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직전 기사회생” 규제에 막혔던 ‘디디박스’ 전국 달린다

디지털 광고 배달 오토바이 ‘디디박스’ 사업화 막는 규제에 난항 겪어 교통안전 이유로 행안부 반대 속에 사업화 좌절, 두바이 진출을 위해 준비하기도 스타트업계, 말뿐이던 규제샌드박스 확대 시행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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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라이더 업계는 배달 중인 상품에 대한 상세 정보가 전혀 없는 이륜차(이하 ‘오토바이’)로 상품 배달이 이뤄져 왔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상 도로 교통수단은 전기나 발광방식의 조명을 이용하는 광고물 부착이 금지돼 있어, 배달 오토바이가 판매 상품에 따라 다른 로고가 붙은 형태로 제작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륜차용 디지털 광고 배달통 ‘디디박스’는 지난 정권에서 ‘실증특례 1호 기업’으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광주·전남에서 2년간 디디박스를 최대 100대 운행할 수 있다’는 제한적 허가에 발목이 묶여 있었다. ‘디디박스’를 운영하는 뉴코애드윈드는 규제샌드박스 심사를 거치던 지난 3년간 빚더미에 올랐고, 사실상 사업을 접어야 하는 위기에 여러 차례 봉착해왔다. 규제샌드박스 관할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법령의 취지에 어긋나는 사업이 아닌 만큼 디디박스에 우호적이었으나, 교통안전을 우려한 행정안전부의 반대 속에 사업성 없는 단순 오토바이 배달 서비스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디지털 광고 배달 오토바이, 교통안전 이유로 행안부 반대 속에 사업화 좌절 겪어

23일 ICT 규제샌드박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실증특례 지정조건 변경 승인’ 공문을 통해 디디박스에 사업화의 길을 열어줬다. 뉴코애드윈드의 장민우 대표는 “부처 간 핑퐁게임만 쳐다보다 죽어가는 신세다. 규제샌드박스는 기업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모래밭이 아니라 스타트업처럼 작은 기업들을 잡아먹는 개미지옥”이라며 규제가 없는 해외로 본사 이전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정부 관계자는 “규제샌드박스라고 해서 무작정 풀어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부처별 입장과 타 경쟁사의 입장을 들어보는 시간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한 스타트업 관계자 A씨는 “정부가 ‘뻘짓’만 안 해도 할 수 있는 사업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배달통에 로고 변경하는 사업 가지고도 이렇게 괴롭히면 더 도전적인 사업은 어떻게 되겠느냐”며 “한국은 황당무계한 이유로 사업 못하게 하는 온갖 어이없는 법령이 널린 나라”라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해당 해외 투자업체의 지분 투자를 끌어내며 현재 해외로 본사 이전을 확정한 상태다.

정권 바뀌며 분위기 급반전, 1만대까지 시범 운영 허용

이번 과기부 공문에 따르면 행안부는 국한했던 디디박스의 운영 범위를 서울·경기 및 6대 광역시와 제주도로 대폭 확대했다. 운영 대수도 100대에서 최대 1만대로 무려 100배 늘렸다. 여전히 부족한 숫자라는 것이 배달업계 관계자의 평이지만, 전국 서비스가 가능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성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개인 의견을 덧붙였다. 2024년 2월까지 디디박스로 인한 직접적인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1단계 2,300대, 2단계 8,000대, 3단계 1만대로 서비스 확장을 할 수 있도록 허가가 난 상태다. 서비스 가능지역은 서울·경기·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제주로 제한된다.

장 대표는 규제가 대폭 풀린 만큼, 당초 추진하던 UAE(아랍에미리트)로의 본사 이전은 보류하고 국내 실증특례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다만 독일 딜리버리 히어로(DH)와 손잡고 진행해온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배달앱과의 협업은 더욱 속도를 낸다.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디디박스를 통해 지역 영세 음식업체의 광고 기회를 확대하고 종이 전단지 감소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일 것”이라며 “수수료에 의존하는 배달플랫폼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해 배달생태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뉴코애드윈드

스타트업계 규제샌드박스 확대 환영, 기업가 정신 꺾지 않는 정부 되기를

해외이전처 조사로 바쁜 A씨는 “규제샌드박스가 확대 시행되어서 다행이다. 겉으로만 규제 해소를 떠들던 기존의 태도를 바꾸고, 적극적으로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평을 내놨다. 규제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국내 U-턴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이미 투자가 진행됐다”며 국내 시장으로 돌아올 계획이 없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2014년 우버의 한국 진출을 도왔던 관계자 B씨는 “디디박스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며 “서울시, 국토교통부가 허가를 내주지 않고 계속 말 돌리기, 담당자 전화 피하기, 여론전, 노조 시위 등을 직면해야하는데 누가 한국에서 스타트업하고 싶겠냐”는 불평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이번 디디박스의 사정을 전해 듣고는 “지난 몇 년간 정말 말도 안 되게 힘드셨을 것”이라며 “놓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셨을 텐데, 꾹 참고 기다리신 것만으로 이미 승리자”라고 응원하기도 했다. 이어 “에이버인배 같은 스타트업이 한국에 나왔으면 같은 규제로 시작도 제대로 못 하고 망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한국의 황당한 규제 때문에 한국을 버리지 않도록 공무원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정부의 그간 결정을 에둘러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