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FAST’, OTT 꺾고 왕좌 앉을 수 있을까
케이블TV에서 OTT로, OTT에서 FAST로? 스트림플레이션이 부른 '콘텐츠 지각변동' '코드커팅' 현상 유독 심각했던 美, FAST 시장 발전 속도 매섭다 달콤한 '광고 수익' 잡아라, LG전자·삼성전자도 FAST 사업에 총력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TV 서비스인 ‘FAST(Free Ad-Supported Streaming TV)’가 콘텐츠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주요 OTT 업체들이 속속 구독 요금을 인상하면서 ‘스트림플레이션(스트리밍+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가운데, 기존 유료 방송 및 OTT처럼 월 요금을 납부할 필요가 없는 FAST로 소비자 수요가 이동하는 양상이다.
글로벌 시장, ‘코드 커팅’에 이어 FAST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미국을 중심으로 유료 방송을 해지하고 OTT로 갈아타는 ‘코드 커팅’ 열풍이 불어닥쳤다. 고가의 유료 방송을 시청하는 대신 월 구독료를 납부하고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익성이 악화한 주요 OTT 업체들이 줄줄이 구독 요금을 인상하자, 소비자 수요가 무료 서비스인 FAST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CTV(커넥티드TV) 보급률 상승 역시 FAST 시장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글로벌 TV 시장에서 스마트 TV 출하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이상이었다. 소비자가 FAST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한층 넓어졌다는 의미다. 수요 급증에 힘입어 2019년 2억 달러(약 2,719억원) 규모였던 글로벌 FAST 시장은 올해 63억 달러(약 8조5,655억원)까지 급성장했고, 2027년에는 120억 달러(약 16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FAST는 퀄리티와 다양성을 갖춘 콘텐츠 채널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케이블 TV와 유사하게 뉴스, 영화, 엔터, 스포츠, 외국어, 음악 등으로 채널이 세분화하는 양상도 포착된다. 콘텐츠가 다양화하자 OTT로 흡수됐던 젊은 세대도 FAST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실시간 콘텐츠부터 VOD까지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서비스에 적응이 빠른 젊은 세대들에게는 사실상 ‘무료 OTT’와 차이가 없다는 분석이다.
美, FAST 시장의 선두 주자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 FAST 시장이다. 미국 미디어 데이터 분석 업체 ‘윕미디어’가 미국 성인 2,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30%는 “내년에 OTT 서비스를 해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중 37%는 “향후 FAST를 이용하겠다”고 응답했다. 코드 커팅에서 FAST로 향하는 미 콘텐츠 시장의 흐름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올해 2월 기준 미국에서 볼 수 있는 FAST 채널은 1,628개에 달한다. 각 지역의 뉴스 채널을 제외해도 1,400개 이상의 무료 방송 채널이 서비스되고 있다. 각 플랫폼이 흥행을 위한 ‘콘텐츠 확충’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현재 미국에서 50개 이상의 FAST 채널을 운영하는 거대 FAST 서비스 플랫폼은 14개 이상이다.
급성장하는 미국 FAST 시장의 사용자 1위 플랫폼은 ‘로쿠’다. 로쿠는 스트리밍 기기인 ‘로쿠 플레이어’ 제조 업체지만, 최근 들어서는 스트리밍 기기 판매보다 FAST 서비스 등 플랫폼 사업을 통해 대부분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로쿠 플레이어를 활용한 코드 커팅 유도 전략을 뒤로 하고, FAST 채널을 활용한 광고 기반 비즈니스의 비중을 높여가는 양상이다.
방송 콘텐츠 제작사들도 스마트TV 앱 형태의 FAST 서비스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비아컴CBS의 ‘플루토TV’ △싱클레어 ‘스티어’ △폭스 ‘투비’ 등이 대표적이다. 코드 커팅 열풍으로 위기에 처한 케이블TV 시장 역시 FAST 시장 편승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일례로 미국 최대 케이블 사업자인 ‘컴캐스트’는 전통적인 케이블TV 채널, FAST 채널, OTT 스트리밍 등을 월 20달러에 이용할 수 있는 통합 서비스를 출시, 케이블 TV로도 FAS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LG가 이끄는 韓 FAST
FAST 시장 선점에 뛰어든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있다. LG전자는 지난 2015년부터 모든 LG TV에 전 세계 31국에서 채널 2,900개(올 3월 기준)를 서비스하고 있는 FAST 서비스 ‘LG채널’을 탑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기준 2,800만 명이었던 LG 채널 가입자는 올해 5,000만 명으로 약 78% 급증했다. FAST 사업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자 LG전자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나섰다.
삼성전자는 24개국에 분포한 삼성전자 TV 약 5억 대를 통해 FAST 서비스 ‘삼성TV플러스’를 제공한다. 올해 5월 말 기준 한국 ‘삼성 TV플러스’ 채널 수는 95개로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콘텐츠 업체가 아닌 가전 업체들이 최전방에서 FAST 사업을 육성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수익성’에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TV 판매 수익이 저조한 가운데, FAST를 활용하면 추가적인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FAST 플랫폼 운영사들은 방송사나 콘텐츠 제공자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자사 FAST 플랫폼에 프로그램을 추가하며 광고 수익을 얻는다. 이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무료로 시청하고, 광고주는 이용자 타깃형 광고를 송출해 수익을 올리는 ‘윈윈’ 구조다. 이에 더해 콘텐츠 사업자들은 보유 콘텐츠를 FAST에 유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플랫폼 사업자는 다양한 콘텐츠로 이용자를 유치해 광고에 더 높은 단가를 매길 수 있다.
실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용자 유치를 위한 콘텐츠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4월 삼성전자는 <뿅뿅 지구오락실>, <신서유기8> 등 CJ ENM의 인기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브랜드관을 최초 도입했으며, TV조선 인기 프로그램 <국가가 부른다> 등 종합편성채널 콘텐츠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개성이 강한 종합편성채널 콘텐츠를 활용해 보다 폭넓은 시청자층을 끌어들이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외에도 다수의 국내 전문 콘텐츠 사업자들이 속속 FAST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5년 뒤 한국 FAST 시장이 1조1,7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국내외 콘텐츠 시장의 흐름이 급변하는 가운데, 과연 FAST는 OTT를 꺾고 새로운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