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정말 ‘과로 조장’ 정책일까? ‘주 69시간’의 함정
정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노동자 “주 69시간 과잉노동 조장” 비판 이어져 각 업계 특성 고려한 근로시간 유연화 과정, ‘주 69시간’은 극단적인 예시 제도 안착하기엔 아직 현실적 한계 존재, 소모적 논쟁 대신 구체적 방안 논의할 때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과 관련한 논의가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 개편안은 기본 주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한 현행 주 52시간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주(週) 기준인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月)·분기·반기·연(年) 단위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본질 잃어버린 ‘주 52시간제’ 개편 논의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현행 ‘주 최대 52시간’(기본 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의 큰 틀은 유지하되, 노사 합의를 거쳐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 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근로시간 제도는 ‘근로인 간 11시간 연속휴식 의무’를 조건으로 한 ‘주 최대 69시간’, ‘주 최대 64시간 상한’ 중 사업장 특성에 맞게 노사 합의로 선택할 수 있다.
정부 개편안을 접한 노동자들은 ‘주 69시간 근무’에 초점을 맞춰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아침 9시 출근해 자정까지 일해도 합법이 되는 제도 개편”이라며 “휴가 활성화 방안 역시 만성적인 저임금 구조에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은 “시대착오적 초장시간 노동 조장법으로, 노동자 선택권 존중은 허울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부 발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근무→근무→기절→병원→또 근무’로 이어지는 ‘주 69시간 근무표’가 빠르게 확산했다. 근무표는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토요일은 12시) 하루 16시간을 회사에 머무는 것으로 가정했다. 점심·저녁 식사 시간 각 1시간을 빼고 주 5일을 14시간 근무하는 시간표다. 하지만 개편안이 한 주에 64시간 이상 일할 경우 퇴근 시점과 출근 시점 사이에 11시간의 연속 휴식 시간을 부여해야 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만큼, 해당 시간표는 그저 ‘극단적인 예시’일 뿐이다.
반면 업계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 유연화를 반기고 있다. 무작정 연장근무 허용 시간을 줄이거나 획일화하기보다도, 각 업계의 특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재 관련 논의는 ‘주 69시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제도 안착 및 더 나은 노동 환경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 대신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연차 휴가도 제대로 못 쓰는 상황에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밖에도 “장시간 노동 후 긴 휴가를 받아도 어차피 ‘투병 생활’에 쓰게 될 것”, “실제로는 일하는 시간만 늘어나고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할 게 뻔하다” 등 냉소적인 반응도 다수 존재한다.
구체적인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제도가 도입될 경우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다수의 노동자는 장기간 휴가 사용이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으며, 고용주로부터 연장근로 ‘선택’을 강요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노동 시장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제도 개편과 동시에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업무 유연화 일환일 뿐 과잉 근로 조장 아냐”
한편 정부는 근로시간제 개편은 주 52시간 근로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함이며, ‘과잉 근로’를 조장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 근로시간제 개편 이후에도 연장근로는 노사 합의 하에 결정되며, 합의가 있더라도 근로자 개인이 거부 의사를 드러낼 경우 적용할 수 없다. 근로자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한편 업종별 특성에 따라 근로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주 69시간’은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단위로 바꾼 상황에 주 6일을 근무하는 특정 한 주만을 콕 집어 나온 계산이며,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정부 개편안은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쉴 때 몰아서 쉴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 개편인 셈이다. 이에 따라 연장근로 한도는 최대 주 69시간까지 늘어났지만, 분기 이상의 총량은 오히려 감소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분기는 90%, 반기는 80%, 연 단위는 70%만 연장근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제도 개편 이후 연장근로 시에는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부여 또는 1주 64시간 상한 중 선택권이 부여된다.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고, 일주일에 하루를 쉴 경우 최대 69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한 것이다. ‘1주 64시간’은 정부에서 업무와 질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판단하는 산재 과로 인정 기준이다.
정부는 휴식권 보장을 위해 연장근로를 저축해 휴가로 쓸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 기존 연차휴가에 더해 장기 휴가를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공짜 야근’의 주범으로 미리 연장·야간 등 수당을 포함시킨 포괄임금의 오남용을 지적하며 근로자가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왜곡된 논쟁, 본질은 ’69시간’이 아니다
유연한 연장근로 제도는 업계 전반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시장에는 수많은 형태의 노동이 존재하는 만큼,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는 분야도 있고, 납기 등을 맞추기 위해 특정 일자에 집약적으로 일해야 하는 분야도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무작정 근로시간을 감축하고, 연장근로시간을 획일화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일선 중소기업 생산 현장에선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근로시간 감축은 생사를 오가는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실제로 주 52시간제 적용 이후 더 많은 급여를 원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뿌리 업종이나 철근 제조와 같은 현장을 기피하기 시작했다는 호소도 나온다. 근로시간 감축 주장은 일부 대기업 및 공기업에 적합하지, 중소기업 현장과는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주 69시간 노동’을 장려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매주 69시간 일하게 된다는 여론에 휩쓸려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질 경우 오히려 개편안의 본래 취지가 흐려지고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일한 만큼 쉴 수 있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노동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단편적인 ‘숫자놀이’에 빠지기보다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