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 사업 속도 조절 나선 SK이노, 계열사 정리·SK온 ‘선택과 집중’ 움직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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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구조 재편 나선 SK이노베이션,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도 중단
중국에 배터리 재활용 공장 설립한 SK에코플랜트, 정작 국내 공장 건설은 지연
자금 부족에 선택과 집중 전략 내세운 SK그룹, 핵심 미래 먹거리는 'SK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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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폐배터리 사업 투자를 줄이고 사업구조 재편에 나섰다. 핵심 광물 가격이 급락하면서 관련 사업의 경제성이 하락한 탓이다. 이에 업계에선 SK그룹이 당분간 SK온 살리기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계열사 정리로 자금 실탄을 마련하고 이를 SK온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보릿고개’를 넘길 기반을 마련하겠단 취지다.

SK이노, 폐배터리 합작법인 설립 잠정 중단

13일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는 배터리 리사이클링 업체 성일하이텍과의 폐배터리 합작법인 설립을 잠정 중단했다. 당초 양사는 오는 2025년까지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었으나, 핵심 광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계획이 좌초됐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니켈 가격은 2022년 12월 톤당 3만 달러(약 4,100만원)에서 이달 10일 1만7,835달러(약 2,500만원)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리튬 가격도 kg당 477위안(RMB·9만원)에서 98위안(1만8,000원)으로 대폭 하락했다. 

이번 합작공장 무산에 따른 양사의 반응은 대조적이다. 성일하이텍은 앞으로도 재활용 배터리 시장에서 미래를 도모하겠단 입장이다. 이미 폐배터리 제3공장까지 지은 상황에서 유럽과 북미에까지 신공장 건설을 검토하는 등 시장 공략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장을 증설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면 광물 가격 하락세도 이겨낼 수 있단 것이다. 성일하이택 관계자는 “자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배터리 재활용 전 공정을 수행하고 있다”며 “여기에 최근 완공한 3공장이 이달 말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하는데, 1·2·3공장의 니켈, 코발트, 리튬 생산량을 모두 합산하면 전기차 4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 나온다. 규모의 경제에 따른 원가 절감 효과가 기대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SK이노는 폐배터리 사업을 두고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SK이노는 지난 2017년부터 수명이 다한 리튬이온 배터리의 리튬을 수산화리튬 형태로 회수하는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이후 성일하이텍과 합작공장 설립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면서 포트폴리오 강화에 나섰지만, 공장 추진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폐배터리 사업 전략 자체가 모호해졌단 평가가 쏟아졌다. SK이노 입장에선 폐배터리 사업으로 성과를 얻기 어려워지면서 폐배터리에 대한 투자 순위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단 것이다.

중국 폐배터리 공장은 설립했지만, 자금 부족이 ‘족쇄’

이전까지만 해도 SK이노는 폐배터리 사업을 통해 순환경제 모델을 구축할 방침이었다. 회사 기술력을 총동원해 폐배터리에서 배터리 원가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양극재 핵심 원료를 모두 회수하겠단 게 SK이노의 최종 목표였다. 양극재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원료를 섞은 전구체에 리튬을 배합해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SK에코플랜트 차원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 자회사 테스(TES)와 함께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 생산국인 중국에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준공하기도 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해 12월 중국 장쑤성 옌청시 경제기술개발구에서 1단계 배터리 재활용 전처리 공장을 설립했는데, 총 연면적 8,000㎡ 규모로 이 공장만으로 연간 2,000톤의 블랙매스 생산이 가능하다. SK에코플랜트는 향후 인근 지역에 같은 규모의 2단계 전처리 공장을 추가 준공해 연간 총 4,000톤가량의 블랙매스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금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고금리 상황 등으로 사업 추진이 연기된 것이다. 성일하이텍과의 합작법인 설립이 지연되면서 국내 생산 설비 확대도 지지부진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SK이노는 지난 2021년 대전광역시 환경과학기술원 내 ‘데모플랜트’를 완공한 바 있다. SK이노는 이를 토대로 성일하이텍과 2025년 가동을 목표로 국내 첫 상업공장을 건설할 예정이었지만, 공장 착공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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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온에 ‘선택과 집중’, 하지만

이에 SK그룹은 사업성이 낮은 사업을 우선 정리한 뒤 미래 먹거리로 떠오른 배터리 제조사 SK온을 적극 지원하겠단 방침이다. 자금 부족 문제는 계열사 매각을 통해 해결할 계획이다. 관련 논의를 진행하기 위한 회의 일정도 잡혔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오는 28일 서울 서린동 SK서린사옥에서 수펙스추구협의회 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번 회의에서 SK그룹 내 사업구조 개편 방안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미 지분 매각이 결정된 사례도 있다. SK이노의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다. 앞서 지난 5월 SK그룹은 SKIET에 대해 경영권 매각을 포함한 지분 매각을 결정했다. SKIET의 시가총액은 지난달을 기준으로 4조854억원가량이며, SK이노의 지분은 61%다. 단순 계산으로도 SK이노의 지분가치는 약 2조5,000억원에 달하며,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으면 가격은 더 높아질 수 있다. SK그룹은 이번 SKIET 매각이 성사되면 당분간은 자금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SK온의 성장 가능성에 의문이 적지 않단 점이다. SK온은 지난 2021년 10월 SK이노로부터 물적 분할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지난 1분기에도 3,315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며 안정적인 입지를 확보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거듭 적자를 내며 모회사인 SK이노는 물론 SK그룹과 지주사 SK의 실탄까지 잠식하고 있는 SK온이 폐배터리 사업 및 SKIET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