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타는 테마주, 쏟아지는 ‘속 빈 강정’에 과학계서도 우려↑

테마주 열풍에 떨어져 나가는 개미들, “쑥 몰렸다 쑥 빠진다”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는 개미들, 과학계 “시스템 혼란 우려 있어” “과학계에 덧씌워진 ‘장밋빛 환상’ 무너뜨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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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전지, 초전도체, 맥신 등 실체 없는 과학 테마주들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테마주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개미들이 널을 뛰고 있다. 테마주는 역사적으로 금세 부자가 될 것 같다가도 매도 타이밍을 잠깐 놓치면 빠져나가지 못해 큰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감독 당국도 테마주 투자에 유의하라고 경고 메시지를 보고 있다.

테마주, 투자자 ‘폭탄 돌리기’의 시작

테마주의 인기는 1996년 코스닥 시장이 문을 연 직후인 1999년부터 시작돼 시장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우량 대기업의 집합소인 코스피 시장과 달리 코스닥 시장은 기술력이 있는 중소 벤처기업들의 리그라는 정체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테마주들과는 ‘불가분 불가원’의 관계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코스닥 시장 개화 후 첫 테마주는 IT 벤처였다. ‘IT 버블’로도 통하는데, 1995년부터 2001년 인터넷 산업 성장 시기 글로벌 IT 기업들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도 닷컴 열풍이 불었다.

미국 닷컴 버블의 시작이 ‘넷스케이프’였다면 국내는 1998년 10월 상장한 ‘골드뱅크커뮤니케이션즈(이하 골드뱅크)’였다. 당시 골드뱅크는 인터넷 광고를 보면 현금을 준다는 사업 모델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듬해 2월, 15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며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상장후 시초가 800원이던 주가가 이듬해 3만원까지 뛰기도 했다. 그러나 골드뱅크는 11년 만인 지난 2009년 상장 페지됐다. 당시 줄줄이 주가가 급등한 기업들도 IT 버블이 터지면서 많은 피해자가 양산됐다.

코스닥 시장에 국한되지 않은 테마주 원조를 찾는다면 1987년으로 거슬러 간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북방외교에 공을 들였고, 중국 관계 개선 기대감이 커지는 와중에 ‘만리장성’ 테마가 등장했다.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기로 했는데 대한알루미늄이 알루미늄 창호를 전량 납품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가가 급등한 것이다. 과학 테마주의 원조격을 찾는다면 2004년 황우석 테마주를 꼽을 수 있다.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와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사람 난자를 이용해 체세포를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밝히면서 관련주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황우석 후배 격인 줄기세포 테마도 2011년 증시를 달군 바 있다.

사진=pexels

실체 없는 테마주 ‘속출’, 널 뛰는 주가에 타들어 가는 개미들

이후 2013년엔 3D프린터가, 2014년엔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인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사물인터넷(IoT)이, 2018년엔 비트코인 투자 열풍 속 암호화폐 관련주가 대세로 떠올랐다. 최근엔 이차전지, 초전도체 등으로 궤도가 옮겨간 모습도 포착됐다. 그러나 이들 테마주들은 ‘폭탄 돌리기’와 같다는 점에서 감독 당국의 경고가 이어진다.

실제 테마주 투자는 잘 올라타면 며칠 만에 계좌 원금이 몇 배로 불어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으나, 급락할 때는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깐만 수익 보고 나오면 된다는 심리에 테마주 투자에 뛰어드는 개인들이 많다”며 “기업가치와 본질적으로 관련이 없는 이슈로 급등했다면 결국 주가는 제 가치를 찾아 내려오기 때문에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문제는 제대로 된 배경지식 없이 타인의 말만 믿고 우르르 투자를 결정하는 개미들이 많다는 점이다. 개인투자자들은 테마주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 인터넷 카페, 카카오톡 채팅방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주로 찾아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SNS나 유튜브에서 기승을 부리는 주식 리딩방 사기에 노출될 위험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애초에 테마주로 묶이는 이유가 명쾌하지 않은 사례도 많다. 이렇다 보니 주가가 급등한 기업들이 테마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해명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초전도체 테마주로 주목을 받았던 기업들 중 LS전선아시아, 덕성, 서원 등은 초전도체와 무관하다고 밝힌 바 있다. 맥신 테마주로 묶인 휴비스, 아모센스, 경동인베스트 등도 최근의 호재와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최근엔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았거나 상용화되지 않은 과학 연구 결과를 좇아 테마가 형성되는 경향도 있다. 초전도체 테마주는 퀀텀에너지연구소 등 국내 연구진이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상온 초전도체 LK-99를 만들었다”고 발표하면서 유행이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기술인 만큼 불안정성이 매우 높았다. 실제로 이후 국내외 연구소에서 LK-99에 대한 검증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주가가 롤러코스터 타듯 널을 뛰었다.

‘묻지마 투자’ 광풍, 과학계 “과학 생태계 왜곡될 수 있어”

전문 지식 없는 ‘묻지마 투자’ 광풍은 투자자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남길 우려가 크다. 머지않은 미래 교과서를 다시 쓰게 될 기초연구라 해도 기술 상용화까진 최소 십수 년 이상 걸릴 가능성이 높으나 투자자들은 당장 눈앞의 상수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 중 하나다. 이에 과학계에선 대중의 오해를 초래하지 않도록 성과의 과장을 지양하고 기초연구 성과의 기술성숙도(TRL)를 직관적으로 명시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과학계에선 “최근의 과학 테마주 열풍은 기초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은 실패 등 과정을 바라보지 않고 투자 관점에서 결과 위주로만 주목하는 경향이 이어진 결과물”이라며 “결과에만 집착하다 금세 열기가 사그라지면 기존에 굴러가던 과학계의 생태계와 시스템마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학계는 “과학기술계에서 기초연구 성과에 대한 과장이 있는 게 사실이고, 언론도 독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광고성 기사는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액 투자자들이 기초연구 성과를 이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투자를 판단하기엔 너무나 어렵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기초과학계의 권위를 갖춘 기관이 출범해 국내 과학기술 투자 전반을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개인 투자자가 일일이 기초과학 지식을 갖추도록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만큼 기초과학적 권위를 갖춘 기관이 과학기술 검증을 제대로 이뤄냄으로써 과학계에 덧씌워진 투자자들의 장밋빛 환상을 벗겨낼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