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취준생의 눈물, 장기 니트족 생기는 원인은 지나친 자기애(愛)?
한국 청년 니트족 비율, ‘이탈리아’, ‘멕시코’ 이어 전 세계 3위 첫 직장이 최고 직장이라는 편협한 사고 탈피해야 화려한 ‘취직용 스펙’ 쌓을 시간에 ‘업무용 스펙’ 쌓는 게 이득
2년 넘게 장기 미취업자 비율이 7년 만에 다시 증가세다. 통계청이 지난 19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미취업자 숫자는 2022년 들어 크게 감소했으나 2년 이상 장기 미취업자는 상대적으로 감소폭이 작은 탓에 전체 비중은 증가했다.
청년 미취업자 숫자는 지난 2년간 33만 명이나 감소했으나 2년 이상 장기 미취업자는 그중 7만2,000명에 불과했다. 전체 청년 미취업자 중 장기 미취업자의 비중은 2020년 25.6%에서 26.5%로 소폭 증가한 셈인데 2015년 27.6%를 기록한 후 7년 만에 다시 26%를 넘었다. 특히 3년 이상 장기 미취업자는 미취업 청년 6명 중 1명꼴인 22만4,000명에 이른다.
청년 니트족, 취업 준비에 걸리는 시간이 1년?
니트족(NEET, 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은 나라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마친 뒤에도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도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낮은 청년 취업률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한국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이탈리아, 멕시코에 이어 OECD 국가 중 3위에 올라있을 만큼 청년 취업난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2020년 기준 OECD 국가의 만 15-29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의 니트족 비율은 20.9%로 23.5%와 22.1%를 기록한 이탈리아, 멕시코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농업 중심의 경제가 사실상 붕괴한 스페인이 18.5%였던 것에 비하면 한국 청년이 얼마나 취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수치다.
3년 이상 장기 미취업자 중 니트족에 해당하는 청년은 올해 8만4,000명으로 2020년 7만1,000명, 2021년 9만6,000명 등으로 청년 숫자가 줄어들고 미취업자가 감소하는 와중에도 수치에 큰 변동이 없었다.
취업 경험이 한 차례 이상 있는 청년들의 평균 취업 준비 기간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약 10~11개월로 나타났다. 대략 1년 정도 ‘취준 활동’을 거쳐 취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OECD가 지적한 황금티켓 신드롬이 낳은 장기 취준생
지난 9월 OECD는 한국 청년들이 ‘황금티켓 신드롬’을 겪고 있다고 경고했다. 청년들이 명문대나 좋은 직장 같은 낮은 확률의 게임에서 승리하면 성공이 보장된다는 착각 속에 빠져 비생산적인 준비 활동에 장시간을 쓴다는 것이다. 취업 준비 활동에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매년 대기업 공채에 도전하는 것 이외에 다른 구직 활동을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 인사 관리 전문가의 해석이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이외에 다른 직장을 가는 것은 ‘패배’라고 해석하고 그 외 직장을 아예 고민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스타트업 인사 담당 관계자는 Z세대 대부분이 취직을 해도 직장을 열심히 다닐 의지가 보이지 않는 악성 직원인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역량이 심하게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급여를 매우 많이 주는 것으로 알려진 직장과 비슷한 처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Z세대 청년들은 이른바 ‘자기애(愛)’가 심한 탓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우승열패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역량보다 더 나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스타트업 인사 담당자는 “운 좋게 대기업 취직해도 길게 못 버틸 실력인데 일을 배우려는 태도는 없고 회사 안에서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구인 공고만 보고 있는 것도 수 차례”라고 밝혔다. “직장에서 일을 배워 실력을 키우고 몸값을 올린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몇 년간 준비해서라도 대기업에 들어가면 갑자기 자신이 매우 일을 잘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침을 놓기도 했다.
시장에서 몸값을 올린다는 개념 도입돼야
전문가들은 한국 취업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 ‘첫 직장이 인생 최고의 직장’, ‘이직하면 동기가 없어서 힘들어’, ‘회사 밖은 야생’과 같은 편협한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취준생과 사회초년생의 애환을 그린 인기 드라마 ‘미생’에서 나왔던 위의 대사들이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는 것이다.
상사 무역을 하는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1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취준 활동을 했던 한 기자는 속칭 ‘언론고시’가 무경력의, 갓 학부를 졸업한 지원자를 주로 뽑는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작은 언론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몇 차례 특종을 터뜨리며 이직을 거친 결과 현재는 국내 1위의 신문사로 알려진 C일보에 재직 중이다. 비슷한 사례로 서울시 내 중·하위권 대학 출신으로 뉴스 통신사 인턴이 언론사 첫 경험인 한 기자는 역시 몇 차례 이직을 거쳐 현재는 국내 1위를 다투는 신문사 중 한 곳인 J일보에 재직 중이다.
이는 기자 직군에만 국한된 사례가 아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국내 서비스가 없는 고급 기술을 배워가며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6년 차 개발자는 최근 자신의 몸값이 1억 대가 아니라 2억 대라는 것을 체감하는 사건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스타트업이 커져 좀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더니 유수의 대기업들에서 최소 연봉 1억5천만원 이상의 제안이 몇 차례 받은 것이다.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 유형과 맞지 않은 인재들이 ‘취준 경력’만 쌓여서는 더더욱 어려워져
한국 청년들은 우수한 복지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특성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기업에 들어가 우수한 인력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도전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한 인사 관계자는 “마치 도쿄대학교 들어가기 위해 15수를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현실에서 보는 느낌”이라는 평을 내놨다.
고교 3년에 흡수해야 하는 지식을 무려 15년을 더 공부해야 흡수할 수 있는 인재를 그 어떤 조직에서도 ‘도쿄대학교’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시대가 온 만큼 구직자들의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취직용 스펙’과 실제 ‘업무용 스펙’이 다른 경우도 많은 만큼 화려한 ‘취직용 스펙’을 만들기 위해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을 헛되이 버리기보다 차라리 ‘업무용 스펙’을 쌓을 수 있도록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업 활동에 도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낫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한 취준생은 “그렇게 ‘3류 기업’ 취직한 기록이 있으면 ‘오염’됐다고 생각해서 대기업 공채를 못 뚫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고 반박하기도 했으나 답변을 들은 인사 관계자는 “어차피 본인 스펙으로 대기업 공채 뚫을 능력이 안 되는 분”이라며 “도전하는 경력을 쌓아서 남들보다 더 나은 경험치가 있어야 30대 중반에라도 대기업 도전이 가능해 보이는 분”이라는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