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웨이브 합병 시나리오의 현실성
티빙-웨이브 합병 논의 불거져 방송3사와 SK스퀘어는 웨이브 매각 후 전략적 투자자로 남고 싶어해 티빙, 합병 대신 국내·외 매각 옵션도 고려
국내 OTT업계가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가운데, 티빙과 웨이브간 통합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지난 2021년 웨이브에서 최초로 제안한 이후 간헐적으로 논의가 이어지기는 했으나, 두 기업 모두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면서 논의가 가속화되는 모습이다.
최근 IB업계에 따르면 CJ ENM과 SK스퀘어는 각각 자사의 OTT 플랫폼인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을 놓고 각종 시나리오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의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CJ ENM 측은 티빙 매각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나 SK스퀘어 측에서는 매각보다 합병을 통해 OTT 플랫폼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후문이다.
웨이브 기업 가치, KT시즌 대비 어디까지 가능할까?
지난 2022년 6월 티빙과 KT시즌의 합병이 발표되면서 두 기업의 합병 비율에 IB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통상적인 IB업계 기업가치 산정 방식인 주가수익배수(P/E), 영업현금흐름배수(EV/EBITDA) 등이 통용되기 어려운 적자 기업들의 합병인데다, 가입자평균수익성(ARPU)에 기반한 기업 가치 평가도 이미 시장이 안정기에 접어든 해외 시장 밖에 비교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종 논란이 있었으나 KT시즌은 약 2,500억원에 해당하는 기업 가치로 티빙에 흡수 합병됐고, KT시즌의 100% 소유주였던 KT스튜디오지니는 현재 티빙의 13.54%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같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JC파트너스는 2022년 2월에 2,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면서 현재의 지분을 확보했다. IB업계에서는 KT시즌도 유사한 기업 가치로 평가 받았던 것으로 해석한다.
티빙과 웨이브 합병 안의 경우, 웨이브의 주요 주주인 방송 3사와 SK스퀘어가 직접 OTT 플랫폼을 운영하기 보다 타 업체가 운영하는 서비스에 제휴 형태로 운영을 희망하고 있는만큼, 지난해 티빙-KT시즌 합병과 유사한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합병 안이 발표되었던 지난해 6월 시점에 확인할 수 있었던 재무 및 영업 자료 기준으로 KT시즌의 기업 가치를 산정할 때, 2021년 재무제표에 따라 약 900억원의 연간 매출과 164억원의 당기순손실, 그리고 144만명의 월간 사용자에 주목할 수 있다. 올해 4월에 발표된 웨이브의 2022년 재무정보에 따르면 연간 매출액은 2,735억원, 당기순손실은 1,217억원에 달한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월 이용자 숫자는 380만명이다. IB업계 관계자들은 수치 상의 단순 비교로 웨이브가 KT시즌 대비 약 3배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반면, 해외에서 잠재 수요가 큰 지상파 3사의 방송 콘텐츠를 갖고 있다는 점을 들어 웨이브의 기업 가치를 그보다 더 높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웨이브가 지난해 12월 코코와를 합병하며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점, 국내 지상파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어하는 해외 K-콘텐츠 수요를 수익화 할 잠재력이 있는만큼, 기업 가치 산정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티빙 기업 가치, 2조3천억원 주장은 시장에서 납득할 수 있을까?
합병 비율 산정에 또 하나의 열쇠가 될 티빙의 기업 가치 산정에도 각종 논란이 이어진다. 지난해 2월 JC파트너스와 파라마운트 글로벌에서 약 2,500억원의 투자 유치를 진행하던 무렵에 알려진 기업 가치는 약 2조원이다. 이후 지난해 12월 KT시즌과 신주 발행 및 지분 교환으로 합병을 진행한 탓에 기업 가치를 분명히 산정할 수는 없으나 IB업계에서는 현재 지분 구조상 KT시즌의 가치도 현금 가액 기준 약 2,500억원으로 인정되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같은 방식으로 따져 현재 기업 가치를 약 2조 3,000억원으로 내다보고 있으나, 티빙의 재무 사정도 웨이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22년 재무제표 기준 연간 매출액은 2,475억원, 영업손실은 1,170억원에 달한다. 지난 4월 기준 월이용자는 약 491만명이다. 유사한 재무구조 대비 월이용자만 약 100만명 더 많은 셈이다.
