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IPO 시장 속 글로벌 VC들 ‘유동성 확보’ 위해 비상장 지분 매각, 세컨더리 거래도 활발
美 VC 타이거 글로벌, 비상장 포트폴리오 매각 통해 유동성 확보 지난해 세컨더리 거래량 600억 달러까지 증가, 시장 위축에 투자자들 관심 쏠려 국내서도 세컨더리 펀드 성장세, 다만 일부 ‘악성 매물’은 투자자로부터 외면
기업공개(IPO)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자 자금회수 압박이 높아진 글로벌 주요 벤처캐피탈(VC)들이 포트폴리오 매각에 나서고 있다. 타이거 글로벌 매니지먼트 등 주요 VC는 비상장 주식 포트폴리오 일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시장에선 세컨더리(구주) 거래도 급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세컨더리 펀드 조성이 늘고 있지만, 일부 경영 상황이 악화된 ‘악성 매물’들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IPO 시장 전년 대비 61% 줄어들자, VC들 포트폴리오 변화
15일(현지 시간) 글로벌 벤처 투자 정보기업 피치북에 따르면 타이거 글로벌은 30개 회사의 일부 지분을 스트립 세일 방식으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각 규모는 400억 달러에 달하며 대부분 비상장 주식 포트폴리오다. 다만 어떤 지분이 매각 대상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스트립 세일 방식은 여러 회사의 지분을 한 데 묶어 매각하는 것을 일컫는다. 가치평가가 어려워 매각이 순탄치 않은 일부 지분을 다른 주식과 함께 매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로 제값을 받지 못하고 낮은 가격에 매각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경우에 사용하는 매각 방식이다.
타이거 글로벌과 같은 유명 VC가 자산과 일부 지분을 패키징해 매각하는 이유는 IPO 시장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전 세계 IP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은 215억 달러(약 27조5,610억원)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무려 61%나 줄어든 수치다.
세컨더리 펀드도 급증, 앞으로 더 늘어날 것
스트립 세일을 시도하는 VC는 타이거 글로벌뿐만이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유명 VC 세인츠 캐피털도 최근 일부 포트폴리오 지분을 매각하고 있다. 세인츠 캐피털의 켄 소여 매니저는 “순자산가치(NBV)가 적어도 2억 달러 이상인 5개의 포트폴리오가 있다. 이들 대다수는 유명 펀드와 매니저먼트에 속한 자산들”이라며 “심각한 문제는 이들 자산을 매입하려는 투자자가 없다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시장 침체가 지속되자 VC, AC, 엔젤 투자자등이 보유한 벤처 지분을 매입하는 세컨더리 펀드도 급증하고 있다. 세컨더리 펀드는 대체 유동성 공급원으로서 일종의 자금조달 피난처 역할을 한다. 특히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글로벌 세컨더리 시장 규모는 570억 달러로, 2021년 같은 기간의 48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글로벌 VC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세컨더리 투자가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신규 투자와 회수 시장 축소가 지속됨에 따라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기존 투자자와 검증된 기업 지분을 할인된 가격에 매입하길 원하는 신규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VC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른 세컨더리 펀드
국내 벤처시장에서도 세컨더리 펀드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국내 역시 최근 IPO 시장이 급격히 위축됨에 따라 벤처 기업들이 중기 및 후기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캐피탈이 결성한 세컨더리펀드 규모는 5,914억원으로 전년 동기(4,914억원) 대비 19.7% 증가했다. 올해 1분기의 경우 552억원 규모의 세컨더리 펀드가 이미 결성됐으며, 하반기에 DSC인베스트먼트의 펀드와 모태펀드 출자 펀드들이 결성을 완료하면 6,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정부가 모태펀드 조성을 통해 세컨더리 펀드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도 시장 확대에 대한 긍정적 신호다. 지난 3월 중소벤처기업부는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를 위해 약 5,000억원 규모의 모태펀드 출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간 민감자금으로만 조성되던 일반 세컨더리 펀드를 부활시키고, 사모펀드 자금을 VC 업계에 유입시켜 ‘투자-회수-재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구상에서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세컨더리 펀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국내 VC 심사관은 “그간 급격한 기업가치가 하락으로 지분 매각을 망설이던 기존 투자자들이 있었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되는 고금리로 자금압박을 심하게 받는 기업들이 늘면서 세컨더리 펀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지난해와 달리 시장에서 할인율이 안정화되면서 앞으로도 세컨더리 거래는 계속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컨더리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특히 세컨더리 펀드의 주 투자처가 구주, 이 가운데서도 만기가 거의 도래한 매물들로 인해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구주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투자자에게 이런 ‘악성 매물’은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라 정부 주도의 모태펀드 자금 마련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자금이 묶여 유동성이 급격히 떨어진 저축은행 등의 금융권이 세컨더리 펀드에 자금을 유치할 여력이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글로벌 경기 둔화가 예고됨에 따라 이 같은 추세가 뒤바뀌긴 어려울 거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