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가격 경쟁 ‘과열’, 기세 높은 테슬라에 현대차그룹도 ‘백기’드나

테슬라 가격 인하 전략에, 너도 나도 “가격 내리겠다” 내수시장서 힘 못 쓰는 BYD, 테슬라 아성에 짓눌려 현대차그룹, 경영상 유례없는 ‘호실적’ 내곤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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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모델Y/사진=테슬라

세계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EV) 가격 경쟁에 나섰다. 테슬라의 공격적 가격 인하 전략에 백기를 든 셈이다. 현대차그룹도 EV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라인업 확대로 가격 경쟁에 대응하겠단 방침이지만, 가격 경쟁 시대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는 만큼 현대차그룹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의 ‘공격적 전략’에, 완성차 업체들 ‘백기’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EV 세계 1위 업체인 미국 테슬라의 수차례에 걸친 가격 인하 단행은 세계 완성차 업계의 EV 가격 경쟁을 촉발했다. 테슬라는 앞서 작년 말부터 미국·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EV 가격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또 5월부턴 미국에 있는 ‘모델3’ 재고 차량에 대해 1,300달러(약 168만원) 이상 할인을 제공하고 있다.

테슬라의 시장 점유율은 2020년 22.3%에서 지난해 16.4%까지 줄었다. 테슬라가 공격적인 가격 인하 전략을 택한 배경이다. 테슬라는 지난 1월 주력 모델인 모델3와 모델Y 차량 가격을 각각 14%, 20% 인하했고, 지난 3월에도 고급형 EV 제품군 가격 인하 소식을 알렸다. 구체적으로 럭셔리 세단형 EV인 모델S 가격을 9만4,990달러(약 1억2,325만원)에서 8만9,990달러(약 1억1,676만원)로 약 5% 낮췄고, 럭셔리 전기 SUV 차량인 모델X 가격은 10만9,990달러(약 1억4,271만원)에서 9만9,990달러(약 1억2,974만원)로 9% 인하했다. 지난 4월에도 모델3, 모델S, 모델X의 가격 인하하며 총 5차례의 EV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테슬라의 공격적 전략에 업계 전반이 영향을 받는 모양새다. 실제 버티기 전략을 고수하던 완성차 기업 중에서도 백기를 드는 기업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미국 포드는 5만9,974달러(약 7,782만원)이던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의 가격을 17%(9,979달러) 내렸고,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중국에서 캐딜락 EV인 ‘리릭’의 시작 판매가를 43만9,700위안(약 7,933만원)에서 31만9,700위안(약 5,768만원)으로 14% 인하했다. 독일 폭스바겐도 중국서 브랜드 EV 라인업(ID.시리즈) 가격을 8~27% 인하키로 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차급별 EV 라인업 확대로 가격 경쟁에 대응하겠단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기아의 경우 EV6에 이어 EV9·EV5로 이어지는 EV 풀라인업을 갖췄다”며 “현재의 경쟁력 우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0년까지 EV 종류를 31종까지 늘릴 계획이다. 가격 경쟁이 집중되는 차급 외 모델에서 기존의 수익성을 유지함으로써 가격 경쟁을 정면 돌파하겠단 취지다.

테슬라 기세에 눌린 BYD

EV 시장 글로벌 1위 BYD(비야디) 또한 테슬라의 기세에 사실상 눌렸다. BYD는 지난 3월 주요 차종에 대한 가격 인하를 발표했는데, 구체적으로 18만 위안(약 3,434만원)부터 시작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쑹 플러스는 6,888위안(약 131만원)을 낮췄고 세단 모델인 씰 판매가는 8,888위안(약 169만원)을 할인한다. 씰의 가격대는 22만 위안(약 4,198만원) 수준이다.

가격만 놓고 보면 BYD가 테슬라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중국인의 브랜드 충성도는 테슬라가 더 높은 만큼 BYD 입장에선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판매량 역시 테슬라가 우위다. 테슬라의 모델Y는 중국에서 지난달까지 3만9,710대가 팔린 반면 BYD의 쑹 플러스는 3만4,621대 판매에 그쳐 5,000대 이상 뒤처졌다. 이런 가운데 테슬라는 현재 가격 인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올해 1월 테슬라 중국 내 판매량은 6만6,051대로 지난해 12월 판매량(5만5,796대)보다 18%가 증가했다. 그러잖아도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테슬라가 가격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입지를 굳건히 다지는 모양새다.

내수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자 BYD는 내수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동남아 시장에서 벗어나 유럽과 호주, 영국 등으로 수출국을 다변화하는 중이다. 그러나 BYD는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미미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유럽 시장에선 BYD 주요 모델이 중국보다 2배 이상 비싸 수출로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테슬라의 아성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현대 아이오닉5, 기아 EV6, 제네시스 GV60, 현대 아이오닉6/사진=현대자동차그룹

‘확신’ 없는 현대차그룹, 깊어지는 고민

가격 경쟁이 격화되면서 중국 업체들 사이에서 가격 경쟁 지양을 약속하는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으나, 실상 가격 인하 경쟁은 여전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제일자동차와 독일 폭스바겐의 합작사인 이치폭스바겐은 지난 7월 ID 시리즈 EV 판매 가격을 8만7,000위안(약 1,560만원) 인하했다. 이날 상하이자동차와 폭스바겐 합작사인 상치폭스바겐도 순수 EV ‘ID3′ 가격을 최대 3만7,000위안(약 658만원) 내렸다. 상하이GM우링 역시 전기 SUV인 캐딜락 리릭 모델의 가격을 6만 위안(약 1,070만원) 내리면서 최저 가격을 38만 위안(약 6,760만원) 미만으로 조정했다. 중국 자동차 업계의 가격 인하 경쟁에 다시금 불이 붙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고민도 깊어져만 간다. 현대차그룹은 올 2분기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등 경영상으로는 유례없는 호실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판매량을 늘리고자 앞다퉈 EV 가격 경쟁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수익성과 시장 점유율 간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여부엔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확신’이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