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도 모태펀드 예산 확대, “예산 쏟아붓기만으론 안 된다” 신음하는 벤처 업계
중기부 내년도 모태펀드 예산 계획 5,000억원, 최근 2년 이래 최대 규모 이어지는 벤처투자 혹한기에 결국 정부 개입, 업계 “시장 변화에도 주목해야” 국내 벤처업계 위기 해결하려면 ‘자체 역량’ 기를 수 있는 지원책 필요
정부가 내년 모태펀드 출자 예산을 대폭 확대해 2021년 수준으로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2024년도 세입세출예산안 요구서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중소기업 모태조합(모태펀드) 출자 사업 규모를 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종식 이후 벤처투자 시장 상황이 급변한 만큼, 단순 예산 확대 외에도 시장 상황을 반영한 정부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어지는 투자 위축의 원인을 거시경제가 아닌 현재 시장 내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예산 삭감 후 시장 대폭 위축, 정부 개입 불가피
2024년 모태펀드 출자 사업 규모는 올해 예산 2,835억원 대비 76.4% 증가한 수준이다. 중기부가 제출안 계획안이 수용될 경우 내년 모태펀드 출자 예산은 2022년 이래 최대 규모가 된다. 올해 모태펀드 예산은 2,835억원 수준이며, 지난해 최종 투입된 예산은 4,400억원 규모였다.
그간 벤처투자 업계에서는 모태펀드 예산 삭감에 대한 비판이 이어져 왔다. 모태펀드 예산 규모는 실제 투자 집행은 물론 시장 전반의 투자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1년까지 모태펀드에 연간 약 1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왔으나, 2022년부터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며 업계의 원성을 샀다. 실제 모태펀드 출자가 크게 감소한 올해 1분기 신규 벤처투자액은 8,8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3% 급감했다.
중기부의 모태펀드 예산 확대는 최근 이어지는 벤처투자 시장의 ‘혹한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시장을 뒤덮자 정부의 시장 개입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기재부 역시 지난 3월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내리며 창업 초기, 스케일업, 초격차 분야 등 혁신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지원 강화를 투자 중점 방향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내년 중기부뿐만 아니라 전략 분야를 육성하는 타 부처에서도 모태펀드 출자를 늘릴 것이라는 기대가 실린다.
엔데믹 전환 이후 급변한 벤처투자 시장
한편 업계에서는 단순히 예산 규모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시장 상황에 적합한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벤처투자 위축의 원인을 고금리, 경기 침체 등으로 한정할 수는 없으며, 시장 회복을 위해서는 새로운 흐름에 맞는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실제 코로나19가 엔데믹에 접어든 이후 벤처투자 시장의 ‘트렌드’ 및 주요 산업은 빠르게 변해가는 추세다.
먼저 투자자들이 후기 기업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최근 국내 투자 기업의 기업가치가 줄줄이 미끄러지자 시장은 벤처펀드에 신속한 투자 집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리스크가 큰 초·중기 기업보다 비교적 안정적이며 단기간 내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후기 기업에 투자금이 몰리는 것이다.
실제 1분기 기준 창업 3년 초과 7년 이하 중기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는 전년 동기(1조205억원) 대비 71.1% 감소한 2,948억원을 기록했다. 중기 창업기업이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4%로, 2021년 47.6%, 지난해 45.9%에 비해 눈에 띄게 감소했다. 반면 후기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37.9%로 크게 늘었다.
투자금이 몰리는 업종도 급변하고 있다. △ICT 서비스 △유통·서비스 △바이오·의료 등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규모 투자금을 쓸어모으던 분야들은 올 들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반면 영상·공연·음반 분야의 경우 올 1분기 1,102억원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이는 전년 동기(지난해 1분기 1,016억원) 대비 8.5% 증가한 수준이다.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6%에서 12.5%로 7.9%P 증가하며 급격하게 영향력을 키워가는 양상이다.
실제 최근 △하이퍼코믹 콘텐츠 제작사 아크리아스튜디오 △배경음악 IP 회사 뮤팟 △음원 IP 기업 비욘드뮤직 △음원저작권 투자플랫폼 뮤직카우 등 수많은 IP 비즈니스 스타트업이 얼어붙은 시장에서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이목을 끈 바 있다. 이들 미디어·콘텐츠 IP 스타트업이 각광받는 것은 프로젝트 단위 투자를 통해 빠른 회수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예산 쏟아붓기’만으로는 부족하다
벤처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이 자체적인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인력 지원 사업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최근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평가 및 개선방안’을 통해 인력 지원을 대폭 축소한 이후 다수의 초기 스타트업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고용부가 내놓은 개선안에 따라 중소·벤처기업 재직 청년에게 최대 3,000만원의 목돈을 지원해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청년 재직자 내일채움공제’의 내년부터 제조·건설 분야로 지원 범위가 축소됐다. 정보통신(IT) 분야 기업이 대거 포진해 있는 스타트업계가 사실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셈이다. 스타트업의 주요 인력인 IT 활용 가능 직무에 청년 채용 시 지원하던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은 아예 폐지됐다.
‘스타트업은 사람이 전부’라는 말이 있다. 인력 하나하나가 스타트업의 성장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세계를 덮친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자체 역량을 다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시작된 정부 인건비 지원 축소, 이어지는 투자 혹한기로 국내 스타트업의 성장은 사실상 정체해 있다. 예산을 쏟아부어 일시적으로 자금을 충당하는 지원책이 아닌, 스타트업이 자체적인 역량을 기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