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벤처투자 시장 위축에도 뭉칫돈 쏟아지는 ‘기후테크’, 국내 투자 현황은?
빌 게이츠의 BEV, 기후테크에 1조원 규모 투자라운드 시작 2100년 지구 온도 상승폭 2.4℃ 예상, 기후테크 역할 막중 韓, 기술 및 투자 면에서 해외 주요국에 뒤처져 있어
전 세계적인 벤처투자 시장 위축에도 불구하고 기후테크(Climate Tech) 기업에 대한 투자는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기후테크 산업 규모가 약 189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해외 주요국들은 앞다퉈 집중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역시 서둘러 기후테크 산업 육성 방안을 제시했으나,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기후테크 벤처투자액 95조원
글로벌 기후·교육·의료 분야 시장조사기관 홀론아이큐에 따르면 글로벌 기후테크 벤처투자액은 2020년 226억 달러(31조원)에서 2021년 370억 달러(50조원)로 68% 증가했고, 2022년에는 701억 달러(95조원)로 전년 대비 89% 늘었다. 기후테크 투자가 전체 벤처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2년 16.9%로 2021년 5.8%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기후테크 분야 내에서도 가장 큰 폭의 성장을 보인 종목은 전년 대비 투자액이 각각 64%와 24% 증가한 그린수소와 태양광 부문이었다. 아울러 전체 기후테크 투자액의 45%는 모빌리티 부문에 투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추세에 발맞춰 최근 글로벌 대기업들과 투자자들도 기후테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기후테크 전문 벤처캐피탈(VC)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BEV)가 대표적이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BEV는 기후테크 기업에 대한 세번째 투자 라운드를 시작했으며, 10억 달러(약 1조3,495억원)를 조달할 목표를 갖고 있다. BEV가 투자한 회사 수는 40% 증가해, 에너지부터 농업에 이르기까지 약 140개 기업을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앞서 1차 펀드는 약 10억 달러, 2차 펀드는 2021년 12억5,000만 달러(약 1조6,869억원)로 마감됐다. 이뿐 아니라 1억 달러(약 1,349억원)의 유럽 기업 중심의 펀드도 보유하고 있다.
빌게이츠가 투자한 대표적인 회사는 미국의 그린수소 전해질 생산업체인 일렉트릭하이드로젠(ElectricHydrogen), 축산 분야 메탄저감을 위한 사업을 하는 아르키아 바이오(Arkea Bio), 그린시멘트 제조업체인 솔리디아(Solidia), 화물 운송용 배터리 기술에 집중하는 플리트제로(Fleetzero) 등이 있다. 이 밖에 TPG, 블랙락, 테마섹, 제네럴아틀라틱과 같은 글로벌 VC들도 기후테크 전용 펀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후테크가 시대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한 이유
최근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추세와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날로 증폭되면서 기후테크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감축 속도가 예상보다 느린 탓에 기술적 해결책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기후테크는 탄소배출을 줄여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기술을 일컫는 말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부터 기후예측, 친환경 재활용기술, 조리로봇 등 푸드테크까지 영역이 다양하다.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가 1억 달러의 상금을 내건 대기 중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이 기후테크의 대표적인 사례다.
2100년 지구의 예상 온도 상승폭이 2.4℃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갭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후테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지난해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에 의하면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나 감축해야 한다. 그러나 전 세계가 기존에 제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로는 이러한 기후변화 진행 속도를 둔화시키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기후테크의 미래 성장 전망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후테크 산업 규모가 2032년 1,480억 달러(약 189조848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매년 14.5%씩 확대되는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도 기후테크 관련 투자 규모가 2030년까지 약 9조~12조 달러(약 1경2,145조~1경6,194조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 세계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 80개, 이 중 우리나라는 없어
해외 주요국은 이미 기후테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은 기후변화 대응 산업정책을 내놓으며 기후테크 확보에 집중 투자를 진행 중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3,690억 달러(약 498조원)의 자금을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대응에 투자할 예정이며, 유럽 또한 탄소중립산업법(NZIA)을 통해 2030년까지 기후·에너지 목표 달성에 필요한 기술의 40%를 유럽 내에서 개발한다는 목표를 구축했다. 아울러 일본은 태양광 입지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개발(R&D)에 집중 투자하고 있으며, 중국은 산업·수송·건물·에너지 분야의 76%를 전기화하고, 재생에너지 확대 및 석탄이용 감축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 6월 기후테크 산업 육성을 통해 2030년까지 유니콘 기업 10개 육성, 수출규모 100조원, 신규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역부족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후테크를 기반으로 한 탄소중립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탄소정책과 과감한 투자, 그리고 금융의 재원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국내 기후 관련 기술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뒤처져 있다. 2030년 1조1,500억 달러(약 1,552조원) 규모의 시장이 예상되는 이산화탄소 포집·활용(CCU) 기술만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는 미국의 80% 정도다.
현재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글로벌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은 80개가 넘는다. 전기차 생산업체 ‘테슬라’, 농업 스타트업 ‘인디고 애그리컬처’, 대체육 가공업체 ‘비욘드미트’ 등은 기후테크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수익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유니콘 기업으로 도약했다.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인공지능(AI), 머신러닝, 클라우드, 드론, 자율주행, 로봇 등의 신기술을 통해 기후 예측, 탄소 상쇄, 탄소 배출량 관리, 정밀 농업, 재생에너지와 스마트 그리드 등의 분야에 적용돼 탈탄소화 과제를 해결한다. 이렇듯 기후테크는 단순히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수단을 넘어 기업의 미래 성장 전략으로 안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기후테크 유니콘 기업이 한 곳도 없다. 기후테크 산업은 저성장 침체의 늪에서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 길을 열어줘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