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혹한기가 불러온 일자리 대란, 고용지표 악화 수순 밟는 韓
지난해 벤처·스타트업, 5만6,000여 명 일자리 창출 그럼에도 명백한 하락세, 원인은 무엇? 고용지표 악화되어 가는데, 정부는 뭐하나
지난해 국내 3만3,000여 개 벤처·스타트업들이 5만6,000여 명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 일단 채용이 증가하긴 했으나, 명백한 하락세다. 특히 올해 들어 벤처·스타트업의 고용이 더욱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벤처투자 혹한기가 닥쳐오며 투자 유치가 어려워진 스타트업들은 폐업하거나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에 따라 실제 반기 기준 고용지표는 하락장으로 가고 있다.
23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2년 벤처·스타트업 고용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벤처·스타트업 고용 인원은 74만5,800명이다. 이는 전년 대비 8.1% 증가한 수치이나 정작 같은 기간 전체 기업의 고용 규모는 2.4%에 그쳤다. 특히 자본금 대비 10% 이상의 투자를 받지 못한 벤처·스타트업의 경우 고용 증가율이 더욱 저조했다.
벤처·스타트업 고용률 저하는 청년·여성층에서도 곧이곧대로 나타났다. 청년 고용은 2022년 중반 20만4,437명에서 2022년 말 19만7,582명으로 3.35% 줄었다. 여성 고용 또한 2022년 중반 24만9,411명에서 2022년 말 24만3,105명으로 2.53% 감소했다. 물론 전년 동기와 비교해보면 청년 고용은 3.6% 증가했으나 올해로 접어들수록 고용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기 기준 지표 악화도 눈에 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벤처·스타트업의 고용 인원은 76만1,082명을 기록했다. 하반기에 들어 1만5,282명이나 감소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기부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들어 경기가 안 좋아져 구조조정 등이 고용지표에 영향을 줬다”며 “벤처기업 인증제도 개편으로 벤처기업 수 자체가 3만4,362개에서 3만3,045개로 줄어드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벤처기업 수 감소만 문제는 아냐
그러나 벤처기업 수의 감소만이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실질적인 문제는 ‘벤처기업’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에도 관련 인증을 받아내 국가의 녹을 얻어먹고 사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벤처기업’이란 본디 ‘실패할 위험성은 높으나 성공하면 큰 수익이 기대되는 첨단 기술을 갖고 소수의 사람이 일으킨 중소기업’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벤처기업=각종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며 너도나도 벤처기업으로 인증받기 위해 달려드는 모습이 쉬이 포착된다.
자격 없는 벤처기업의 경우 고용이 상대적으로 더 줄어드는 경향이 강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력 있는 기술을 제대로 갖춘 것도 아니고 기술력 있는 인재를 제대로 뽑아본 적도 없는 기업이 고용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을 만한 수단은 단 하나, 구조조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시절 진행됐던 ‘디지털 청년 일자리 사업’의 종료가 고용지표 악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예산 규모 5,610억원이 투입된 디지털 청년일자리 사업은 청년들의 디지털 기반 일자리를 늘리고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고용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단 취지로 시작됐다. 그러나 실상은 청년들에게 내실 있는 커리어를 형성해주기보다 임시직 일자리만 대규모로 양산해내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보조금마저 끊겼으니 양산형 일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들이 무더기로 해고되는 경향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속되는 고용지표 악화, 지금 필요한 건
최근 벤처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며 고용지표 악화도 점차 심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애그테크(Agtech, 농업 IT) 스타트업 그린랩스는 지난달 13일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접수, 구조조정에 나섰다. 당초 그린랩스는 지난해 1월 1,700억원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8,000억원을 인정받았다. 이 덕에 그린랩스는 농식품 분야의 차기 유니콘 기업으로까지 거론된 바 있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농산물을 구매한 뒤 되파는 과정에서 미수채권을 채우는 금융사 대출이 어려워지며 ‘자금경색’이 발생한 탓이다.
국내 MCN 샌드박스네트워크 역시 지각변동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샌드박스는 지난해 11월 사업·인력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샌드박스는 2021년 영업 적자 121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이 침체기에 빠지자 소비자들이 일제히 소비를 줄인 결과다. 당초 대규모 투자금을 바탕으로 몸집을 키우던 샌드박스는 추락의 반동도 거세게 받아내야만 했다.
타 투자사 혹은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실제 투자 유치도 거뜬히 해내던 스타트업·벤처기업도 흔들리는 시기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나라의 녹 받아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이상한’ 기업들이 버텨내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처사다. 올 상반기엔 채용률이 지난해보다도 더욱 가파르게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비해야 할 때다. 정부는 무작정 돈 뿌리기에만 열 올릴 게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을 더욱 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