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등에 업고 날아오른 뷰티 산업, 남은 과제는 中과의 ‘각방살이’
올리브인터내셔널 지난해 매출 412억원, K-뷰티로 성장 견인 '싼 맛'에 사던 韓 제품, K-팝 등 영향 아래 '인식 개선' 팬데믹 이후 위축된 中 시장, 뷰티 업계 북미 시장 진출 본격화
올리브인터내셔널이 1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K-뷰티 성공 시대에 점차 가속이 붙기 시작했단 평가가 나온다. 최근 들어선 자국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높던 일본에서도 국내 뷰티 제품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K-콘텐츠 및 K-팝의 영향력이 K-뷰티에까지 미친 결과다. 이제 국내 뷰티 산업이 넘어야 할 산은 ‘중국’이다. 현재 국내 뷰티 산업 매출에서 중국 시장의 의존도는 매우 높은 상태다. 물론 가능성이 높은 중국 시장을 완전히 버려선 안 되겠지만, 지금과 같은 과도한 ‘의존’ 상태에선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리브인터내셔널, 100억 규모 시리즈 B 투자 유치
디지털 마케팅 기반 소비재 브랜드 기업 올리브인터내셔널이 IMM인베스트먼트와 프라미어사제로부터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크래프톤, 무신사, 젠틀몬스터 등 다수의 유니콘 기업에 투자한 VC(벤처캐피탈)로, 프라미어사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한국계 VC다. 이번에 투자를 받은 올리브인터내셔널은 밀크터치, 성분에디터, 비프로젝트, 시모먼트, 피치포포 등 뷰티 브랜드를 중심으로 깔끔상회, 나무팩토리, 뭉게뭉게 등 생활·패션 브랜드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 K-뷰티 산업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견인하면서 투자 유치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올리브인터내셔널 관계자는 “대표 브랜드인 밀크터치와 성분에디터 외에도 비프로젝트, 마미케어 등 성공적인 브랜드 확보로 뷰티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한층 견고해진 것이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리브영과 홈쇼핑에서의 ‘완판’ 행진, 각종 라이브커머스 최고 기록 달성, 해외 자회사들의 성장 등 다방면에서 매출이 늘고 있어 앞으로의 성장세가 보다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올리브인터내셔널의 매출은 지난 2020년 126억원에서 2021년 272억원, 지난해 412억원으로 꾸준한 성장을 이뤘다. 특히 올해 상반기는 전년 동기 대비 50%가량 성장한 270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매출의 경우 230% 성장한 약 70억원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K-뷰티, 日 소비자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올리브인터내셔널의 투자 유치는 K-뷰티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처럼 K-뷰티 산업의 성공 신호는 곳곳에서 들려온다. 최근엔 다소 까다로운 시장이라 평가되던 일본에서도 K-뷰티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시장은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화장품 시장으로 꼽히지만, 자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유달리 높은 탓에 우리나라 뷰티 제품이 끼어들 틈이 사실상 없었다. 게임 체인저는 한국산 드라마와 아이돌이었다. K-콘텐츠와 K-팝이 일본 내에서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국내 제품이 입소문을 타며 일본인들의 국내 제품 구매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일본인들은 자국산 제품의 높은 품질을 중시하며 한국산 제품은 가끔 저렴한 맛에 구매하는 수준이었지만, 이 같은 인식도 최근 들어선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로드샵 중심으로 한국 화장품이 인기를 끌 땐 천원 미만의 가성비 마스크팩이 중심 제품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CJ올리브영에서 일본인들에게 인기리에 판매되는 제품들을 보면, 3~4천원대의 마스크팩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역대급 엔저 현상에 일본인들이 해외여행에 나서기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나마 가까운 한국을 찾는 것이 부담이 덜 하다는 점도 한국 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한국을 찾은 관광객 수는 158만 명으로, 국내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많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명동 상권 내 CJ올리브영의 일본인 매출이 전년 대비 23배 급증하기도 했다.
