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PB 상품 유도’ 의혹 띄운 공정위, 업계선 “알고리즘 보정 대책 효용 있나”
PB 상품 우대 의혹 쿠팡, 최대 5,000억원 과징금 부과 전망
업계선 비판 의견, 이준석 당선인도 "시대착오적 정책 판단"
'알고리즘 정상화' 강조하는 공정위, 알고리즘 보정 의미 있을까
쿠팡의 PB(자체 브랜드) 상품 우대 의혹과 관련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최종 판단이 내달 초로 다가왔다. 최대 수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물을 수 있단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업계 일각에선 공정위의 문제 제기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더 저렴한 PB 상품을 전면에 내세운 데 실질적인 소비자 피해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시선에서다.
공정위 “쿠팡, 알고리즘 조작해 PB 구매 유도”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오는 29일과 내달 5일 전원회의를 열고 쿠팡의 PB 상품 관련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공정위는 쿠팡이 체험단 등을 활용함으로써 알고리즘을 조작해 검색 결과에서 자사의 PB 상품이나 직매입 상품을 상단에 배치해 구매를 유도했다고 보고 있다. 또 이 같은 ‘쿠팡 랭킹’이 소비자 기만을 통한 고객 유인행위에 해당한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쿠팡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심사 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하면서 ‘법인 고발’ 의견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징금은 쿠팡의 PB 매출이 아닌 전체 매출을 기준으로 하면 최대 5,000억원까지 부과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지난해 공정위가 국내 500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총액 2,248억원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가격 저렴한 PB 제품, ‘실체 없는’ 소비자 피해?
이번 제재 논의에 대해 공정위는 “소비자들이 저렴하고 품질이 우수한 상품을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비자를 속이는 불공정한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기 위함”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다만 이에 대해선 논란이 적지 않다. 쿠팡 PB 상품이 다른 일반 제조업체 브랜드(NB) 제품보다 더 싸고 배송도 빠른 만큼 설령 쿠팡이 PB 상품 구매를 의도적으로 유도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소비자 피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쿠팡 PB 상품은 NB 제품 대비 20~30%가량 저렴하다. 특히 쿠팡이 판매 중인 생수 브랜드 ‘탐사수’는 NB 제품보다 최대 50%나 저렴하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PB 제품이 쏠리는 건 당연한 현상인 셈이다. 쿠팡도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아 검색 결과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인위적인 알고리즘 조작은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준석 개혁신당 당선인은 지난 24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이번에는 (공정위가) PB 상품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또 일을 벌이려고 한다”며 “물가 인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물가 억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직구나 PB를 건드리는 것을 보면 정책 방향성을 누가 설정하는지 궁금해지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쿠팡 PB 상품을 규제하려는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관련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시대착오적인 정책적 판단을 하지 않길 기대한다”고 쓰기도 했다.
알고리즘 보정 주장하지만, 효용성엔 ‘물음표’
이에 공정위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 당선인의 주장에 거듭 반박했다. PB 상품의 개발·판매를 억제해 물가 부담을 가중하겠단 의도는 일절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의 해명에도 업계의 비판은 여전하다. 공정위가 소비자 수요가 몰린 상품이 PB 제품이란 이유만으로 알고리즘을 보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최종적으로 공정위가 승리했을 때 부수적으로 나타날 문제도 크다. 차별적 알고리즘을 보정해야 한다면, 보정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해야 할 것인가에 이견이 갈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여러 주 법원에서 사용하는 알고리즘 콤파스(COMPAS)를 예로 들며 애초 알고리즘을 수정하는 것으로 불공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앞서 지난 2016년 미국 독립언론 프로퍼블리카는 콤파스가 흑인을 차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콤파스는 피고의 범죄 참여, 생활 방식, 성격과 태도, 가족과 사회적 배제 등을 점수로 환산해 재범 가능성을 계산해 판사에게 구속 여부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인데, 프로퍼블리카에 따르면 콤파스는 통상 흑인의 재범 가능성을 백인보다 2배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기술적으로 변수에 인종이 포함돼 있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에 MIT(매사추세츠공대) 테크놀로지 리뷰는 콤파스의 흑인 차별 알고리즘을 수정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다. 변수를 조정함으로써 인종과 관계없이 동일한 수감 비율이 적용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콤파스는 동일 범행에 대해 인종별로 다른 처벌을 내리는 등 또 다른 차별 알고리즘을 실행했다. 이는 콤파스 알고리즘이 차별적으로 구성된 원인이 재판 단계 이전에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과 백인 피고가 범행 뒤 검거되는 비율에서부터 차이가 발생하다 보니 단순 변수 조정 등 수정 행위로 알고리즘이 정상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콤파스 사례에 대해 앤드루 셀브스트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는 “알고리즘의 효용성은 가치가 있지만, 공정성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수학적 표현으로 바꿀 때마다 그 미묘함, 유연성, 융통성을 잃게 된다”고 언급했다. 결국 공정위가 주장하는 쿠팡 알고리즘에 대한 보정에 실질적 효용이 있을지부터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를 중심으로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