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없는 정부 지원, 기업 판단 기준도 2016년 그대로? 누더기 법령에 중소기업계 “지원 체계 재정비해야”
제도 개선 절실한데 정부는 '관망'만, 고통 가중되는 중소기업계 성장성 고려 없는 '제도 뿌리기', 중소기업 침몰 가속한 원인됐다 부메랑처럼 돌아온 정부 나태의 원죄, '선택과 집중'해야 할 때"
국내 중소기업들이 현실에 맞지 않는 법령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체계 개편이 필요한 상황이나 법령과 제도가 중소기업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주먹구구식 누더기 제도로 국내 기업이 지지부진하는 동안 타 국가 기업들이 경쟁에 속속 참전하면서 우리 중소기업만 도태되는 모양새다.
사실상 방치된 정책들, “정부가 기업 성장 방해하는 꼴”
앞서 정부는 지난 2016년 소기업까지 전체 기업을 판단하는 기준을 근로자·자본금에서 매출액으로 전면 변경했다.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려고 근로자를 늘리지 않는 ‘피터팬 증후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 분류 기준을 매출액으로 개편한 것이다. 매출액이 경기 변동에 민감한 지표임을 고려해 기준 적정성과 타당성을 매 5년 단위로 검토해 조정한다는 조항도 포함했다. 문제는 5년 단위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단 점이다. 평균 매출액 기준 역시 2016년 당시와 달라진 바가 없다.
근 8년 사이 원자잿값은 급상승 추세를 보였고, 이에 연동해 매출도 올랐지만 기업 이익은 오히려 줄어든 경우가 많다. 특히 직격탄을 맞은 게 원자재가 비중이 높은 전선·건설산업이다. 전선업은 구조적으로 동, 구리 등 원자재가 매출 90%를 차지한다. 국가 전력 인프라와 연동돼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할 수 있지만 마진은 크지 않다. 동,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한 것도 치명타로 다가왔다. 한국비철금속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전기동 가격은 8,437달러로 2016년(4,918달러) 대비 71.5%나 올랐다.
건설업체도 건설 주요 자재인 시멘트와 레미콘 가격이 줄지어 오르면서 상황이 악화했다. 수익 없이 중견기업이란 타이틀만 달게 된 탓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매출액이 갑작스럽게 늘면서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이 늘었지만 막상 중견기업이 돼도 이익은 없다”라며 “애꿎은 중소기업 혜택만 소멸하는 꼴”이라고 전했다. 사실상 정부가 국내 중소기업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단 목소리가 업계를 중심으로 쏟아지는 이유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정책, 막상 실효성은 “글쎄”
상술한 문제와 더불어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를 방치하는 사례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당장 기업 분류 기준에 대해서도 중소기업계가 “3년 평균 매출액을 분류 기준으로 정한 현재 법령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내놓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에 대해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업종에 따라 예외 규정을 두거나 과거처럼 근로자를 포함하고, 매출액 중 하나라도 기준을 충족하면 중소기업으로 남을 수 있도록 법령을 개편해야 한다”며 “글로벌 이슈 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널뛰기하는데 일률적으로 평균 매출액만 따지는 건 애먼 중소기업만 죽이겠단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지원책 자체는 우후죽순 쏟아지는데 막상 제도들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 제도상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 대부분은 상황이 더 좋지 않은 기업일수록 선택될 가능성이 높게 설계돼 있다’며 “기업의 미래 성장가능성이 선별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이 선별될수록 오히려 지원기업의 성장성이 낮아질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기업당 지원 금액 규모도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전체 지원 규모가 커 보여도 프로그램의 절대 수가 너무 많다 보니 개별 프로그램당 지원액이 지극히 제한되고 있단 것이다. 여기에 지원 실적을 지원 기업 수로 평가하다 보니 기업당 지원액수는 더 적어질 수밖에 없고, 지원 금액이 원체 적다 보니 정책적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 특유의 자금 뿌리기식 지원의 원죄가 중소기업 경쟁력 저하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지 지원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실효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정책을 남발하다 보니 알맹이 없는 껍데기만 남게 됐단 지적이다. 여기엔 정치권의 책임도 있다.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득표몰이 전략으로 활용하다 보니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정책만 누더기로 만들어졌다. 실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중소기업 지원에 따른 부실이 지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지속적인 규모 확대를 요구하는 양상이 포착될 뿐이다. 사실상 정부와 정치권이 합세해 국내 중소기업의 줄기를 베어가는 모양새다.
침몰하는 중소기업계, 속절없이 흐르는 ‘골든타임’
정책의 서포트를 받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점차 가라앉고 있다. 실제 국내 중소기업의 생산성 연간 증가율은 1990년을 기점으로 지속 하락하며 2014년 이후엔 1% 선마저 깨졌다. 이에 따라 대기업과의 생산성 격차도 확대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32%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이 생산성 하락을 넘어서 한계기업 또는 좀비기업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단 점이다. 지난해 6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영업이익이 이자비용보다 적거나 비슷하다’고 응답한 기업은 전체 중 51.7%에 달했다. 2023년 상반기 법인 파산신청도 72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2% 상승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에도 제조·서비스업 중소기업 업황이 모두 부진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최세경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정책컨설팅센터장은 “경제 자체는 회복세를 보일 조짐이 있으나, 소비여력 감소와 인력 부족, 고금리 지속 등은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본질적인 중소기업 구조 개선 및 지원체계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간을 더 지체하다간 중소기업 생태계 전반이 회생 불가능 수준의 위기에 몰릴 수 있단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업계가 요구하는 내용의 골자는 ‘선택과 집중’이다. 성장성이 보장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자금 흐름을 개편하고 보다 원활한 인프라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제도처럼 성장성이 낮은 기업들까지 한 번에 지원했다간 자금 낭비만 이어질 뿐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오동윤 중소벤처기업 연구원장은 “앞으로는 글로벌화에 성공한 기업과 제조업 분야의 성장형 중소기업들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라며 “730만 개에 이르는 중소기업 가운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보유한 기업들을 선택해 지원을 집중해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기업 성장성 제고를 넘어 경제 활성화까지 한 번에 잡기 위해 정부부터 ‘눈 가리고 아웅’을 멈춰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