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룡 플랫폼 사전규제’ 강수, 독점은 없애되 혁신 짓밟진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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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플랫폼법 제정안 입법 추진 방침 발표
유럽 DMA식 사전 규제 및 반칙 행위 금지가 핵심
업계선 '이중 규제', '국내 플랫폼 역차별' 등 우려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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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거대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 대상으로 사전 지정하는 내용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을 도입한다. 법안의 핵심은 시장을 좌우하는 독점력을 가진 핵심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고,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을 벌이지 않도록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국내 플랫폼 업계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달리, 공정위가 자국 산업까지 짓밟는 강력한 규제를 강행한다는 비판이다.

‘플랫폼법’,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 사전지정해 규제

19일 공정위는 독과점 플랫폼의 시장질서 교란 행위를 차단하고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윤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공정위에 독과점화된 대형 플랫폼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개선책 마련을 지시한 데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형 플랫폼이 성장 초기인 경쟁사업자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반칙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봤다. 기존의 공정거래법으로는 이를 효율적으로 규제하기 어려워 플랫폼법 입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독과점 플랫폼 반칙행위’로는 국내 거대 온라인 플랫폼 업체인 카카오T가 배차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사 가맹택시를 우대한 사례를 꼽았다. 이로 인해 당시 신생 경쟁사인 마카롱택시가 카카오T의 시장지배적 위치 악용 행위로 인해 회복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시장에서 퇴출됐다는 것이다. 이에 공정위는 2020년 관련 조사를 시작했지만 지난 2월에서야 257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이번 플랫폼법 입법으로 사전규제가 가능해지면 이같은 반칙행위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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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법은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 지정에 주안점을 뒀다. 공정위는 플랫폼 시장에 영향력이 큰 일부 사업자를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반칙행위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구글, 메타 등 해외 플랫폼 사업자가 국내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에 있다고 판단되면 이들 또한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수 있다.

공정위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반칙행위를 했음에도 그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할 때는 제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반칙행위가 이뤄졌음에도 경쟁 제한성이 없거나 소비자 후생 증대 효과가 있다는 게 증명되면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공정위에 주어졌던 입증 책임을 사업자에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되면 네 가지 독과점 남용 행위가 금지된다.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 대우 요구 등이 금지 행위다. 이를 어길 경우 시정명령, 과징금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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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디지털시장법과 유사, 사실상 빅테크 옥죄기

공정위의 지배적 사업자 지정 기준은 정량·정성적 요소를 고려해 정한다. 검색엔진, 온라인 광고 등 각각의 적용 영역에서의 국내 매출액과 이용자 수를 정량적 기준으로 삼으며, 소비자에게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정성적 요소도 고려한다.

이는 EU가 올해 5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디지털시장법(DMA·Digital Markets Act)과 유사한 방식이다. DMA는 소비자와 판매자 간 관문(게이트키퍼) 역할을 하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자 일정 규모의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규제하는 법안이다. 특히 공정위가 지칭한 ‘지배적 사업자’의 경우 DMA가 적용되는 게이트키퍼 기업과 일치한다.

DMA에서 게이트키퍼로 분류되는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최근 3개 회계연도에 유럽 경제지역(EEA)에서 연간 매출액이 75억 유로(약 10조7,000억원) 이상이거나 지난 1년간 평균 시가총액이 750억 유로(약 107조195억원) 이상으로, 적어도 3개 이상 회원국에서 핵심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지난 회계연도에 역내 월 4,500만 명의 활성이용자 및 1만 개 이상의 사업이용자 수를 보유한 경우다. 마지막으로는 사업자가 지난 3년간 앞선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할 경우 ‘시장에서 당해 지위가 확고하거나 지속적인지’의 여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봐 게이트키퍼로 지정될 수 있다.

게이트키퍼 규제 주요 대상으로는 아마존, 메타, 알파벳(구글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 등이 해당되며,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삼성전자는 최종명단에서 제외됐다. DMA에 따르면 게이트키퍼는 ▲자사 제품에 높은 순위 부여 금지 ▲신규 스마트폰 구입 시 기본 검색 엔진과 웹 브라우저 선택권 제공 가능 ▲ 플랫폼 사전 설치 응용 프로그램 삭제 허용 ▲서비스 가입·등록 조건으로 게이트키퍼로 지정된 플랫폼 서비스나 지정될 조건에 해당하는 서비스에 대한 가입·등록 요구 불가능 ▲자사 신원확인 서비스 강요 또는 전환 제한 행위 금지 등을 준수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과징금 및 정기적 이행강제금을 통해 의무 미준수에 대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과징금의 경우 직전 회계연도 기준 총매출액의 1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과할 수 있다. 정기적 이행강제금은 직전 회계연도 기준 평균 일일 매출액의 5%를 초과하지 않는 금액을 매일 부과하고 정기적으로 납부토록 하는 조치다.

민생법안 아닌, 민생 죽이는 법안

결국 DMA가 빅테크 기업들을 정면에서 옥죄기 위한 ‘반독점법’이라는 점에서 이와 유사한 플랫폼법을 두고 업계에선 ‘과잉 규제’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미 해외 플랫폼 사업자들과 경쟁하는 상태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를 가지기 어려운데, 플랫폼법으로 오히려 국내 테크 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민생법안이라고 플랫폼 규제법이 나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생을 죽이는 법안이 될 수 있다”며 “이 정도로 강한 규제가 적용되면 플랫폼들이 규제 기준을 넘는 것을 우려해 스스로 성장을 멈추거나, 해외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역설했다.

공정위가 플랫폼 규제와 관련한 정책 방향을 번복한 탓에 예측 가능성이 작아지고 혼란이 가중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공정위는 지난 1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해당 심사지침은 공정거래법 내에서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를 심사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이는 현행 공정거래법 내에서 플랫폼의 독과점을 규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결국 기존 입장을 완전히 뒤집고 입법에 나선 셈이다.

문제는 플랫폼법을 국내외 기업에 동일하게 규제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글로벌 빅테크들이 빠져나갈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글로벌 빅테크들이 우리나라 매출을 아일랜드나 싱가포르 법인 등을 통해 산정하고 있다. 이러한 우회책을 통해 글로벌 빅테크들이 지배적 사업자의 기준을 벗어나는 꼼수를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또한 글로벌 빅테크들에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들의 모국인 미국 등이 우리나라 플랫폼에도 동일한 강경 규제를 적용하는 등 보호무역주의의 행보를 보이거나 나아가 통상 마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간 독과점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플랫폼 사업자와 중소기업, 소상공인,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한 민간자율기구까지 창설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 경쟁을 해치는 일이 반복돼 온 만큼, 정부 차원의 규제는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플랫폼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고, 경쟁 사업자와 입점 업체는 약자로 보는 편협한 시각으론 혁신의 날개를 펴기 어렵다. 특히 최근 테무,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쇼핑 플랫폼의 기세가 매서운 상황에서 이같은 규제는 자칫 시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 EU DMA의 규제 대상에 EU 기업은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DMA의 취지가 글로벌 빅테크의 유럽 시장 침탈을 막는 것인데 반해, 플랫폼법은 국내 기업도 같이 말려죽이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