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시장에 몰려온 ‘생성 AI’ 쓰나미, 수익 모델 없어도 몸값 천정부지
위축된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 남은 유동성 긁어모으는 ‘생성 AI’ 스타트업 사업 계획 없어도, 수익성 부족해도 기업가치 인정받으며 대규모 자금 조달 아직까지 잠잠한 국내 시장, 정부 ‘한국어 잘하는 AI’ 개발 위한 투자 단행
생성 인공지능(AI)의 파도가 실리콘밸리를 덮쳤다. 글로벌 투자 시장이 크게 위축되었음에도 불구, 오픈AI의 ‘챗GPT’ 열풍 이후 생성 AI 스타트업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생성 AI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에는 0이 하나 더 붙는다”는 웃지 못할 농담마저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생성 AI 기업의 초기 라운드 밸류에이션은 2022년 대비 16% 급증했다. 반면 모든 스타트업의 초기 라운드 밸류에이션은 24% 미끄러졌다. 생성 AI 스타트업과 그 외 스타트업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얼어붙은 벤처투자 시장, 생성 AI 스타트업에는 ‘봄바람’
벤처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며 대다수 스타트업이 자금 조달 문제를 겪고 있지만, 생성 AI 스타트업들은 나 홀로 ‘봄바람’을 만끽하고 있다. 생성 AI의 잠재력이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다수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미끄러지는 가운데, 생성 AI 스타트업은 ‘거품’이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고 있다.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VC가 생성 AI 관련 기업에 쏟아부은 투자금은 자그마치 13억7,000만 달러(약 1조7,3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최근 5년 중 최대 규모다. 피치북은 올해 생성 AI 기업에 대한 벤처투자가 지난해 45억 달러(약 6조원) 대비 2~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AI 기술이 적용되는 기업용 시장 규모는 2026년 980억 달러(약 130조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AI 분야 외 스타트업들은 벤처투자 시장의 칼바람을 견디기에 급급하다. 미국의 벤처투자는 1분기에 370억 달러(약 49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5% 급감했다. 이처럼 투자자들의 시선조차 받지 못하고 자금난에 허덕이는 초기 스타트업이 급증하는 가운데, 투자자들의 자금은 생성 AI 스타트업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수익 모델 없어도 ‘일단 투자’?
벤처 업계에서는 최근 스타트업의 수익 성장이 둔화하며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할 기업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생성 AI 시장에서는 이와는 상반되는 기류가 관찰된다. ‘생성 AI’라는 아이템만을 믿고 무모한 투자 유치에 나서는 스타트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이들 스타트업에 실제로 뭉칫돈이 몰리며 ‘생성 AI에는 일단 투자하고 보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심지어 별다른 사업 계획이 없거나, 수익이 거의 없는 수준임에도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투자를 유치하는 사례마저 등장했다. 일례로 회의 내용, 업무 대화 등을 녹음한 뒤 ‘AI 챗봇’ 형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리와인드’는 70만 달러의 수익을 기반으로 NEA로부터 3억5,000만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사실상 유의미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AI 스타트업인 ‘랭체인’도 세쿼이아가 주도한 라운드에서 2억 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기업 운영 경험이 없는 AI 연구원들이 설립한 기업 또한 속속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소재 AI 스타트업 코히어, 애플 전직 임원이 창업한 휴메인, 전직 구글 AI 연구원이 창업한 이센셜AI 등이 대규모 투자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코히어의 경우 20억 달러(약 2조7,000억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2억5,000만 달러(약 3,3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국내 투자는 ‘잠잠’, 시장 발전 기반부터 갖춰야
국내에서도 생성 AI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추세지만, 투자 시장 위축으로 인해 눈에 띄는 대형 투자가 이뤄지지는 못하고 있다. 카카오가 이미지 생성 AI ‘칼로’를 선보이며 출사표를 던졌으나, 그마저도 출시 일정이 연기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국내 AI 시장의 발전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정부는 전문 분야 AI와 한국어 사용 AI 플랫폼 부문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올해 총 3,901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다양한 정책이 제시된 가운데, 특히 단순·반복 작업 중심이었던 데이터 라벨링 중심 AI 학습용 데이터 정책을 ‘초거대 AI 학습용 핵심 데이터 구축’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눈에 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양질의 대규모 텍스트 200종을 확보하고, 챗GPT와 같은 초거대 AI 모델 지원을 목표로 데이터 라벨링 사업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은 국산 생성 AI 개발을 위해 ‘한국어 말뭉치(코퍼스, Corpus)’ 구축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말뭉치는 다양한 분야의 언어 자료를 모아 컴퓨터로 분석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입력한 자료로, 최근 챗GPT 열풍 이후로 AI 개발 수요가 증가하며 그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는 추세다. ‘한국어 말뭉치’는 한글 어휘와 어휘 특성의 저장소로 AI의 고차원적인 한국어 처리 능력의 밑바탕이 된다.
국립국어원은 2018년부터 대규모 한국어 말뭉치 사업을 시작했으며, 현재 거대 인공지능 기술에 활용될 37종(약 22억 어절)의 말뭉치를 ‘모두의 말뭉치’ 사이트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AI 학습용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대한 부담 없이 누구나 기술력을 펼칠 수 있는 발판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한 셈이다. 정부는 이에 더해 초거대 AI 발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적인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생성 AI 열풍이 점차 과열되는 가운데, 위축된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AI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