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안정·처우 개선 원한다” IT 업계 휩쓰는 노조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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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불모지였던 IT 업계, 노동자들이 들썩인다
채용 축소, 성공적인 선례 등이 신규 노조 결성 견인
낮아지는 해외 인력 채용 장벽, 노사 갈등 가능성 싹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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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IT(정보기술)업계 내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2018년 네이버 노조 출범을 시작으로 본격화한 ‘노조 열풍’이 업계 전반을 휩쓰는 양상이다. IT 부문 근로자들이 목소리를 낼 공식적인 ‘창구’가 마련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추후 노사 간 갈등 격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고용 불안·소통 부재가 노조 출범 부추겨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IT 업권에서는 이제 막 발을 뗀 ‘신생 노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노조의 불모지라는 평가를 받던 IT 업계에 지각변동이 발생한 것이다. IT 업계에 불어든 ‘노조 열풍’의 배경으로는 고용 불안이 지목된다. 고연봉자들이 많고 근속연수가 짧은 IT 업계는 장기간 ‘무노조’ 상태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IT 기업들이 속속 채용을 줄이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IT 업계 종사자는 “(기존 IT 업계에서는) 노조를 구성해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직원이 많이 없었다. 처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직을 택하면 그만이었다”며 “하지만 (최근) IT 기업들의 채용이 줄고, 이직이라는 옵션이 선택지에서 사라지며 이직 대신 ‘투쟁’을 선택하는 근로자들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인한 소통 문제가 노조 출범을 부추겼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IT 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노사 측의 소통 창구가 단절됐다는 것이다. 실제 네이버의 경우 2013년 1,592명 수준이었던 전체 직원 수는 노조가 설립된 2018년엔 3,585명까지 늘었다. 카카오의 직원 수 역시 같은 기간 1,539명에서 2,705명으로 불어났다.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IT 노조

IT 노조 열풍의 시발점은 네이버였다. 2018년 4월 설립된 네이버 노조는 설립 석 달 만인 같은 해 7월에 포괄임금제를 폐지,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2019년에는 카카오·넥슨 등 노조가 있는 IT 기업들도 속속 포괄임금제를 없앴다. IT 업계 종사자들의 고질적인 불만으로 꼽히던 포괄임금제가 노조를 통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이들 ‘선배 노조’의 선전은 IT 업계 내에서 수많은 신생 노조가 등장하는 배경이 됐다.

네이버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노조 열풍은 최근까지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NHN 노동자들은 설립 선언문을 발표하고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 화섬식품노조) NHN지회의 설립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당시 NHN지회는 “고용안정 보장, 임금 상승, 복지 강화, 노동조건 개선, 사업장 내 차별 철폐, 노사 및 노동자 사이의 화합 등 조합원, 나아가 전체 임직원의 이익을 위한 과제들을 꾸준히 해결해 나갈 것”이라 선언, 추후 활동에 대한 포부를 드러냈다.

지난 1월에는 화섬식품노조 야놀자인터파크지회가 노조 설립 선언문을 발표하며 공식 출범했다. 당시 노조는 “불평등한 평가 체계, 포괄임금제, 상의조차 없는 대기발령과 조직개편,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 축소 등을 회사에 대한 애정과 동료에 대한 신뢰로 견뎠으나 경영진과의 소통은 사라지고 통보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전하고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점점 더 빼앗기고 있다”며 “억울하고 부당해도 외칠 수 없던 우리의 소리를 노조와 함께 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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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섬식품노조 넷마블지회 창립총회/사진=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지난 7일에는 화섬식품노조 넷마블지회가 전격 출범을 선언했다. 지난 2018년 게임업계 최초로 노동조합을 설립한 넥슨 이후 7번째 게임사 노동조합이다. 넷마블 노조 측은 “사측이 인센티브 정책, 연봉 인상률, 수익 등의 사항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 본격적인 투쟁을 시사했다.

“저렴한 인력 쓰고 싶은데” 갈등의 조짐

한편 시장 일각에서는 추후 IT 업계의 노사 갈등이 한층 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내 IT 기업에 인도, 말레이시아 등 ‘저가 IT 인력’이 유입될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채용 대행업체 딜닷컴과 국내 리서치 플랫폼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한국의 5년차 미만 개발자 평균 연봉은 약 5,200만원 수준이다. 반면 인도의 5년 차 미만 개발자 평균 연봉은 3,200만원, 말레이시아는 2,600만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 IT 인력 채용은 기업에 있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일종의 기회인 셈이다.

현재 해외 인력 채용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곳은 인건비 절감이 절실한 벤처업계다. 지난 2월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기업협회는 인도 뉴델리에서 ‘2024 벤처·스타트업 인재 매칭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행사를 통해 200명 이상의 인도 개발자를 채용하고, 채용이 확정된 인도 개발자 중 국내 입국을 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E-7 비자 취득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한국 스타트업과 해외 개발자들을 연결해 주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벤처업계를 시작으로 해외 인력 고용의 장벽이 점차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해외 인력 선호 기조가 조만간 벤처업계를 넘어 IT 시장 전반까지 확산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 같은 관측이 현실화할 경우,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을 요구하는 노조와 비용 절감을 원하는 사측의 갈등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IT 업계 전반에 걸쳐 거대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