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폭증한 5월 벤처투자, 원인은 ‘모태펀드·다운라운드’?
전월 대비 211.2% 폭증 ‘중기부 예산’ 뛰어넘은 모태펀드 문화계정, 관련 분야 투자 ‘활기’ 경기 침체 장기화에 유동성 부족해진 대형 스타트업들, ‘다운라운드’ 단행
‘돈맥경화’로 신음하던 벤처투자 업계가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지난달 스타트업 투자 금액이 올해 최대 규모인 8,000억원대를 기록한 것이다. 비욘드뮤직, 컬리, 대영채비 등 대형 스타트업에 1,000억원 이상 대규모 투자 유치가 이어지며 지난달 벤처투자 금액은 4월 대비 200% 이상 급증했다.
투자 침체를 겪던 스타트업계가 반등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지난달 IP·콘텐츠 분야 기업이 ‘역대 최대 규모’ 한국모태펀드 문화계정의 수혜를 입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컬리와 같은 대형 스타트업이 ‘다운라운드’를 택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투자 규모 급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5월 벤처투자 건수·규모 올 들어 최대치
스타트업 민간 협력 네트워크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5월 스타트업 투자 건수는 106건, 투자 금액은 8,214억원으로 나타났다. 투자 금액은 전년 동기(8,308억원) 대비 1.1% 감소했지만, 전월(2,639억원)에 비해서는 211.2% 폭증했다. 투자 건수도 전월(90건) 대비 16건 증가하며 올 들어 처음으로 100건을 돌파했다.
전월 대비 대규모 투자 유치 건수가 증가하며 전반적인 투자 규모가 눈에 띄게 커졌다. 4월 2건에 불과했던 300억원 이상 투자는 5월 들어 8건까지 늘었다. 특히 음원 지식재산권(IP) 투자·매니지먼트 기업 비욘드뮤직은 지난달 말 사모펀드(PEF) 운용사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로부터 약 2,000억원 규모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 비욘드뮤직은 우량 음원 IP를 매입한 뒤 가치를 제고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총 2만7,000개 국내 음원 IP를 비롯한 음원 포트폴리오 확장을 투자 유치 요인으로 지목했다.
컬리는 기존 투자자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 아스펙스캐피탈 등 기존 투자자로부터 제3자 유상증자 방식으로 1,200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기업인 대영채비도 스틱인베스트와 KB자산운용으로부터 각각 600억원을 유치했다. 세 기업의 투자 유치 금액만 합해도 자그마치 4,400억원에 달한다. 이 밖에도 뮤직카우가 600억원, 스마트푸드네트웍스가 400억원, 스토리프로토콜이 390억원 규모 자금을 각각 조달하는 등 10곳 이상의 기업이 150억원 이상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모태펀드 문화계정 예산 확대, 콘텐츠·IP 투자 ‘봄바람’
일각에서는 한국벤처투자 모태펀드의 문화계정 예산 확대가 관련 분야 투자를 촉진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지난달 투자가 가장 활발했던 분야는 콘텐츠·소셜 분야(2,518억원, 13건)였으며, 유통·물류(1,240억원, 6건) 분야가 그 뒤를 이었다.
올해 한국벤처투자가 GP 모집 당시 문화계정 출자사업에 할당한 예산은 2,475억원에 달한다. 2019년 1,080억원, 2020년 1,460억원, 2021년 1,440억원, 2022년 1,641억원으로 점차 확대되던 문화계정 예산이 올해 2,475억원까지 늘며 그 증가폭을 대폭 키운 것이다. 이는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소관 1차 정시출자 사업 예산인 1,835억원 대비 640억원가량 많은 수준이다.
올해 1차 심의를 통과한 조합은 총 21개이며 결성 예정액은 6,412억원, 출자요청액은 3,350억원 규모다. 특히 문화콘텐츠 IP(지식재산권) 관련 중소·벤처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K-콘텐츠 IP 분야에 결성예정액의 3분의 1 이상인 2,506억원이 집중됐다. 지난 5월 비욘드뮤직, 뮤직카우 등 콘텐츠·IP 관련 기업이 줄줄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셈이다.
업계에서는 5월 투자 급증이 정부 모태펀드 자금의 영향력을 입증한 사례라는 평이 나온다. 글로벌 경기 침체 이후 벤처투자 업계의 정부 지원금 수요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처럼 벤처투자 시장 전반이 위축된 가운데, 정부 문화계정 모태펀드가 시장에 뛰어들어 활기를 불어넣으며 비로소 관련 분야 벤처투자가 활성화됐다는 분석이다.
몸값 낮추더라도 생존이 먼저다, 컬리의 ‘다운라운드’
일각에서는 지난달 스타트업 투자가 급증한 원인으로 대형 스타트업의 ‘다운라운드’를 지목한다. 다운라운드는 기업이 후속 투자를 유치할 때 이전 라운드에서 인정받은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어 투자받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스타트업계의 ‘혜성’으로 평가받던 컬리는 2021년 말 프리 IPO 라운드에서 앵커PE로부터 2,500억원을 유치, 4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시장에선 상장을 앞둔 컬리의 기업가치가 7조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금 시장 경색으로 인해 컬리의 기업가치는 1조원 이하까지 곤두박질쳤고, 결국 올해 1월 상장 의사를 자진 철회했다.
컬리는 최근 들어서야 몸값을 소폭 회복했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0.5% 증가한 2조372억원을 기록하면서다. 컬리는 지난달 1,2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2조9,000억원 수준의 몸값을 인정받았다. 지난 1월 기업가치가 1조원대까지 곤두박질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방’이지만, 2021년 프리 IPO 당시 인정받은 4조원의 몸값은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자금 시장이 경색되며 당장의 유동성 확보가 어려워지자, 지난 라운드 대비 몸값을 낮춰서라도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다운라운드를 자처하는 대형 스타트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며 투자 시장의 ‘돈맥경화’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생존이 급한 스타트업들이 몸값을 낮춰서라도 자금 유치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