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내 수업 돌려줘요”, IT·AI ‘순수혈통 기술자’ 고집한 대학이 빚은 촌극
IT·AI 교수 구인난 심화, 수강신청 당일 폐강되기도 “경쟁률 높지만, 조건 맞는 교수 없어” 구인난 아닌 구인난 강의 수준 하락→졸업자 불신 악순환
지방 중소 대학에서 시작된 교수 구인난이 서울 유명 대학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주력하는 IT 및 인공지능(AI) 관련 분야의 구인난은 더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균관대, 한양대, 경희대 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AI 분야 교수를 영입하지 못해 추가채용에 나섰으며, 이 외에도 다수의 대학이 개설 예정이었던 빅데이터, 머신러닝 등 강의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처럼 IT 및 AI 분야 교육 인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관련 전공 졸업자 및 졸업 예정자들의 실력에 대한 기업들의 신뢰도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관련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며 시장 성장을 도모 중인 가운데 우수한 인력 확보가 곧 성장 가능성을 의미하는 기업들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연이은 폐강, 남아있는 강의들도 ‘단순 실습’에 가까워
중앙대는 1일 2023학년도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지난달 16일부터 18일에 걸쳐 수강신청을 진행했다. 16일은 짝수 학번, 17일은 홀수 학번, 18일은 통합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이번 수강신청에서 소프트웨어학부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큰 혼란을 겪었다. 대다수 학생이 수강신청을 마친 17일 오후 ‘산업체핸즈온프로젝트’ 수업이 폐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폐강 사유는 담당 교수 미배정이다. 해당 강의를 시간표에 넣었던 학생들은 부랴부랴 다른 강의를 찾아야 했고, 이들 중 일부는 전공과 무관한 교양 수업을 늘리는 등 불이익을 입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학생은 “교수님이 공석인 상태에서 수강신청을 받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지적하며 “이번 학기 시간표도 망가져 졸업 계획에도 차질이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교육부가 운영하는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서울권 대학 32곳(전문대 및 신학대 제외)의 신임교원 채용 건수는 2020년 1,248건에서 2022년 1,128건으로 약 10% 급감했다. 이같은 감소세는 공학 계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실제로 공학 계열 법정 전임교원 충원율은 70%로, 인문‧사회 계열(98.3%), 자연 계열 (99.06%) 등과 비교했을 때 30%p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이론 분야 교수 채용은 무난히 이뤄지고 있는데, 산업체 경력이 있는 실습 분야 교수들을 모셔 오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같은 고충은 대학들이 ‘관련 전공자’, ‘산업체 경력자’ 등으로 시야를 한정해 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부 지원 부처협업형 인재양성사업을 진행 중인 한 대학의 관계자는 “일단 공고를 내면 채용 인원의 다섯 배가 넘는 지원자가 몰릴 때도 있지만, 대학이 제시하는 요건을 갖춘 인재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교수 구인난을 호소하는 대학들이 실상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다양한 인재 유입을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에서 이뤄지는 강의의 신뢰도 역시 떨어지고 있다. 연이은 폐강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강의들은 대부분 현장 실습형이라는 명목 아래 이뤄지는데, 이들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들은 학문적 이론이 다소 부족한 ‘기술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학에서는 학문적 지식을 풍부하게 쌓아 올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며 “지금의 대학 강의들은 실업계 고등학교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일찌감치 예견된 교수 구인난,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사실 IT 관련 분야 교수 구인난은 일찍이 예견된 일이었다. 정부의 4차 산업혁명 경쟁력 강화 움직임에 따라 2019년 AI 대학원을 개설한 카이스트, 고려대, 성균관대 등이 일제히 교수 충원에 난항을 겪으면서다. 당시 카이스트는 3명의 교수를 채용할 예정이었지만 2명밖에 영입하지 못했으며, 고려대와 성균관대는 단 한 명의 교수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이들 대학은 부랴부랴 관련 학부에서 교수들을 모아 첫 학기를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AI 대학원 3곳에 10년간 총 19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설 투자와 학생 장학금 등을 지급하면 교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투자를 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대기업과 해외 연구기관들이 제시하는 파격적인 조건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악조건’이라는 설명이다. 당시 한 AI 대학원 교수는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AI를 가르칠 정도의 전문가라면, 대기업들도 영입하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문가 유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지금 같은 조건으로는 실력 있는 교수들을 교육 현장으로 불러들일 수 없을 것 같다”고 덧붙이며 어두운 미래를 예견했다.
다양한 학문 아우르는 AI, 인재풀 좁혀선 안 돼
해외 대학들은 AI가 순수·단일 학문이 아닌 응용·복합 학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다수의 해외 유수 대학은 인재 풀을 넓혀 물리학, 뇌과학, 통계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 지식을 ‘융합’하는 데 집중했고, 그 결과 빠른 속도의 발전과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 뉴욕대학교(NYU)가 대표적인 예다. NYU 데이터 사이언스 프로그램 교수진 20여 명 중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 전공은 30% 남짓에 불과했다. 우리 대학들이 전기 및 컴퓨터공학 전공자들로만 교수진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된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인재 양성을 위해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으면서까지 AI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정부의 행보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AI와 인류가 함께하는 미래가 빠른 속도로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집행의 일선이자 인재 양성의 요람인 대학들이 ‘특정 기술자’를 외치기보다 시야를 넓혀 다양성과 포용성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