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내 라스트마일, 하드웨어는 ‘합격’ 소프트웨어는 ‘불합격’

국내 풀필먼트 시스템, 라스트마일에서 부족함 드러내 라스트마일까지 시스템 완성은 종착점이 보이는 상태 궁극적으로 소비자 경험을 개선했는지는 여전히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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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경제 활성화 과정에서 소비자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풀필먼트(Fulfillment)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풀필먼트 시스템이란, 물류 전문업체가 상품의 입고, 포장, 배송 등 판매자를 대신해 주문한 제품이 물류창고를 거쳐 고객에게 배달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국내 풀필먼트 시장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라스트마일 딜리버리에 대한 세부적인 고객 만족도 차원에서 미진함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란 유통업체의 택배 상품이 목적지에 전달되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요소를 뜻하는 말이다. 사실 상품의 종류나 품질은 똑같기에 풀필먼트 시장에서 고객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것은 집 앞에 놓인 물품의 배송 상태와 품질이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왔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즉 속도뿐 아니라 배송 품질까지 신경 쓴다는 확장된 배송 개념을 의미한다. 원래 라스트 마일이란 사형수가 집행장까지 걸어가는 거리를 가리키는데, 유통업에 있어선 고객과의 마지막 접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뜻이 바뀌었다.

K사의 ‘샛별배송’ 시스템, 총체적 난국

문제는 쿠팡, 마켓컬리 등의 신규 이커머스 업체가 수조 원의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시스템이 그리 완벽하지 않다는 데 있다.

A씨는 최근 라스트마일에 주력하고 있는 K사 앱을 이용해 향수 등 화장품 수 개를 새벽에 물품이 도착하는 ‘샛별배송’으로 주문했다. 새벽 1시 40분경 문득 잠결에 집 앞 초인종이 울리는 것을 느꼈지만, A씨는 침대에서 차마 일어날 수 없어 그대로 숙면을 취했다. 이후 아침 7시경에 기상한 A씨는 새벽 1시 40분경에 도착한 안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안내 메시지에는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몰라 배송할 수 없으니 공동현관 앞에 있는 물건 놓는 공간에 상품을 놓았다’는 내용과 함께 택배 기사가 찍은 상품의 사진과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물건 놓는 공간이 원래 반품하는 상품들을 놓는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확인한 A씨는 즉시 내려가 현장의 상품을 찾았지만, 상품은 온데간데없었다. 곧바로 K사 측에 메시지를 보내 문제를 상담하자 “공동현관에 놓는 것이 원칙”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건을 잃어버린 데 당혹감을 느낀 A씨가 재차 문의했으나 K사는 “출입 불가한 사정으로 공동현관 대응 배송된 건은 배송 매니저의 실수로 보기 어렵다”며 “저희 회사가 정확하게 도움을 드리기 어렵다”고 회신했다.

결국 A씨는 아파트 경비실에서 수십 분 가까이 CCTV를 돌려보면서 물건을 누가 가져갔는지 찾을 수밖에 없었다. CCTV를 확인한 결과, K사의 배달 기사는 일단 공동현관에서 출입을 시도했으나 되지 않자 A씨가 주문한 상품을 반품 택배들을 놓는 공동현관에 놓은 다음, 대충 현장 사진을 찍은 후 돌아갔다.

몇 시간 후 다른 택배사의 여성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반품하는 물건들을 수거해가면서 A씨의 상품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A씨는 가까스로 물건을 돌려받았으나 포장이 이미 뜯어져 있었고, 상품도 약간의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항의할 수 있는 채널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진=유토이미지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큰 편익보다 불편 줄이는 데 신경 써야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는 배송 기사의 근무 시간을 줄여 친절배송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것, 배송 박스에 손편지나 스티커 등을 넣는 것, 편의점을 통한 택배 수령 서비스, 공공 인프라를 활용한 무인택배함 서비스 등을 장점으로 꼽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고객에게 큰 편익을 주기보다는 불편한 상황을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것이 라스트마일 딜리버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라스트마일 혁신을 불러온 대표적인 이커머스 회사는 ‘쿠팡’과 ‘마켓컬리’다. 양 사 모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가며 택배 서비스의 수직계열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쿠팡이 지난 수년간 물류 혁신에 투자해왔던 도전의 끝이 보이는 상황에 왔다고 해석한다. 물류설비 및 네트워크 확장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이익을 창출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보여준 데다, 물류설비 확장에서 종착점이 보이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설비 구조와 배달 시스템을 갖추는 것만으로 완벽한 풀필먼트 시스템이라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역설적으로 배달과 반품이 모두 동일 회사에서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A씨와 같은 불편을 겪게 된 것이 그 이유다.

소비자 경험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천억을 투자해 만든 라스트마일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객 경험이 바뀌지 않은, 오히려 택배기사와 반품기사의 사소한 이해도 부족이 고객 경험을 악화시킬 수 있다. 물론 수직계열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만큼, 택배 운영 방침도 직접 정할 수 있게 된 것을 활용해 위와 같은 라스트마일 실패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겠으나, 현재까지는 하드웨어적 시스템을 갖추는 데만 성공했을 뿐 소프트웨어적인 운영 관리 측면이 부족한, 이른바 ‘반쪽짜리 성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고객의 사소한 요구사항을 끊임없이 갖추는 것이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근본적인 도전이라는 것을 라스트마일에 도전하는 이커머스 사들이 이해하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