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미,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은 ‘둔화’, 근원물가지수 증가율은 ‘그대로’
한·미 근원물가지수 상승률 그대로,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 정책 효과 시간 걸린다 지적 전문가들, 한·미 근원인플레이션 원인으로 노동시장 과열 및 수입물가 상승압력 꼽아 韓, 미국 사정에 따라 해당 원인에 대한 근원 인플레이션 파급력 다를 것 강조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인상률이 감소세에 들어간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근원 물가지수가 여전히 횡보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하며 물가 상승세가 아직 완벽하게 잡히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중반 이후 상당폭 둔화했으나, 근원물가의 둔화세는 뚜렷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러한 한·미 근원 인플레이션 기조에 전문가들은 최근 과열되고 있는 노동 시장의 분위기와 원자재 가격 등의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을 그 이유로 꼽는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둔화하지만 근원물가지수는 그대로,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
미국 현지 시간 10일 기준 소비자물가지수 인상률이 지난달 대비 4.9%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21년 6월 이후로 가장 낮은 수치에 해당한다. 시장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제어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비자물가지수가 아닌,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국제 원자재 관련 품목을 제거해 측정되는 ‘근원 물가지수’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농산물·원자재의 경우 천재지변 및 중동 석유 채산지 이해관계 등 정부가 제어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가격이 변동되므로, 이와 같은 ‘노이즈’ 요소를 제외하고 미국 정부의 긴축 재정 조치의 효과를 순수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근원 물가지수의 경우 여전히 1월부터 5.5% 선에서 머물고 있다. 특히 전년 대비 인상폭은 지난해 12월부터 큰 차이를 나타내지 않고 있어 물가 상승세가 완전히 잡혔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특히 지난 2022년 3월부터 공격적으로 단행해 왔던 미 연준의 금리 인상 행보를 고려하면, 그 효과가 현재까지도 가시적인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월가 전문 금융투자기관 LPL 파이낸셜의 퀸지 크로비 글로벌 전략가는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8월에 들어서고 나서야 가시적인 효과를 보이는 점과 지난달과 큰 차이 없는 물가 상승률 수치를 고려해 봤을 때 해당 정책의 효과가 실질적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상황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발표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중반 이후 상당폭 둔화했지만, 근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다. 지난해 3월부터 큰 폭으로 상승한 근원물가는 올해 1월 5%, 2월 4.8%를 기록한 바 있다. 소비자물가지수와 달리 오름폭이 줄지 않은 것이다.
미국 근원 인플레이션의 주범: 최근 과열된 노동시장
일반적으로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은 역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즉 실업률이 낮은 해에는 물가상승률이 높지만, 실업률이 낮은 해에는 물가상승률이 높다. 금융계 전문가들은 위와 같은 한·미 ‘근원 인플레이션’ 흐름의 주요 배경이 글로벌 팬데믹 이후 지나치게 과열된 노동 시장에 있다고 분석했다. 양국 모두 실업률이 현재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이는 데다 실업자 대비 빈 일자리 비율(v/u)도 팬데믹 이전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실업자 대비 빈 일자리 비율의 상승은 구직자보다 기업의 채용이 더 많이 증가한 상황을 의미한다.
다만 한·미 간 노동시장 상황은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노동시장의 과열 정도를 나타내는 v/u 갭이 미국보다 낮아 노동시장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덜 과열된 상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노동시장 과열 정도가 근원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미국 노동시장의 근원 인플레이션 압력이 한국에 비해 두 배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알려진 근원 서비스 물가 상승률에 대한 미국 노동시장 과열 정도의 설명력이 36.6%에 달했으나, 한국은 그 절반이 안 되는 16.7%를 보였다. 쉽게 말해 미국이 한국보다 노동시장 과열로 인한 인플레이션 영향을 2배 더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결과는 지속해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근원 인플레이션 기조가 미국과는 달리 원자재 가격 인상 등 노동시장 이외의 요인에 더 크게 영향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근원 인플레이션의 주범: 수입 물가 상승 압력
한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보다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누적 수입 물가 상승률의 경우 미국은 12.4%, 우리나라는 41.7%(원화 기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수입 물가 상승은 주로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에 기인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높은 원자재 수입 비중, 달러 강세 현상 등의 요인으로 미국에 비해 더 크게 누적된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보다 에너지 원자재가격의 소비자물가 전가가 상대적으로 더디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한국은행이 국제유가 상승률 변화가 각국의 근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 바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근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보다 한국에서 지속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한국을 국제 유가 및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큰 것으로 보는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은행 조사국 물가동향팀의 송상윤 과장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에너지 원자재가격이 안정되면서 앞으로는 이차 파급영향에 따른 근원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차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편으로는 “소비 부진이 완화되고 있는 가운데 유가 등 비용상승압력이 다시 커질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