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 성장성 알아본 사우디, ‘규제 일변도’ 韓과 정반대 길 걷는다
게임산업에 관심 갖는 사우디, 새로운 ‘성장 동력’ 찾았다 게임산업 추켜세우던 韓, 정작 ‘게임=마약’ 논리 내세워 규제 일변도로 성장 동력 잃은 韓, 이제라도 바뀌어야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수출에서 의존하는 기존 경제구조에서 탈피해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섰다. 특히 지난 18개월 동안 글로벌 게임 업체에 1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사우디, 게임산업에 ’10조’ 쏟아부었다
13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사우디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 산하 새비게임즈그룹(Savvy Games Group·이하 새비게임즈)은 지난해 1월 출범 이후 세계 각국 e스포츠 및 게임 개발 업체에 80억 달러(한화 약 10조1,760억원)를 투자했다. 새비게임즈는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의장을 맡은 회사로, 사우디 국부펀드로부터 380억 달러(한화 약 48조3,778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타공인 ‘게이머’인 빈 살만 왕세자가 게임과 e스포츠를 즐기는 데다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사우디의 게임 산업을 향한 열망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오는 2030년까지 사우디를 게임과 e스포츠 분야의 궁극적인 글로벌 허브로 성장시키겠단 목표를 갖고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사우디는 향후 7년 내 자국에 250개 게임회사 및 스튜디오를 유치하고 3만9,000여 개의 관련 일자리를 창출해 국내총생산(GDP)의 1%를 게임산업이 기여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사우디의 투자를 두고 ‘불도저식 접근 방식’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인 ‘암페어 애널리시스’의 피어스 하데 롤스 게임 애널리스트는 “사우디의 게임산업은 아직 초창기”라며 “때문에 말 그대로 처음부터 새로 구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FT “사우디 게임시장 전망 긍정적”
관계자에 따르면 새비게임즈를 통한 투자와 별개로 사우디 국부펀드는 일본 닌텐도 지분 8%를 매입해 닌텐도의 최대 외부 투자자로 등극한 상태다.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유비소프트 지분도 확보했다. 특히 지난 4월엔 한국 비디오 게임개발사인 위메이드와 사우디 투자부(MISA)가 사우디 게임 및 블록체인 산업 성장 촉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우디가 글로벌 게임 산업 전반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양새다.
FT는 사우디의 게임시장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우디 인구가 다른 국가에 비해 젊은 만큼 게임산업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에서다. 실제 사우디 전체 인구 3,600만 명의 70%가 35세 미만이다. VSPO의 최고재무책임자(CTO)이자 글로벌 전략책임자인 대니 탕은 FT에 “사우디는 게임 커뮤니티 참여도가 높은 매우 젊은 국가”라며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시장이자 파트너”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스스로 성장 동력 깎아 먹은 韓
반면 우리나라는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사실상 미래 먹거리 창출 가능성을 완전히 가로막아 버렸다. 지난 2013년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게임산업을 가리켜 ‘사회악’이라고 지칭했다. 그해 정부는 게임산업을 ‘중독산업’으로 분류해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게임을 마약과 똑같이 분류한 것이다.
게임은 ‘마약’일까. 이는 ‘문화콘텐츠는 마약인가’라는 물음으로 확대될 수 있다. 영화에 미쳐 하루 종일 공부는 않고 영화만 보다 추후 유명한 감독으로서 성장했다는 ‘헐리우드 키드’는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의 클리셰다. 학생 때부터 스타크래프트에 몰두해서 ‘나만큼 미쳐 봐!’ 라고 외치며 프로게이머로 성공한 임요환 선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를 필두로 한 정부는 학부모의 시선 외엔 아무것도 수용하지 않았다. ‘셧다운제 강제 적용’이 큰 무리 없이 사회에 적용된 것도 이 때문이다.
게임이 정말로 마약처럼 청소년에게 해를 끼치는 요소인지에 대한 명확한 조사와 검증은 제대로 이뤄진 바가 없다. 일부 사례를 전체로 확대시켜 게임을 나쁜 것으로 확정 짓고 규제 방안만을 고민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애초 우리 정부는 게임산업을 ‘5대 수출 킬러 콘텐츠’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런데도 규제 일변도로 게임산업의 씨를 완전히 말려버리는 정부의 모습은 기가 차다 못해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게임산업계는 중국에도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국은 규제와 진흥책을 동시에 사용하면서 오히려 자국 내 게임산업은 발전시키고 있다. 실제 중국은 자국 게임산업 보호 정책으로 ‘텐센트’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내기도 했다. 면밀한 진단도 없이 규제만 쏟아내는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로 인해 국내 게임산업은 중국은 물론 사우디에도 뒤처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게임을 창조경제의 핵심이라 추켜세우고, 다른 쪽에선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동일시하는 모습, 이 우스꽝스러운 연출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사우디처럼, 중국처럼 당장 정부 차원에서 국내 게임산업을 적극적으로 보듬어 달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게임산업 또한 바이오, VR(가상현실) 등 IT 계열과 함께 ‘미래산업’임에 틀림없음을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 실제 우리나라의 게임산업 시장 규모는 2021년 사상 최초로 20조원을 돌파했으며 수출액은 무려 86억7,287만 달러(한화 약 9조9,254억원)에 달한다.
‘유죄’에 대한 증명 없이 ‘규제’라는 처벌만을 강제한 결과 우리나라는 미래의 가능성 높은 성장 동력 중 하나인 게임산업을 사실상 잃었다. 그런데도 세계 게임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7.63%로 4위를 달성했다. 국내 게임산업 시장의 무시무시한 성장력이 돋보이는 결과다. 규제의 파이를 덜고 국내 게임산업의 경쟁력을 드높일 수 있는 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