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 조작으로 ‘과징금 철퇴’ 맞은 메이플스토리, 확률형 아이템 무작정 삭제?
'환생의 불꽃' 사태에 이어 '큐브'까지, 메이플스토리의 확률 조작 역대급 과징금 부과 이후 자구책 마련, 문제 아이템 삭제한다 자율규제는 실패했나, 정부 '게임산업법 개정안' 결국 3월 시행
넥슨이 자사 MMORPG(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확률 조작 논란 대응에 나섰다. 메이플스토리 운영진은 전날 저녁 온라인 방송을 진행, “게임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것만이 이용자들께 저희를 다시 한번 믿어달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시작”이라며 확률형 아이템인 큐브의 유료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다가오는 3월 게임산업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여론 전환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확률형 아이템 ‘큐브’ 확률 조작
메이플스토리 확률 조작 논란의 중심축에 선 ‘큐브’는 캐릭터가 착용하는 장비에 사용하는 유료 아이템이다. 핵심 기능은 확률적으로 장비에 부여돼 있는 ‘잠재 옵션’을 변경하거나 상위 등급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수많은 유저가 자신의 장비를 보다 강하게 만들기 큐브를 구매·사용해 왔다. 큐브가 메이플스토리 전체 매출액의 30%를 차지하는 핵심 수익 모델로 올라선 이유다.
큐브 상품 도입 당시 넥슨은 옵션 출현 확률을 균등하게 설정했으나, 2010년 9월 15일부터 큐브 사용 시 유저들의 선호 옵션 등장 확률을 낮췄다. 2011년 8월 4일에는 2021년 3월 4일까지 큐브 사용 시 선호도가 높은 특정 능력치 조합이 아예 출현하지 않도록 확률 구조를 변경하기도 했다. 문제는 상기 사실이 유저들에게 일절 고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2011년에는 “큐브의 기능에 변경 사항이 없으며 기존과 동일하다”는 내용의 거짓 공지를 내기도 했다.
2013년 7월 14일 출시된 프리미엄 상품 ‘블랙 큐브’와 관련해서도 확률 조작 문제가 불거졌다. 넥슨은 최초 블랙큐브의 잠재 옵션 등급 상승 확률을 1.8%로 설정했으나, 이후 5개월에 걸쳐(2013년 7~12월)까지 그 확률을 1.4%까지 점진적으로 낮췄다. 2016년 1월에는 그 확률을 다시 1%까지 낮췄으나, 확률 감소 사실은 이용자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뒤늦게 ‘큐브’ 삭제, 민심 되돌릴 수 있을까
메이플스토리는 이미 2021년 또 다른 확률형 아이템 ‘환생의 불꽃’의 확률 조작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후 수많은 시정 조치와 서비스 업데이트가 이어졌고, 운영진과 유저 사이 신뢰는 수년에 걸쳐 겨우 회복됐다. 하지만 지난 3일 공정위가 넥슨코리아의 전자상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16억4,200만원을 부과했고, ‘블랙 큐브’를 비롯한 유료 재화 관련 확률 조작 혐의가 또다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끊이지 않는 논란에 메이플스토리 유저들의 불만은 폭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메이플스토리 운영진은 부랴부랴 뒷수습에 나섰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온라인 방송을 통해 “메이플스토리는 더는 확률형 강화 상품인 ‘큐브’를 판매하지 않겠다”며 “잠재 능력 재설정은 메소(게임 내 화폐)를 통해 이뤄지며 모든 용사의 플레이를 더 가치 있게 만들고자 한다”고 발언했다. 유료로 사용할 수 있었던 확률형 아이템을 게임 내 재화를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 사유로 언급한 인기 옵션의 중복 등장 제한 역시 차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게임사 측이 파격적인 개선안을 내놨지만, 유저들의 우려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메이플스토리가 BM(수익 모델)의 형태를 바꿨을 뿐,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과금 유도’를 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된다. 메이플스토리는 기존 큐브의 기능을 메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한편, 게임 내 재화의 유저당 일일 수급량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일일 수급량 이상의 메소를 얻기 위해서는 과금을 통해 메소를 구입할 수 있는 게임 내 ‘메소마켓’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결국 ‘큐브’ 기능을 원하는 만큼 이용하기 위해서는 게임 내 수급 가능한 재화를 넘어 현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부 유저는 시스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메소마켓을 비롯한 게임 내 경제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결국 정부까지 나섰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 ‘강제 공개’
넥슨 안팎으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번져가는 가운데, 업계는 이번 넥슨의 과징금 사태가 국내 게임 업계 ‘자율규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대다수 게임사는 지금까지 강제성 없는 자율규제를 통해 확률형 아이템 관련 정보를 공개해 왔다. 그 결과 넥슨을 비롯한 많은 게임사에서 줄줄이 확률 조작 사태가 벌어졌다. 일부 게임에서는 사행성 도박 수준의 질 나쁜 확률형 아이템이 등장하기도 했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인한 유저 피해가 속출하자, 결국 정부 차원의 규제가 시작됐다. 지난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게임산업법 개정안 시행령이 최종 의결됐다. 법안 시행일은 오는 3월 22일이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게임사는 실제 현금이 투입되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확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시정 명령에도 이를 발표하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법률 개정을 넘어 한국 게임 업계의 의식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게임산업법 개정안에는 △확률 정보 정확성 검증 문제 △실질적 BM 운영 방식 검증 문제 △해외 게임사와의 역차별 △편법을 통한 과금 유도 문제 등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게임 업계가 적극적으로 상황 개선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