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사로잡힌 K콘텐츠 시장, 콘텐츠도 배우도 ‘마약 중독’
드라마 '단골 소재' 된 마약, 각종 콘텐츠서 가감 없이 등장해 버닝썬 게이트 이후 가시화된 국내 마약 범죄, 대중 관심 증가 이선균·유아인 등 인기 배우 마약사범까지 등장, 병드는 시장
K콘텐츠 시장에 마약 열풍이 불어닥쳤다. 최근 다수의 국내 콘텐츠는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사이다(속이 시원한 이야기, 복수극) 전개’를 이끌어내기 위해 마약 소재를 무분별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에 더해 주연 자리를 독차지하던 일부 유명 배우들은 마약 투약 혐의로 쇠고랑을 찼고, 주연 배우를 잃은 작품들은 공개가 연기된 채 시장을 떠돌고 있다. 그야말로 ‘마약의 시대’다.
K콘텐츠 단골 소재 된 ‘마약’
SBS 드라마 <7인의 탈출>에서는 마약에 취한 주인공들이 집단 학살을 벌이는 장면이 그려진다.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은 괴력을 가진 주인공 모녀가 신종 마약 관련 범죄를 근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4월 종영한 <모범택시> 시즌2는 거대한 마약·성범죄 사건 ‘버닝썬 게이트’를 모티브로 한 ‘블랙썬 게이트’ 에피소드를 방영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자사 콘텐츠 등급을 분류하는 OTT의 경우 한층 묘사 수위가 높다. 넷플릭스에서 공개 중인 U+tv <하이쿠키>는 꿈과 욕망을 이뤄주는 신종 마약이 판치는 치열한 입시 시장을 다뤘다. 작품에 등장하는 마약은 성분이 검출되지 않는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이를 복용할 경우 각성 효과와 환각 등이 발생한다는 설정이다.
디즈니+ <최악의 악>은 형사가 한·중·일 마약 밀매 조직을 뿌리뽑기 위해 잠입 수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넷플릭스 <수리남>은 남미 수리남 내 카르텔과 손잡고 마약 밀매 조직을 만들어 마약왕이 된 조봉행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이 밖에도 수많은 작품이 마약 에피소드를 통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각계를 발칵 뒤집은 ‘마약 스캔들’을 발판 삼아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금기’는 호기심을 부른다
콘텐츠 시장에서 마약은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소재다. 직접적으로 마약 소재를 다루면 그만큼 시장의 주목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다. 이 같은 관심을 발판으로 오히려 작품이 흥행하는 경우도 많다. ‘마약의 나라’라는 오명을 쓴 콜롬비아의 2008년 작품 <카르텔>이 대표적인 예다. <카르텔>은 평범한 중산층 청년이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마약 밀매의 세계로 빠져드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으로, 금기시돼 왔던 소재를 전면에 내세워 흥행에 성공했다.
우리나라 콘텐츠 시장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19년 발생한 버닝썬 사건은 GHB(속칭 물뽕)를 이용한 성범죄 사건, 마약 거래 등 우리나라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다. 버닝썬 사건 이후 경찰이 검거한 마약사범만 자그마치 994명에 달한다. 이를 계기로 대중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던 마약 범죄의 위협이 이미 일상에 스며들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마약에 대한 경각심과 흥미를 동시에 갖게 된 것이다.
이 틈을 타 콘텐츠 시장은 마약을 ‘자극’을 위한 소재로 채택했다. 일례로 넷플릭스의 흥행작 <더 글로리>에는 마약중독자 캐릭터 이사라(김히어라 분)가 등장한다. 작품 내에서 해당 인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약을 거래한다. 마약 복용 상태에서 환각을 보는 장면, 난교를 암시하는 장면, 마약이 합법인 국가로 이주하겠다며 고함을 치는 장면 등도 상세히 묘사됐다. 마약중독자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내며 소비자의 이목을 끌어모은 것이다.
‘마약사범’으로 전락한 배우, 주연을 잃은 작품들
국내 콘텐츠 시장의 마약 문제는 ‘콘텐츠 밖’에서도 존재한다. 최근 들어 배우의 마약 혐의로 인해 작품 공개 자체가 무산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종말의 바보>는 올해 초 공개도 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출연 배우 유아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르면서다. 해당 작품에 출연한 배우 김영웅은 인스타그램에 “뭐라 표현해야 할까. (종말의 바보) 캐스팅 소식의 반가운 전화도, 가슴 설레던 첫 촬영 기억도 모두 물거품이 되려 한다”며 참담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나의 아저씨>, <기생충> 등의 작품에 출연했던 인기 배우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선균은 대마초를 비롯한 여타 마약류를 수차례 흡입·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이미 촬영을 끝내고 올해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 ‘탈출: PROJECT SILENCE’는 이로 인해 공개가 연기됐다. 칸 영화제 초청을 받은 수작이 배우 리스크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드라마 <노 웨이 아웃> 역시 이선균이 하차하며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마약 소재는 콘텐츠 시장을 순식간에 휩쓸며 ‘대중적인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상황에 대한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은 콘텐츠도 유튜브 및 각종 SNS를 통해 순식간에 청소년에게 가닿는 시대다. 수없이 터지는 마약 스캔들, 마약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콘텐츠는 성인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에게도 유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금지된 자극’만을 좇는 시장이 과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