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협 “초진 환자 비대면 진료 금지하면 줄도산” 주장, 비대면 진료 제도화 어디로 흘러가나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초진 환자 비대면 진료 금지 시 관련 업계 80% 줄도산” 주장 주요국 중 초진 환자 비대면 진료 제한하는 국가 전무, 글로벌 흐름 역행하나 누적되는 논란과 충돌, 플랫폼 업계 생존 위해서는 인식 개선·해결책 제시 필요
비대면 진료 제도화 관련 갑론을박이 거세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재진 환자와 도서벽지 등 의료 취약지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때 재진 환자는 동일 질병으로 같은 병원 의사를 90일 이내 방문한 환자를 일컫는다.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들은 이 같은 정부의 개정안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15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가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장지호 원산협 공동회장은 “비대면 진료 제도화 내용을 보면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2의 타다 사태가 될까 우려된다”고 발언했다.
장 공동회장은 “현재 보건당국이 규정하는 재진 범위로는 감기, 비염, 소화불량 등의 경증 질환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없으며, 수시로 방문하는 병원이 없는 영유아, 1인 가구 역시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비대면 진료가 현재 정부 구상대로 제도화될 경우 관련 스타트업의 80%가 도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원산협 “1,300만 소비자 목소리 반영하라”
원산협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비대면 진료의 효용을 언급하며 네거티브 규제 혁신을 발표했음에도 불구, 보건당국이 재진 환자만을 위한 ‘포지티브 규제’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위험군 약품에 대한 비대면 처방을 제한한 것처럼 비대면 진료 규제도 어디까지나 ‘네거티브 규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직장인, 워킹맘 등 1,379만 명의 국민이 만 3년간 경험했던 비대면 진료와 이를 운영했던 기업들은 모두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며 코로나 팬데믹 전으로 회귀하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중단하고, 국민과 산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장 공동회장은 “지난 코로나 팬데믹 동안 이뤄진 3,500만 건 비대면 진료를 통해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편익이 입증됐다”며 “1,300만 명의 비대면 진료 이용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현실에 맞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의견을 개진하겠다”고 밝혔다.
플랫폼 업계와 정부의 의견 충돌
비대면 의료 제도화 관련 법안 중 가장 최근에 발의된 것은 2022년 11월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해당 법안은 △섬·벽지 △국외 거주자, 장애인, 교정시설, 현역 복무자 △감염병 환자 △만성질환자 및 정신질환자를 비대면 진료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여기에 의·정 협의체의 합의 사항인 ‘재진 환자’가 포함되어 제도화가 추진되고 있다.
지난 12일 복지부는 코로나 재택치료 제외 비대면 진료 중 재진이 81.5%, 초진이 18.5%였다고 밝히며 재진 중심의 정책 추진 방향성을 확고히 한 바 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업계에서는 이 같은 통계가 세밀하지 못한 단편적 데이터 분석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 자료에는 만성질환자가 전화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은 것까지 모두 재진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비대면 진료 플랫폼 첫 이용자 중 99%는 초진 환자라는 지적이다.
재진 환자 중심 제도화가 중개 플랫폼 비즈니스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는 진료 대상을 재진으로 한정할 경우 90%가량의 이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관련 업계가 ‘줄도산’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초진 환자 이용이 불가능해지면 소비자 유입이 크게 감소하고, 시장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15일 국민 건강 보호 및 의료 사각지대 최소화를 위해 재진 환자,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해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차후 국회의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의료계, 이용자, 플랫폼 업계 등 각계의 다각적인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여 합리적인 제도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진료 늘려가는 주요국 흐름에 ‘역행’
일각에서는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는 것이 주요국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재 주요 7개국(G7) 중 비대면 진료 대상을 재진 환자로 한정하는 국가는 없다. 일부 국가에선 주치의 한정 진료라는 제한을 두고 있지만, 이들 또한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진료를 권장하면서, 세계 각국은 비대면 진료 규제를 점차 완화하기 시작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국 가운데 32개국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으며, 전체 진료 비중 가운데 비대면 진료 비중은 무려 1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말기 신장질환자나 농촌 거주자 등 일부 환자에게만 허용하던 비대면 진료를 지역이나 질환, 초진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에게 허용했다. 나아가 비대면 진료를 특정 플랫폼에서만 진행하도록 의무화했던 의료정보보호법(HIPAA)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등 점차 비대면 진료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일본은 1997년 이후부터 꾸준히 비대면 진료 비중을 늘려가는 추세다. 처음에는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환자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2020년 4월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초진 환자 대상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다. 그 외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의 주요 국가들도 코로나19 확산을 기점으로 비대면 진료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제도화는커녕, 진료 허용 대상조차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와 국회가 신속한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산업계-의료계 사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끊임없이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생존 위해선 부정적 인식 개선해야
비대면 진료 플랫폼은 의료법 위반 등 각종 논란으로 인해 이미 홍역을 치른 상태다. 지난해 10월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법 위반 현황’ 자료를 공개하며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2020년 2월 24일 이후 올해(2022년) 5월까지 총 79건의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법 위반 건이 적발됐다”라고 지적했다.
의약품 오남용 및 비급여 의약품 처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국정감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보다 의약품 오남용 우려가 훨씬 크다”며 닥터나우 서비스를 비판했다. 닥터나우가 전문 의약품 광고 금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편법을 쓰면서 의약품을 광고하고 있으며, 약국 선택권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계에서도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만큼 오진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오히려 환자 진단 및 치료 지연의 위험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대한내과의사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등 4개과 의사회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비대면 진료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회원의 54.4%는 비대면 진료에 대해 ‘감염병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응답했다. ‘진료의 기본 개념이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절대 안 된다’는 의견도 18%에 달했다.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가 상충하며 비대면 의료 제도화는 좀처럼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논란과 비판 속 비대면 의료 중개 스타트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차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