K-뷰티 열풍은 일본 현지에서도 체감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6월 28일부터 2주간 도쿄에서 이니스프리, 에뛰드, 라네즈, 에스쁘아, 에스트라 등 11개 브랜드가 참여한 팝업스토어를 열었는데, 이틀 만에 방문 예약이 매진되고 약 10만 개의 체험 샘플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 9월 일본에 본격 진출한 헤라도 오는 19일까지 도쿄 긴자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는데, 이미 메이크업 레슨 서비스의 예약률이 100%다. LG생활건강도 프리미엄 색조 브랜드인 글린트 바이 비디보(글린트)와 프레시안의 일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글린트는 일본 유명 유튜버의 소개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데, 지난 6월 일본 온라인몰 ‘큐텐(Qoo10)’에 하이라이터를 첫 출시한 이후 국내 올리브영 메이크업 분야 판매 1위에 이어 큐텐 하이라이터 부문 판매 1위에 오르는 등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달 사이에 일본에서 한국 뷰티 제품에 대한 인식이 순식간에 바뀐 느낌”이라며 “대중성을 갖춘 다양한 제품들이 점차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中 의존도 높은 K-뷰티, “시장 다각화 이뤄야”
앞으로 국내 뷰티 산업이 넘어야 할 산은 ‘중국 의존도’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중국 자본에 의존하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고 수익성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가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아모레퍼시픽에 대해 중국 소매 경기와 국내 면세 시장 부진 등으로 올해 2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밑돌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박신애 KB증권 연구원은 “중국 소매 경기가 시장 기대보다 부진해 중국 소비 관련 종목에 대한 투자 심리가 크게 악화했다”며 “2분기 면세 매출은 37% 감소해 애초 예상치보다 크게 부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반기 이후 국내 면세 시장 규모에 대한 기대치도 낮출 필요가 있다”며 “주가가 반등하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력 입증과 면세 매출이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중국의 더딘 경기 회복으로 작년 하반기부터 쌓였던 화장품 재고 소진이 빠르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법인과 설화수 매출 회복이 더딘 점 등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 시장은 다소 위축된 상태다. 이에 업계는 당분간 중국 시장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엔데믹 이후 중국인들의 화장품 소비가 크게 늘지 않고, 한·중 갈등으로 반감이 커지면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점이 반작용을 일으킨 것 같다”며 “현지 중저가 브랜드의 강세도 국내 뷰티 산업의 입지를 축소하고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해외 매출액 감소가 가시화되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그룹의 2분기 매출액은 1조30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0.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영업이익은 117억원으로, 지난해 -109억원에서 흑자전환했다. 사실상 궁지에 몰리기 시작하면서, 업계 내에서도 시장 다각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각사는 하반기 들어 비중국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중국에 치우친 의존도를 최대한 희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업계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시장은 미국이다. 그룹 매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력 계열사 아모레퍼시픽의 2분기 해외 매출 현황을 보면 북미 시장은 73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60억원)보다 배 이상 늘었다. 1분기(629억원)보다도 17.7% 증가한 수치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시장 매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9년 4.5%에서 지난해 12.1%로 급상승했다. 지난해 10월 인수한 미국의 고급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 ‘타타 하퍼’가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고, 라네즈와 이니스프리도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중동·아프리카 시장에서도 매출이 59억원에서 132억원으로 123% 증가했다. 일본 시장에서는 30%대 신장세를 보이며 아시아 시장의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중국 시장의 하향세 속에 비중국 시장의 매출 효과가 나오면서 화장품 업계의 매출 구조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업계는 중국과 비중국 시장의 매출 비중 역전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같은 비중국 채널 비중 확대가 궁극적으로는 시장 다변화를 꾀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그럼에도 중국 시장 자체를 포기할 순 없다는 의견이 거듭 쏟아진다. 북미 시장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북미 시장 비중은 여전히 각각 8.9%, 4.9%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당장 성장세가 폭발적인 건 맞지만, 중국 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올인’할 만큼의 성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압도적인 인구수만 봐도 중국 시장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각에서 중국을 놓칠 순 없다는 반응도 있다. 이에 대해 한 뷰티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업체들이 북미, 일본 등 해외 시장 다각화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중국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며 “국가 간의 갈등으로 인한 시장 침체는 단기적인 상황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봤을 때 중국에서의 사업이 회복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중국 현지 법인을 철수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