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K-콘텐츠] “K-콘텐츠 글로벌 경쟁력 강화” 정부 포부에 ‘냉소만’

문체부 ‘방송영상 리더스포럼’ 개최 “K-콘텐츠 글로벌 경쟁력 강화 위해 지원 확대” 국내 현실 반영하지 못한 정책, 업계는 ‘심드렁’

160X600_GIAI_AIDSNote
사진=넷플릭스

정부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환호 대신 냉소만이 떠도는 실정이다.

지난 17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방송영상 리더스포럼’ 제1차 회의를 열어 2023년 방송영상산업을 전망하고 국내 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을 지속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을 논의했다. 각종 드라마와 영화, 예능 콘텐츠가 OTT를 통해 전 세계 동시 공개가 당연해진 만큼 이번 포럼의 가장 큰 화두는 ‘K-콘텐츠의 세계화’였다.

문체부는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더 글로리>를 예로 들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OTT 및 방송영상 콘텐츠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OTT 콘텐츠 지원 예산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비롯해 기획개방 단계부터 제작, 수출, 인력 양성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짜임새 있게 추진한다는 설명이다.

먼저 지난해 116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던 ‘OTT 특화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올해는 4배에 육박하는 454억원을 편성했다. 한 작품에 지원할 수 있는 최대 단가도 30억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해당 사업으로 지원한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위기의 X>가 플랫폼에서 9월 신규가입자 유치 콘텐츠 1위를 기록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미디어 콘텐츠의 핵심 요소인 지식재산권(IP)을 제작사와 국내 OTT 기업이 공동 보유하고, 국내 OTT 공개를 우선 검토하는 등 미디어 제작 업계와 국내 OTT 업계의 동반 성장을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또 글로벌 OTT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스위트 홈>,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다크 판타지 및 좀비물이 큰 인기를 끌며 장르물이 확대된 데 대해서는 특수시각효과(VFX), 컴퓨터그래픽(CG) 등 후반작업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봤다. 이에 각종 특수 효과는 물론 번역, 더빙, 장애인의 시청각 접근성 등을 개선할 수 있는 후반작업에 신규 예상 300억원을 지원한다.

제작 인프라도 대폭 개선한다. 창작자와 제작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야 양질의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체부는 사업비 79억원을 투입해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스튜디오 큐브 내에 일반 촬영은 물론 수상 촬영까지 가능한 ‘수상해양복합촬영장’을 건립 중이며, 오는 5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당 촬영장 모든 스튜디오에서 특수촬영이 가능하도록 크로마키 스크린 등을 설치하는 데는 추가로 18억원이 투입된다. 스튜디오 큐브는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인재 육성 역시 중요시되는 부문이다. 문체부는 지난해부터 동국대 영상대학원,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OTT 콘텐츠 특화 과정’을 운영 중이다. 올해는 지난해(10억원)의 두 배 수준인 19억원으로 지원 규모를 확대해 전문 인재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일 계획. 문체부는 이를 통해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 마케팅 등 전 과정에 즉시 투입될 수 있는 융합형 전문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도형 문체부 미디어정책국장은 “지난해부터 전 세계에 K-콘텐츠 열풍을 몰고 온 <재벌집 막내아들>, <더 글로리>를 이어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OTT 및 방송영상 콘텐츠를 지속 육성하기 위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며 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등 콘텐츠 산업 육성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사진=웨이브, 쿠팡플레이

다만 문체부의 이런 통 큰 포부에도 업계는 심드렁한 모양새다. 국내 제작 업계의 현실을 모르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내실 없이 뜬구름 잡기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콘텐츠 업계는 최근 천정부지로 솟은 배우들의 출연료와 불법 공유 사이트로 인한 수익성 타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통상 OTT 콘텐츠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TV나 극장 콘텐츠보다 높은 출연료를 요구한다. TV 콘텐츠가 ‘재방료’, ‘삼방료’ 등 본방송 후 다시 송출되는 방송에서도 꾸준히 출연료가 지급되는 반면 OTT 콘텐츠는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 외에 제작사 및 플랫폼이 배우에게 추가 출연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기 때문. 극장 영화 역시 ‘러닝개런티’라고 불리는 흥행 성적에 따라 추가 출연료를 지급하는 방식이 일반화돼 있어 이는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OTT 콘텐츠의 고정 출연료는 제작사와 플랫폼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작품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다면 그야말로 ‘가성비 폭우’를 맞겠지만, 작품 공개 전까지는 그 누구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일단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거대한 팬덤을 보유한 스타 배우들을 영입하는 데 열을 올릴 수밖에 없고, 배우 측에서는 최대한 많은 몸값을 부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웨이브 <위기의 X>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권상우는 드라마 이후 한 예능에 출연해 “TV 드라마보다는 OTT가 훨씬 많은 출연료를 받지 않냐”는 질문에 활짝 웃는 모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위기의 X>는 공개 당월인 지난해 9월 ‘반짝인기’ 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웨이브는 추가 수익을 위해 올해 2월 지상파 채널인 MBC에 해당 작품을 방영했다. 하지만 2.0%대 시청률에 그치며 기대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국내 OTT 콘텐츠 중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은 배우는 쿠팡플레이 <어느 날>에 출연한 김수현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회당 5억원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드라마가 총 8부작임을 감안하면 김수현의 출연료로만 40억원을 지출한 셈이다. 작품은 김수현 외에도 차승원, 김성규, 김신록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대거 출연을 비롯해 해외 인기 드라마를 원작으로 탄생한 만큼 판권 구입에도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했다. <어느 날>이 2021년 공개된 작품임을 감안하면 2년이 지난 지금은 훨씬 높아진 제작비용을 예상할 수 있다. “OTT 콘텐츠 한 편당 최대 30억원”을 외치는 문체부의 큰소리에 업계가 심드렁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불법 동영상 공유가 횡행하는 현실 역시 문체부의 포부가 국내 현실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최근 미디어 업계는 국내 최대 불법 동영상 공유 사이트 누누티비가 월간 약 1,000만명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 규모가 4조 9,00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난 8일 국내 OTT 기업들과 방송사, 영화제작사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는 누누티비의 온라인 저작권침해와 무단 이용을 지적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올해 초부터 누누티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온 경찰은 이번 협의체의 형사고소에 문체부의 협조를 얻어 국제 공조를 통한 수사에 착수했다. 불법 동영상 공유 사이트의 활성화로 인한 업계의 막심한 피해를 문체부가 모를 수 없는 상황인데도 여전히 핑크빛 미래만을 그리는 정부의 태도에 업계가 냉소를 머금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글로벌 OTT를 통해 전 세계를 강타한 K-콘텐츠의 저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것은 마땅하나, 멀고도 추상적인 ‘글로벌 경쟁력 강화’ 이전에 차분히 내실을 다지는 단계가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