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사이언스 창업 지원 계획’ 나왔지만, 일할 전문 인력이 없다

과기부, 딥사이언스 맞춤형 창업 지원 및 창업 생태계 조성 나서 미래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딥사이언스, 한국 실력 세계 수준에 못 미쳐 향후 시장 경쟁 위해 창업 지원 아닌 전문 인력 양성 우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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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 21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1일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딥사이언스 창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딥사이언스 창업은 양자 기술, 핵융합, 합성생물학 등 고난도의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창업을 말한다. 2010년 하버드대학교와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창업한 ‘모더나’가 대표적이다.

딥사이언스 창업은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하며 실제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기까지 많은 투자와 시간이 요구된다. 이번 방안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이 나타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구자-경영자 협력형 창업 R&D 지원 및 연구 장비 예산 부담 완화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연구성과 기반 창업 건수는 지난해 기준 2,879개로 전체 창업기업의 0.07% 수준에 불과하다. 국가 R&D 투자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96%로 세계 2위에 오른 것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공공부문의 기술사업화와 창업 지원 조직의 전문성 부족과 민간 전문기관의 R&D 연구성과에 대한 낮은 접근성 문제도 지속 제기돼 왔다. 이에 과기부는 딥사이언스 창업 R&D에 2027년까지 7,000억원을 투자해 R&D 창업기업을 5,500개로 확대하고, 창업기업의 생존율도 85%로 높인다는 구상이다.

먼저 연구자와 경영자가 각자의 장점과 역량을 살려 딥사이언스 분야의 기술혁신과 창업을 병행할 수 있는 ‘연구자-경영자 협력형 창업 R&D’를 지원하고, 강한 지식재산의 확보를 위해 딥사이언스 분야 유망 연구성과를 경쟁형 방식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또한 딥사이언스 창업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 등을 지원하기 위해 2027년까지 최대 4,500억원 수준의 ’(가칭)딥사이언스 마중물 펀드‘를 조성하고 필수 연구시설이나 장비 활용에 대한 예산 부담 완화도 추진한다.

아울러 민간 전문기관이 대학 및 출연연의 공공 연구성과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해 ‘민간 중심의 기술사업화 지원체계’를 구축, 창업 단계별·부처별로 분절된 프로그램을 클러스터와 연계해 패키지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어 혁신제품에 대한 혁신성 평가 시 딥사이언스 분야 제품을 우선 고려하고 시범 구매 제품 유형(물품, SW, 서비스 등)과 구매방식(구매, 리스, 구독 등)도 다양화한다. 이 밖에도 외부 전문가 활용 시 성과 보상 구체화, 주식 등 다양한 방식의 성과 보상 근거 마련 등 딥사이언스 창업을 촉진하기 위한 법령 및 제도 정비도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공공(연) 연구자가 연구 사업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이해충돌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연구성과 활용 창업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한국의 현실은 딥사이언스 후발주자

딥사이언스 분야는 향후 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분야로 꼽힌다. 양자컴퓨팅 분야가 대표적이다. 양자컴퓨팅은 양자 중첩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해 슈퍼컴퓨터도 100만 년 걸리는 계산을 단 몇 초 만에 풀어버린다. 심지어 짧은 시간 안에 억·조·경 단위를 넘어선 경우의 수를 검토할 수 있어 향후 인공지능(AI) 러닝머신 개발, 신소재 발굴, 배터리 설계, 금융 포트폴리오 개발, 암호화폐 고도화 등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유럽연합(EU) 등 해외 주요국이 글로벌 양자 기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력 제고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의 양자 기술 수준은 미국·EU의 60~80% 수준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따르면 2016년부터 5년간 발행한 관련 논문에서 피 인용된 한국의 양자컴퓨터 전문 인력은 총 264명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3,526명 △EU 3,720명 △중국 3,282명 등 해외 주요국의 10%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특히 한국과 선두권 국가 간의 양자 기술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양자컴퓨터 큐비트 수준이다. 미국의 IBM은 현재 운영 중인 65큐비트 양자컴퓨터 ‘허밍버드’에 이어 127큐비트 양자컴퓨터 ‘이글’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IBM은 이에 그치지 않고 2024년에는 큐비트를 433개로 늘린 ‘오스프리’를, 2025년에는 큐비트 1,121개로 만든 ‘콘도르’를 개발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양자컴퓨터 개발 목표는 2025년까지 20큐피트다. 매년 큐비트 수를 두 배 가까이 늘리고 있는 미국과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의 양자 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 미국은 국가적 연구지원을 위해 2018년 12월 ‘국가 양자 연구 집중 지원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AI 및 양자컴퓨팅 연구센터 설립과 지원에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서야 양자 기술 개발 지원을 위한 중기 예산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심지어 아직 양자 기술 육성을 위한 근거 법도 없다. 양자 기술 육성 지원을 골자로 하는 ‘양자 기술 개발 및 산업화 촉진에 관한 법 제정안’은 1년 가까이 국회에 발이 묶여있는 형국이다.

IBM 관계자가 양자컴퓨터를 점검하고 있다/사진=IBM

글로벌 시장 경쟁 위한 인재 양성 시급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에 따르면 2021년 기준 AI 분야의 국가별 기술 수준은 미국(100)이 가장 높고 그다음이 중국(93.3), 유럽(92.9), 한국(89.1), 일본(86.9) 순이다. 2016년 한국의 미국 대비 AI 기술 수준이 73.9%였던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집중 투자를 통해 기술 격차를 89.1%까지 좁힌 것은 일견 긍정적이다. 하지만 기술 수준의 세계 순위는 5년 동안 4위에 머물러 있다. 해외 주요국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술 순위가 정체돼 있다는 것은 곧 시장 경쟁력 약화를 의미하는 만큼 아쉬운 결과다. 한편 지난 2016년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기술 수준이 낮았던 중국이 어느새 우리를 제치고 세계 2위 수준으로 성장한 점이 눈에 띈다. 우리 AI 성장 전략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일각에서는 AI 분야의 성장 지체를 기초 역량 부족의 문제로 해석한다. AI 업계 관계자 A씨는 대부분의 AI 연구자가 AI 관련 기초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다수의 AI 연구자들은 그저 다른 전문가의 연구·접근을 약간 바꾼 논문 쓰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인력들이 전혀 새로운 연구 과제 및 트렌드를 접하게 될 때다. A씨는 현재의 연구 유행이 지나고 새로운 유행이 찾아올 때 기본기 없는 연구자들이 대부분 도태될 것이라 우려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AI 대학원 등을 설립하고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AI 전문가 부족’을 우려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양자컴퓨터 등 딥사이언스 분야도 마찬가지다. 기초 실력 없이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해외 주요국과의 양자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국가가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문한섭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양자 기술 연구를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했다”며 “그런데도 투자 규모도 작고 전문인력까지 부족해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동헌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도 “양자 기술 관련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원 수준에서 인력을 양성하고, 장기적 안목에서 꾸준히 지원해야 한다”며 “양성된 인력이 이후 각계로 진출할 수 있도록 산학연 모든 분야에서 관련 일자리가 창출돼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