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 벤처투자 예산 내년부터 확대, 가라앉은 벤처투자 시장 살릴 수 있을까
최근 줄줄이 삭감된 모태펀드 예산, 정부 ‘2023년 대비 44.8% 증액’ 발표 모태펀드 예산 삭감·경기 둔화 여파로 가라앉은 투자 시장, 유동성 말랐다 美 기준금리 하락 내년 하반기? 이어지는 민간 투자 위축, 이걸로 괜찮은가
중소벤처기업부가 내년 벤처·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모태조합(모태펀드) 출자 예산을 4,54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이는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됐던 올해 대비 44.8% 증가한 수준이다. 중기부는 이를 바탕으로 총 1조원 규모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업계는 소극적인 정부의 예산 확대에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경기 침체 국면이 이어지며 벤처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2021년 대비 턱없이 적은 정부 예산으로는 시장을 견인해나갈 수 없다는 평이다. 설상가상으로 천장까지 치솟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내년 하반기에야 하락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며 시장에 드리운 그림자는 점차 짙어지는 추세다.
모태펀드 포함 벤처 예산 증가
2024년 중기부의 벤처·창업 관련 예산은 1조4,452억원으로 올해보다 1,223억원(9.2%) 증가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스타트업 자금난 해소를 위한 모태펀드 예산 확대다. 중기부는 2020년부터 이어져온 모태펀드 예산 감소세를 멈추고, 내년 모태펀드 예산을 올해보다 1,405억원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모태펀드 출자를 통해 ‘스타트업코리아펀드’, ‘글로벌펀드’ 등 약 1조원의 투자 자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스케일업 팁스 예산은 올해 1,101억원 대비 203억원(18.4%) 확대된다. 정부는 국내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글로벌 팁스’ 트랙을 신설, 추가적으로 20개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2013년 도입된 스케일업 팁스는 급변하는 기술·시장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민간 주도 방식의 R&D 수단으로, 민간 운영사(VC+연구개발 전문 회사 컨소시엄)가 스케일업 단계 유망기업을 발굴해 선제적으로 투자하면 정부가 매칭 지원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 예산은 1,031억원으로 올해보다 41억원(3.8%) 줄었다. 중기부는 국가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 모빌리티 △친환경·에너지 △로봇 △빅데이터·AI(인공지능) △사이버 보안·네트워크 △우주항공·해양 △차세대 원전 △양자기술 등 10대 미래 신산업 분야 스타트업 약 500개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글로벌 기업이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정부가 사업화 자금을 연계하는 ‘글로벌 기업 협업 프로그램’에는 올해 405억원보다 6.2% 증가한 43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지원 대상 스타트업은 270개사에서 약 290개사까지 늘어난다.
줄줄이 삭감된 모태펀드 예산, 벤처투자 ‘침체’
정부는 최근 모태펀드 예산을 줄줄이 삭감하며 벤처업계의 비판을 산 바 있다. 모태펀드 출자 예산은 2020년 1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까지 3년 연속 감소했다. 경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며 민간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정부 모태펀드까지 쪼그라들자, 벤처투자 시장은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모태펀드 예산 확대는 올해 예산 삭감 이후 숱하게 쏟아진 업계 비판에 대한 정부의 피드백으로 보인다.
올해 모태펀드 예산은 당초 총 3,135억원으로 지난해 모태펀드 예산(5,200억원) 대비 60% 수준에 그쳤다. 2021년 1조700억원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한층 커진다. 예산 삭감에 대한 업계의 비판이 빗발치자 정부는 뒤늦게 1,000억원을 증액했으나, 이는 벤처캐피털(VC)이 조성하는 벤처펀드 출자가 아닌 연구개발(R&D) 매칭펀드에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VC 생태계 내 정책자금의 비중을 줄이고 민간 자본의 비중을 늘리겠단 기조하에 예산 감액을 결정했다. 민간모펀드 출자자에 세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민간 투자를 촉진, 정부 자금의 공백을 민간 자금으로 메꾸겠다는 구상이다.
정책 자금이 빠져나가는 가운데 대규모 민간 자본을 유치하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계획은 사실상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모태펀드 출자가 감소한 올해 1분기 신규 벤처투자액은 8,815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60.3% 줄었다. 지난 2년 동안의 상승분(1조4,481억원) 중 92%가 빠져나갔을 정도다.
얼어붙은 투자 시장, 소규모 증액 ‘능사’ 아냐
이번 모태펀드 예산 확대가 시장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예산 확대 규모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모태펀드 예산은 2020년, 2021년 1조원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택도 없이 적다. 경기 둔화로 투자 시장 전반이 가라앉은 가운데, 소극적인 정부 예산 확대로 투자시장 활성화를 견인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어지는 고금리로 몸을 움츠린 민간 투자 시장이 한동안 침체 상태에 머무를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내년 하반기는 돼야 시작될 것이라는 시장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다.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 계속 하락한다면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경우 실질금리가 상승할 것이고, 이는 연준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윌리엄스 총재는 내년이나 그다음 해에 금리 인하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으며, 내년 상반기 금리 인하는 이르다고 덧붙였다. 이는 내년 3월에 금리가 0.25%포인트 인하될 것이라는 미국 선물시장의 기대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윌리엄스 총재의 발언은 빨라도 내년 하반기에나 금리 인하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처럼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3高’ 복합 위기가 이어지면 민간 투자자는 자연히 지갑을 닫게 된다.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 확대 규모까지 기대치를 밑돈 만큼, 벤처투자 시장을 휩쓴 찬바람은 내년까지도 벤처기업의 살을 에는 ‘칼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