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절감·고급 인력 유치로 저출산 헤쳐가는 싱가포르, 한국도 ‘해외 인력 유입’으로 출구 마련해야
저출산 시대에 인구 늘어난 싱가포르, 핵심 전략은 '해외 인력' 가사노동자 임금 절감, 양육비 감소에 기업 환경도 제고 인재 유치 각축전 벌이는 글로벌 시장, 한국이 생존하려면
싱가포르가 저출산 시대를 헤쳐나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각국의 인재를 유치해 낮은 출산율을 유지하면서도 인구를 늘리는 방식이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나, 인구는 오히려 30년 동안 85% 늘었다. 이에 한국에서도 인재 유치에 대한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일각에선 ‘글로벌 인재청’을 신설해 정부 차원의 제도 재정비를 이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출산율 주는데 인구는 는다? 싱가포르는 ‘기적’
출산율이 감소하면서도 인구 증가를 이루는 국가가 있다. 바로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2023년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저인 0.97명(잠정)으로 1명대가 깨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정작 인구는 30년 전 대비 85%나 늘었다. 정부의 출산장려정책과 개방적인 이민정책이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다. 1990년 305만 명이던 싱가포르 인구는 2020년 569만 명까지 증가했다. 저출산으로 줄어든 인구가 외국인으로 채워진 것이다. 실제 지난해 싱가포르 총인구 수는 592만 명인데 이 중 영주권자가 54만 명, 외국인 체류자가 177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8.9%를 차지했다.
싱가포르가 사람들을 끌어들인 힘은 ‘환경’이다. 싱가포르는 우선 외국인의 사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언어, 치안 등 제반 환경을 제고하는 등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지난 2008년엔 상속세를 폐지하면서 경쟁적인 세제를 마련하기도 했다. 가사도우미에 대한 급여 규제를 따로 두지 않음으로써 양육비 절감을 도모한 점도 싱가포르의 역량을 키웠다. 현재 싱가포르엔 전체 인구의 5분의 1가량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있을 정도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일반화돼 있지만, 이들에 대한 최저임금 제도는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싱가포르는 이들의 월 급여를 각 국가와 협상해 정하는데, 보통 40~60만원 수준이다.
양육비 낮춘 싱가포르, 인재 유치 경쟁력↑
싱가포르 노동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싱가포르인의 월평균 급여는 약 496만원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소득의 10분의 1 정도만 투자하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1인당 GNP(국민총생산)는 지난 2021년 기준 6만4,010달러(약 8,600만원)로 한국 3만5,110달러(약 4,700만원)의 약 1.8배지만, 가사도우미의 실질 급여는 훨씬 낮은 셈이다. 이는 싱가포르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데 드는 품을 상당 부분 줄이는 데 기여했다. 실제 1990년 45%로 한국(47%)보다 낮았던 싱가포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올라 2021년엔 64%까지 높아졌다.
양육비 부담이 줄어들다 보니 각국이 원하는 고급 인재도 싱가포르에 몰려드는 모양새다. 프랑스 소재의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가 발표한 ‘인재경쟁력지수(CTCI)’에 따르면 CTCI 톱1은 단연 싱가포르였다. 이에 대해 인시아드는 “세계경제 허브로서 높은 개방성, 영어 공용화, 낮은 규제 수위 등에 힘입어 해외 기업과 인재 유치에서 앞서갈 수 있었다”고 싱가포르를 설명했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최저임금이 마땅히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싱가포르 내 외국인 가사노동자들 사이에선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관론까지 생겼다. 저임금도 문제지만, 상대적으로 ‘아래 위치’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가사노동자에 대한 학대 문제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실제 2017년 독립연구기관 ‘리서치 어크로스 보더스’ 연구에서 가사노동자 10명 중 6명이 학대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2019년 여론조사회사 ‘유고브’가 싱가포르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선 7명 중 1명(14%)이 가사노동자에 대한 학대를 직접 목격했으며 5명 중 4명(79%)은 주변에서 학대 사건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싱가포르 인권단체 ‘홈’이 “고용주는 가사노동자를 소유물이자 도구로 여기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한기 못 벗는 한국, 탈출구는 ‘외국 인력’?
다만 학대 문제를 차치하면 저임금에 대해선 싱가포르가 해결책을 쉽게 제시하지 못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각국의 고급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선 지금처럼 양육비 절감을 몸소 실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저숙련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겠단 것 아니냐는 힐난이 있긴 하나, 경쟁적 사회에 살아 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의견이 많다.
싱가포르가 인재 유치에 사활을 거는 건 인재가 있어야 벤처 시장이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중소기업, 벤처기업은 인재 부족에 쉬이 약점을 노출하고 만다. 해외에서 인재를 끌어오기가 대기업 대비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 업계에서도 국내 기술 창업이 좀처럼 증가하지 않는 주원인으로 인재 부족을 꼽는다. 지방이 가장 심각하지만, 경기도와 인천 등 수도권 벤처기업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2022년 대한상공회의소가 수도권 청년 301명으로 대상으로 실시한 ‘지방근무에 대한 청년 인식 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거주 청년의 약 72.9%가 지방 근무를 기피했고, ‘서울에서 어느 정도 먼 지역까지 가 근무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엔 서울과 가까운 판교·분당 지역의 선호도는 84.7%로 비교적 높은 수준이었지만 수원·용인(64.1%), 평택(31.9%) 등으로 낮아지며 경기도 안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인력 수급 문제는 가장 큰 현안 중 하나”라며 “회사가 성장할 땐 인재가 오지 않아 힘들었고, 성장한 후엔 대기업으로의 인력 유출 등이 걱정”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한국이 인재 유치 각축전에 있어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 전국경제인협회가 한국과 일본의 외국인 취업자 중 전문인력 비중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외국 전문인력 활용도는 일본의 4분의 1에 불과할 정도다. 노동시장의 대외개방성과 외국 전문인력 활용도가 그만큼 낮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아드리안 하이어만 베를린 인구개발연구소 연구위원은 “육아수당을 비롯한 출산장려 정책이 출산율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이밖에 인구통계학적 요인이 주는 출산율에 주는 영향이 훨씬 크다”며 “결론적으로 이민을 제외하고 인구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이에 일각에선 한국의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글로벌 인재청’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언급도 나온다. 해외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 활용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제도 재정비가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현재 이민정책은 여러 부처 소관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데다 각각 다르게 운영되고 있어 일관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이민정책에 대한 ‘올인원 패스’를 도입해 고소득 외국인과 동반 가족의 장기 거주를 지원하고 동반 가족의 구직활동을 허용하는 방안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인재청 설립도 이 같은 사고에 기반한 주장이다. 싱가포르보다 미국 출장이 더 가까워 아시아 헤드쿼터에 적합하다는 이점이 있다. 혹한기를 벗지 못하는 한국 시장에 ‘인력 촉진’의 메커니즘을 더해 지지부진한 성장의 늪을 타파해야 한단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