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객 줄어도 ‘가격 인상’ 이어가는 디즈니, 국내 업체는 ‘가격 인하’ 고육지책
가격 인상에 적극적인 디즈니, 월가 “수익성 개선에 도움될 것” 가격 인상 기조 아래 눈치만 보는 토종 업체들, “저변 확대가 우선” ‘제한적인 이용자 풀’이란 한계 못 벗어난 토종 OTT, 결국 ‘할인’ 정책 내놓기도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일부 입장료와 주차료를 인상하기로 했다. 테마파크 방문객이 감소한 상황에서 수익성 개선에 나선 모양새다. 특히 디즈니+의 구독료 인상도 함께 단행한 점이 눈에 띈다. 이에 월가에선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지만, 국내 OTT 업체들 사이에선 앓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글로벌 OTT마저 가격 인상을 단행해야 할 정도로 시장 위축이 극심해지고 있으나, 국내 OTT는 특성상 가격 인상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기 때문이다.
이용객 감소 못 면한 디즈니, 오히려 ‘가격 인상’?
11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디즈니는 이날부터 미 최대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월드의 일부 입장권 가격을 인상한다. 디즈니랜드는 미 로스앤젤레스(LA) 인근 애너하임에, 디즈니월드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테마파크다.
디즈니는 각각 104달러(약 13만9,000원)와 109달러(약 14만6,000원)인 두 테마파크의 최저가 1일 입장권 가격은 유지할 방침이다. 다만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비싼 1일 이용권의 가격은 179달러(약 24만원)에서 194달러(약 26만원)로 인상한다. 디즈니가 테마파크 입장료를 인상하는 건 지난해 10월 일일 이용권 일부를 최대 9% 넘게 올린 지 1년 만이다.
디즈니는 2~5일 이용권 가격도 모두 25~65달러(약 3만3,000원~8만7,000원) 올렸다. 특히 디즈니월드의 가장 비싼 연간 이용권은 총 50달러 인상돼 1,449달러(약 194만원)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테마파크의 주차료도 25달러에서 30달러(약 4만원)로 5달러 인상됐다. 이번 가격 인상에 대해 디즈니는 “우리는 끊임없이 공원에 새롭고 혁신적인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추가하고 있다”며 “여러 가격 옵션을 통한 테마파크의 방문 가치는 디즈니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디즈니의 가격 인상이 특히 눈에 띄는 건, 디즈니 테마파크의 최근 방문객 수가 크게 줄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이다. 주요 테마파크의 대기 시간을 추적하는 업체 투어링 플랜스 데이터에 따르면 미 독립기념일 공휴일인 지난 7월 4일 디즈니월드 리조트 내 매직킹덤파크의 평균대기 시간은 27분으로, 4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디즈니랜드는 지난 4일 방문객이 감소하자 어린이 일일 입장권 가격을 한시적으로 최저 50달러(약 6만7,000원)까지 내리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디즈니가 입장료 인상을 단행한 건 디즈니+를 포함한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에서 발생한 손실을 상쇄하고 향후 투자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디즈니, OTT 구독료도 인상
앞서 디즈니는 디즈니+의 월간 구독료도 인상한 바 있다. 이 또한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실제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지난 8월 실적 발표 당시 “계정 공유 행위 단속을 통해 서비스 수익을 높이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넷플릭스로부터 촉발된 ‘계정 공유 금지’ 조치 시행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디즈니+는 최근 캐나다 이용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같은 계정으로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이용자를 가구 내 구성원으로 제한하겠다”고 공지했다. 우리나라 이용자들에겐 ‘이용약관 변경·취소 및 환불 정책 변경 안내’라는 이메일을 통해 계정 공유 금지 조항 신설을 알렸다. 계정 공유 단속 근거를 마련한 만큼, 국내에서도 계정 공유 금지 조치가 시행되는 건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적극적인 수익성 개선 태도에, 월가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4분기에 디즈니 플러스 구독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0월 가격 인상과 55억 달러(약 7조4,000억원)의 비용 절감 계획, 펜 엔터테인먼트와 ESPN과의 베팅 사이트 런칭 등도 예정돼 있다”며 “이 같은 상황으로 미뤄 봤을 때 디즈니는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디즈니에 매수 의견과 현 주가 대비 50% 높은 주당 135달러(약 18만3,000원)의 목표가를 제시했다. 골드만삭스 또한 디즈니가 사용자별 평균 매출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향상시키고 있다며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디즈니+의 가격 인상과 광고가 있는 구독모델, 국제 시장에서의 수익성 회복 등이 매출 개선에 도움 될 것이라는 게 골드만삭스의 의견이다. 골드만삭스는 디즈니에 매수 의견과 목표주가 주당 128달러(약 17만3,000원)를 제시했다.
수익성 개선 나선 글로벌 OTT, 정작 토종 OTT는
이렇듯 글로벌 OTT 업체가 가격 인상을 통해 수익성 개선을 타진하는 가운데, 토종 OTT 업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분위기만 살피는 모양새다. 최근 1년간 주요 OTT 플랫폼의 월 이용료가 평균 25% 오른 반면 국내 OTT 업계의 구독료 인상은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없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글로벌 OTT 업체에 비해 국내 OTT는 소비자가 한정돼 있다 보니 섣불리 가격 인상 정책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국내 OTT 관계자는 “구독자 증가 폭 둔화로 요금 인상보다는 K-콘텐츠 저변을 다양한 해외 시장에서 확대하는 게 우선”이라며 “현재는 달라진 시청 형태에 따라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거나 구독료 외에 다양한 사업 모델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OTT 업체들은 오히려 ‘할인 정책’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 티빙, 웨이브는 연간 이용권 할인 이벤트를 통해 구독자 확보에 나섰다. 티빙은 지난 11일부터 내달 30일까지 베이직, 스탠다드, 프리미엄 멤버십 연간 이용권을 각각 6만6,000원, 9만원, 11만4,000원에 판매한다. 평상시에도 연간 이용권을 25%를 할인해 각각 7만1,000원, 9만8,000원, 12만5,000원에 판매했던 걸 고려하면 이번에 약 8~10%를 더 할인한 셈이다. 웨이브도 올해 기준 네 번째 구독료 할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웨이브는 오는 22일까지 스탠다드와 프리미엄 멤버십 연간 이용권을 각각 8만7,500원, 11만1,500원에 판매한다. 기존 가격이 10만9,000원, 13만9,000원인 점을 비춰볼 때 약 25% 할인된 셈이다.
이 같은 토종 OTT의 잇따른 구독료 할인 행진은 글로벌 OTT에선 쉬이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게다가 토종 OTT들의 현재 수익이 높아서 할인 행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티빙과 웨이브의 지난해 영업손실액은 각각 1,192억원, 1,217억원으로 오히려 글로벌 OTT처럼 요금 인상, 광고 요금제 도입 등 적자 개선을 위한 해결책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구독료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건 앞서 언급한 ‘제한된 이용자 풀’과 관련이 깊다. 구독료 할인 행사는 새 소비자를 끌어들이면서도 1년간 이들을 유료 구독자로 잠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이용자 풀을 조금이나마 넓히기 위해선 할인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입자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국내 OTT 업계의 고육지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