상 벤처펀드(개인투자조합은 20억원 이상)는 수탁사 없이 결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자할 사람은 많은데 투자금을 흘려보낼 통로가 막힌 셈이다.

악순환을 끊어 달라는 목소리가 VC 업계와 스타트업계를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서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금융권과 벤처펀드의 수탁업무와 관련한 협의에 나선 바 있지만 합의점 도출이 쉽지 않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울러 중기부는 지난 2020년 벤처투자촉진법을 개정해 벤처펀드 운영 주체를 액셀러레이터와 증권사로 확대하고, 소규모 벤처펀드 결성이 가능하도록 길을 터주는 등 벤처투자 시장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 역시 금융권의 신탁 거부 사태에 직면하면서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한국벤처투자에서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벤처투자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중기부의 ‘벤처펀드 수탁 가이드라인’

앞서 지난해 9월 중기부는 몇 가지 대안을 검토한 바 있다. 먼저 0.03%~0.05% 수준인 벤처펀드의 수탁수수료를 인상하는 방안이다. 금융권 수탁 거부의 가장 큰 이유가 높은 책임 대비 낮은 수익임을 감안해 수수료율을 최대 0.1%까지 올려 금융권의 수탁 참여를 유도하고자 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수탁기관으로 공공기관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현재는 자본시장법에 근거해 수탁업무를 금융권이 담당하고 있지만 벤처투자법을 개정하면 수탁업무를 담당할 기관으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나 기술보증기금 등 중기부 산하 공공기관을 활용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지난 1월에는 주요 신탁은행 등과 벤처펀드 수탁업무 가이드라인 초안에 합의하기도 했다. 사모펀드에 비해 자금세탁 등 불법행위 위험이 크지 않은 벤처투자조합 전체를 대상으로 신탁은행 관리 부담을 줄여 준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아울러 조합의 업무집행조합원과 신탁업자 간의 업무 범위와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수탁업무 과정에서의 업무처리 기준을 포함한 데 이어 운용사는 신탁업자에게 조합 재산 운용 관련 지시 이후 사채권 등 투자 관련 권리증서를 15영업일 이내에 제공하고, 신탁업자는 권리증서를 제공하지 않는 운용사를 중기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운용사와 신탁업자의 업무 기준도 명확히 했다. 이를 통해 금융권의 소형 벤처투자 수탁을 적극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쉬움 남기는 중기부 대책

그러나 중기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에는 금융권에서 기대하던 수수료율 인상 등 획기적인 개선대책은 포함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금융권에 수탁 업무 의무화, 벤처투자업계가 감당 가능한 수준까지 수수료인상, 수탁의무 설정액 완화 등 적극적인 개선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인 간 계약인 수탁계약을 규율하는 등의 부담이 있어 중기부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협회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금융권에 수탁 업무를 의무화하도록 목소리를 내는 등 역할을 해줘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벤처투자 업계가 감당 가능한 수준까지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아니면 수탁의무 설정액을 완화하는 방법을 중기부와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금번 협회의 협력 수탁사 선정은 소형 벤처투자 활성화 개선대책을 위한 좋은 시험 무대가 될 전망이다. 약정 수수료가 종전보다 10배 가까이 올라간 만큼 전담사들의 향후 수탁 규모 및 운용성과 등을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