다수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만큼 유·무형자산에 대한 감가상각을 고려해도 영업현금흐름(EBITDA)은 245억원 남짓이다. 통상적인 기업 가치 산정 방식으로 영업현금흐름배수(EV/EBITDA)를 적용할 경우 약 10배~15배에 불과한만큼, 티빙이 요구하는 2조3천억원과 큰 격차를 보인다.
당장의 영업현금흐름보다 미방영 콘텐츠의 가치를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OTT업계에 따르면 티빙은 산하 스튜디오 등을 통해 약 80여개의 미방영IP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금융경색이 이어지며 기업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80개에 달하는 미방영IP의 가치를 고려할 때 2조 3,000억원을 정당화하는 것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반박도 나온다.
티빙-웨이브 합병 시나리오 – 현금 및 주식 교환 거래
IB업계 전문가들은 웨이브가 영업을 계속할 의지가 강하지 않은 만큼, KT시즌과 같은 방식의 지분 교환으로 합병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 가장 무난한 수순일 것으로 전망한다. 합병 비율 산정에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KT시즌도 합병 당시 내부적으로 가치 평가를 깎는 것에 공감대를 표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OTT 업계에서는 당시 합병을 놓고 티빙이 상대적으로 저가에 IP를 구매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IB업계에서는 웨이브 주주들보다 전환사채(CB) 2,000억원을 투자했던 교원공제회, 농협,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의 주요 LP들이 합병 비율에 납득할 수 있을지에 주목한다. 합계 20곳의 투자자들이 참여했던 CB 발행 건이었던 만큼, 일부 투자자들은 합병 기업의 주식보다 원금 및 이자 상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티빙과 모회사인 CJ ENM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신규 투자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경우 주주들 간의 합의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무사히 신규 투자자를 유지할 경우에도 전환사채 상환액에 해당하는 부분만 현금으로 지급 후 KT시즌 사례와 같이 지분 교환으로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모습이다.
합병 비율 산정에 또 하나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JC파트너스가 보유하고 있는 티빙에 대한 전환사채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JC파트너스는 주주 구성의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경우 전환 조건을 재산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OTT 플랫폼 경영을 포기하고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 방식을 바꾸려는 웨이브 4대 주주들이 웨이브의 고평가를 고집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매각도 고민하는 티빙에게 합병 안의 가치는?
OTT 업계 전문가들은 티빙이 웨이브와 합병을 통해 각종 시너지를 예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민에 빠진 점에 주목한다. 합병이 현실화 될 경우 사실상 국내 단독 OTT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나 티빙 매각을 고려할 경우 합리적인 대안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 알려진 2조 3,000억원의 기업 가치로 해외 OTT 플랫폼에 매각될 경우 달러 기준으로 약 175억 달러의 매각 건이 된다. 그러나 합병 이후에는 기업 덩치가 커져 인수자 입장에서도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합병에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것도 문제다. KT시즌과의 합병에도 공정거래위원회는 약 6개월의 심사 기간을 할애했다. IB업계에서는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을 진행할 경우에도 유사한 심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운영을 계속 할 것이라면 합병에 시간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큰 부담이 없지만, 매각을 염두해두고 있다면 빠르게 OTT 플랫폼을 매각하고 콘텐츠 생산에 주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 OTT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콘텐츠 업계 전문가들은 영업적인 측면에서 합병이 소비자들과 시장 발전에 이익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CJ ENM의 강한 의지 없이 합병 논의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그간 CJ ENM의 투자가 있었던 덕분에 칸 국제영화제 등에서 한국 영화들이 성공적으로 시장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티빙의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 방송 3사의 콘텐츠를 활용하려는 전략이 확보되어야 합병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IB업계 관계자들은 KT시즌 사례와 달리 대주주가 4곳이나 된다는 점과 2024년 11월 만기인 전환사채 2천억원이 걸려있는 점도 합병 논의가 쉽게 진행되기 어려운 암초 중 하나로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