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애플에 ‘반독점법 위반’ 18억 유로 과징금 철퇴, DMA 시행 전초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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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저렴한 구독 서비스 이용 차단한 불공정 관행" 지적
한국도 '결제 방식 강제' 등에 205억원 과징금 추진 중
DMA 시행 앞둔 EU, 막대한 과징금으로 빅테크 옥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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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애플에 막대한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초 예상했던 금액보다 더 큰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빅테크를 겨냥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이는 모습이다. 이는 EU 당국이 애플에 반독점법 위반으로 벌금을 부과하는 첫 사례로, 업계에서는 이달 유럽의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DMA) 시행과 더불어 EU와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간 전쟁이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U, 반독점법 근거 애플에 첫 과징금 부과

EU 집행위원회는 4일(현지시간) 애플이 자사 앱스토어를 통해 아이폰·아이패드 운영체제인 iOS 사용자에게 음악 스트리밍 앱을 배포하는 과정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18억4,000만 유로(약 2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애플 전 세계 매출의 0.5% 규모이자, 당초 예상돼 온 5억 유로를 훨씬 웃돈다. 집행위가 역대 부과한 반독점법 위반 관련 과징금 규모로도 구글(43억4,000만 유로, 24억 유로)에 이어 세 번째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Margrethe Vestager) EU 수석 부집행위원장은 애플이 애플 생태계 외부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안적이고 저렴한 음악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10년간 EU 독점금지 규정을 어겼다고 밝혔다. 또한 다른 빅테크들이 유사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예상보다 많은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조사 과정에서 애플이 잘못된 정보를 제출했던 점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결정은 글로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스포티파이가 2019년 애플이 자사의 플랫폼 애플뮤직과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한 데 따른 조처다. 집행위가 해당 사안을 약 4년간 조사한 결과, 애플은 스포티파이를 비롯한 앱 개발사들이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에 결제 금액과 관련한 정보를 제한한 것으로 파악됐다.

베스타게르 부집행위원장은 “애플이 지난 10년간 (외부의) 음악 스트리밍 앱 개발자들을 상대로 계약상 ‘다른 결제방식 유도 금지'(anti-steering) 규정을 적용, 개발자가 소비자에게 더 저렴한 구독 옵션을 알리는 것을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결제방식 유도 금지’ 규정은 애플, 구글과 같은 앱 마켓 운영업체가 외부 앱 개발자가 앱 내에서 다른 결제 방식을 선택하도록 연결하거나 광고하는 것을 금지하는 관행으로, 이는 자체 시스템을 통해 직접 유료 콘텐츠를 구입하는 인앱결제를 최대한 유도하기 위해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로부터 최대 30%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이 때문에 같은 구독 서비스라도 인앱결제 시 발생하는 수수료가 소비자에게 전가돼 개발자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결제할 때보다 더 비싸진다.

한국, 프랑스, 러시아 등에서도 반독점 제재

애플의 앱스토어에 대한 반독점 제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애플은 2020년 프랑스에서도 반독점법 위반으로 11억 유로(약 1조6,000억원)의 과징금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애플은 이에 항소해 벌금 규모를 3억7,200만 유로(약 5,400억원)까지 낮췄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8월 애플의 특정 결제방식 강제 등 부당행위에 대한 사실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애플이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해 특정한 결제방식을 강제한 행위와 앱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한 행위 등이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같은 해 10월부터 애플에 205억원의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방통위는 각 사업자 쪽 의견 수렴과 전체회의 심의·의결 등을 거쳐 구체적인 시정명령 문구와 과징금 액수를 확정할 예정이다.

올해 1월에는 앱스토어를 통한 러시아 시장의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러시아 정부에 과징금 11억8,000만 루블(약 179억원)을 납부하기도 했다. 러시아 연방 반독점서비스국(FAS)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해 11월 개발자들이 앱스토어 외에 다른 결제수단으로도 요금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없도록 해 경쟁법을 위반한 혐의가 인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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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보호 명분 아래 ‘EU 기업 보호‘ 비판도

한편 EU의 이번 과징금 부과 결정은 오는 7일 DMA 시행을 앞두고 공개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EU는 세계 최초로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행위를 규제하는 DMA를 시행하며 본격적인 빅테크 옥죄기에 나선 상태다. 해당 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자사 서비스를 경쟁사에 개방하고 이용자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게이트 키퍼로 선정된 6개 기업은 애플, 알파벳(구글 모회사),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아마존, 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 등이다.

EU는 위반 시 이들 게이트 키퍼 기업들에 연간 매출액의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반복적으로 위반할 경우에는 최대 20%까지도 가능하다. 또한 이들 기업은 자사의 서비스를 경쟁업체에도 개방해야 하며, 획득한 이용자 개인 정보의 무분별한 활용도 엄격히 제한된다. 이에 업계에서는 DMA 시행에 맞춰 애플에 당초 예상보다 큰 규모의 과징금 폭탄을 때린 것은 일종의 경고와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DMA에 따라 애플은 iOS 시스템에서 제3의 앱 스토어 운영은 물론 앱 개발자들이 외부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또한 개발자들이 이용자들에게 앱스토어가 아닌 자사 서비스 가입 방법에 대해 안내하는 것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이에 애플은 이미 몸을 한껏 낮추는 모습이다. 유럽 아이폰 사용자들은 애플 앱스토어가 아닌 다른 앱스토어에서도 앱을 다운받을 수 있고, 결제 수단도 다른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또 이용자가 결제 시 개발사로부터 받았던 수수료도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기존 5억 유로로 예상되던 과징금 규모가 추정치의 세 배 이상으로 늘어난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여기에는 그간 앱 통행세 부과로 애플이 거둬들인 수익 이상을 과징금으로 부과해 아예 차후 시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EU 집행위는 “애플뿐만 아니라 비슷한 규모와 유사한 자원을 가진 다른 회사에 대한 억제력을 제공하기 위해 표준 벌금 절차를 넘어섰다”고 강조했는데, 애플 수준의 기업은 사실상 미국 빅테크들 뿐이다. 이는 곧 이들 기업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독점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애플과 비슷한 문제점으로 제재 대상에 올라 있는 아마존이나 알파벳 등도 EU의 규제 칼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이들 기업은 통행세 외에도 글로벌 과세 및 개인정보보호 문제와도 맞닥뜨린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빅테크에 대한 EU의 엄격한 규제가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유럽 기업 보호라는 비판도 나온다. DMA에서 게이트 키퍼로 지정된 기업들은 모두 EU가 아닌 미국, 중국 기업인 데다, EU 내 대부분의 플랫폼 시장에서는 자국 플랫폼 기업들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과징금 발표 당시 애플도 “조사 과정에서 유럽 음악 스트리밍 시장의 56%를 차지하는 스포티파이가 EU 집행위와 65차례 만남을 가졌다”고 짚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이라는 명목하에 디지털 음악시장의 선두주자인 유럽 기업의 지배적 지위를 확고히 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