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근속 커트라인은 3년? 실리콘밸리도 못 잡는 ‘크로노스’의 뒷머리
장기근속 적은 개발자 직종, 이유는? '성장 압박' 받는 개발자들, '미래 불안감'도 높게 나타나 "개발자는 '기술' 뒤따라야, 우물에 갇혀선 경쟁력 잃어"
경력직 IT 개발자 10명 중 8명 이상이 한 회사에서의 근속 연수로 3년 내외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개발자 직종 특유의 특성에 기인한다. 개발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다양한 업무 경험 및 그에 따른 역량 강화다. 그러나 한 회사에서 장기근속할 경우 비슷한 업무만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곧 개발자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실리콘밸리도 다를 바 없는데, 실제 실리콘밸리 개발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3년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자 근속 연수, 3년 내외가 가장 적절”
16일 개발자 커뮤니티 ‘커리어리’를 운영하는 커리어테크 스타트업 퍼블리가 경력직 개발자 9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 회사에서의 근속 연수에 대해 응답자의 44%가 ‘1년 이상 3년 미만’이, 43%가 ‘3년 이상 5년 미만’이 적절하다 생각한다고 답했다. 결국 총 87%에 달하는 응답자가 평균적으로 ‘3년 내외’ 근속이 가장 적절하다고 응답한 셈이다. 이외 응답자의 12%는 ‘5년 이상’이 적당하다고 답했고, ‘1년 미만’이 적당하고 생각하는 개발자는 단 2%에 그쳤다.
한 회사에서 장기근속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선 22%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좋기 때문’이라고 응답했으며, ‘워라밸, 복리후생 덕분에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서’와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이직할 이유도 없어서’를 선택한 응답자는 각각 19%로 나타났다. 그 뒤로는 △연봉 인상률 등 처우가 마음에 들어서(11%) △사업 내용 및 방향성이 마음에 들어서(5%) △조직문화가 잘 맞아서(4%) △조직 안에서 인정받고 있어서(4%) 등 순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에 오래 다닐 수 없겠다고 생각되는 요인이 뭐였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22%는 ‘함께 일하는 상사나 동료가 별로여서’를 선택했다. ‘맡게 된 업무가 내 성장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를 선택한 응답자도 22%로 높게 나타났으며, 이외에는 △연봉 인상률 등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16%) △조직문화가 좋지 않아서(10%) △근로 시간이 과다하고 스케줄이 들쭉날쭉해서(9%) △사업 성장이 어려워 보여서(9%) 등의 의견이 나왔다.
개발자들, 업무 과다 시달리면서도 “직무 만족해”
IT 개발자의 과다한 업무량에 대한 소문은 이미 세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를 접한 일부 누리꾼들이 “너무 과장한 것 아니냐”는 불신의 눈초리를 던지기도 하지만,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보면 현실도 소문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한 개발자는 “입사 당시엔 신입이다 보니 큰 기대가 없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고 나니 업무가 하나씩 늘었다”며 “처음엔 감당될 수준이었으나 회사에 입사자는 없고 퇴사자가 생기면서 업무량이 가중됐고, 결국 한계에 다다르게 됐다”고 전했다.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가 공개한 ‘개발자 트렌드 리포트 2022’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잘 드러난다. 리포트에 따르면 취업 상태인 개발자 286명 중 최근 3개월 안에 초과근무를 한 적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81.1%에 달했다. 일주일 기준 ‘3시간 미만’ 초과근무한 비율은 33.9%였으며, 그 뒤를 ‘3~7시간’ 25.2%, ‘7~12시간’ 14%가 이었다. 일주일에 12시간 넘게 초과근무를 했다는 이들도 8%로 나타났다.
다만 개발자들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현 직무에 만족을 나타내고 있었다. 리포트에 따르면 개발자 중 64.3%(매우 만족 22%, 만족 42.3%)는 업무 과중을 느끼고 있음에도 직무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개발팀 규모가 클수록 직무 만족도도 올랐고, 웹 개발 등 다른 직무보다 ‘모바일 앱’ 개발자 가운데 특히 만족하는 비율(76.9%)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개발자들이 회사 밸류보단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개발자들은 회사를 정할 때 ‘내가 성장할 기회'(32.2%)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개발자로서 불만을 가지는 요소 또한 ‘성장에 대한 압박'(46.5%)이 가장 높았고, ‘기술 트렌드 대응에 대한 부담감'(44.1%) 및 미래에 대한 불안감(32.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역량 강화’ 열망 높은 개발자들, “기술 있어야 돈도 뒤따른다”
IT 개발은 개발자 스스로의 역량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직종 중 하나다. 개발자가 회사를 ‘성장의 기회’로 삼으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현직 개발자는 “하나의 회사를 장기근속하다 보면 반복되는 업무의 늪에 빠져 다이나믹한 성장을 이루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소위 ‘더 좋은 회사’는 보통 실력과 함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원하게 마련인데 하나의 회사, 하나의 업무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개발자로서 기회를 날리는 경우가 생긴다”고 전했다. 타 직종의 경우 보통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업무에 대한 노하우가 늘고 역량이 강화되지만 개발자의 경우 한 우물에 갇혀 있다간 썩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실제 IT 스타트업들은 개발자 채용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양한 업무 경험’을 꼽았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코딩 샌스(Coding Sans)가 발표한 ‘스타트업의 소프트웨어 개발 현황(State of Software Developmnet at Startups)’에 따르면 ‘다양한 업무 경험’을 가장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선정한 스타트업은 69%에 달했다. 반면 ‘학사나 석사 학위’를 주요 채용 기준으로 활용한다는 비율은 6% 미만이었다. 새로운 경험 및 역량 강화를 위해 회사를 옮기는 개발자들의 심리 저변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스타트업이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펼치는 전략에서도 개발자 특유의 ‘경험 중시’ 풍조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코딩 샌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들은 대체로 ‘흥미롭고 도전적인 과업(79%)’을 앞세워 인재를 유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웨어 업체 리플렉티브(Reflektive)의 창업자인 에릭 타이는 “채용하고 싶었던 인재에게 커리어 목표를 물었더니 ‘스케일링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리플렉티브에서 스케일링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고, 결국 인재 채용에 성공했다”고 경험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개발자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있다. “기술을 따라가면 연봉이 계속 오르지만, 돈을 따라가면 연봉은 빠르게 동결된다”. 다양한 기술 역량을 갖추면 어디서든 러브콜이 들어오게 마련이지만, 돈만 보고 움직이는 개발자는 역량 강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해 지금 있는 자리를 지키는 데만 급급해진다는 의미다. 한 현직 개발자는 “내가 제시하는 연봉이 적정한가에 대해 회사를 설득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 기술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기술 역량을 높이고 일을 잘하면 연봉은 저절로 오르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억대 연봉, 최고의 근무환경과 복지를 보장한다는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의 평균 근속 연수도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한 전직 개발자는 “큰 회사에서 장기근속하는 건 개발자로서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라며 “우물에 빠진 개발자는 경쟁력을 잃는다. 실리콘밸리조차 개발자에겐 하나의 ‘우물’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