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징 투자 늘려라” 글로벌 시장 영향력 키워가는 대만 반도체 업계
패키징 시장 휘어잡은 대만 반도체 업체들, 추가 투자 나선다
TSMC, '큰손 고객' 애플 수요 대거 흡수하며 성장 거듭
"삼성전자 제쳐야지" 2나노 파운드리 공정 투자도 확대
TSMC, ASE 등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반도체 패키징 관련 투자를 속속 확대하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이 성장하며 반도체 패키징 관련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생산 역량 확대를 위한 투자를 단행하며 시장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대만 반도체 업계, 패키징 투자 확대
5일 업계에 따르면 TSMC는 대만 남부에 첨단 패키징(CoWoS) 생산시설 증설을 위한 부지를 선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oWoS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연결해 성능을 끌어올리는 패키징 공정이다. ASE는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에 두 번째 테스트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으며, 멕시코 토날라에도 패키징 및 테스트 공장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현시점 이들 기업은 글로벌 패키징 시장의 ‘중심축’으로 꼽힌다. TSMC는 엔비디아, AMD 등 세계 시장 주요 플레이어의 수요를 대거 흡수하며 AI 가속기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ASE 역시 엔비디아, 퀄컴, 인텔, AMD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분야 시장 점유율 1위(27.6%)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미 시장 경쟁력을 확보한 이들 업체가 추가적으로 패키징 관련 투자를 늘리는 것은 AI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며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고 생산 비용이 증가하면서 고성능 반도체 생산 공정이 한계에 부딪히자, 여러 개의 반도체를 연결하는 패키징 기술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페어필드에 따르면 반도체 패키징 시장은 매년 10% 이상 성장하며 오는 2030년 900억 달러(약 120조원) 규모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애플 업고 질주하는 TSMC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들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패키징 분야를 넘어 반도체 시장 전반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대만 공상일보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TSMC 3나노 2세대(N3E)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라인을 활용하는 A18 프로세서 주문량을 크게 늘렸다. A18은 애플이 올해 출시를 앞둔 아이폰16 시리즈에 적용되는 차기 프로세서로, 애플 인공지능(AI) 기술인 ‘애플 인텔리전스’ 구동에 특화한 고성능 반도체로 추정된다. 공상일보는 아이폰16 시리즈가 소비자의 스마트폰 교체 수요를 효과적으로 자극할 것이라며 TSMC의 프로세서 위탁생산 수주 물량도 대폭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TSMC는 애플의 신형 아이패드 프로에 적용되는 M4 프로세서도 3나노 2세대 공정으로 위탁생산할 예정이다. 애플이 연말에 M4 기반의 맥북 등 신제품을 선보일 경우 TSMC의 파운드리 수주 물량은 한층 늘어나게 된다. 공상일보는 애플이 지난해 TSMC 연 매출의 약 25%를 책임진 데 이어 올해도 최대 고객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봤다. 애플이 TSMC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셈이다. 매체는 “애플의 A18 및 M4 파운드리 물량 증가가 TSMC 하반기 실적 증가를 이끌 것”이라며 사업 전망이 밝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2나노 선점 경쟁에도 박차
이런 가운데 TSMC는 내년 상용화를 앞둔 2나노 미세공정 파운드리 시설 투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3일 IT전문지 WCCF테크에 따르면 증권사 UBS는 보고서를 통해 TSMC가 내년 설비 투자에 들이는 금액을 370억 달러(약 51조3,000억원)까지 늘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올해 예상 투자액(320억 달러) 대비 15.6% 증가한 수준이다. WCCF테크는 TSMC가 2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기존 일정보다 빠르게 도입하기 위해 시설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TSMC는 최근 컨퍼런스콜을 통해 2나노 파운드리에 고객사들의 잠재 수요가 3나노 공정과 비교해 높은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한 바 있다. 2나노 미세공정이 도입 초반부터 애플, 엔비디아, 인텔 등 다수의 대형 고객사에 주목을 받았던 3나노 미세공정보다 한층 활발하게 채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애플과 엔비디아는 이미 TSMC와 2나노 파운드리 초기 물량 확보를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TSMC의 투자 확대가 시장 내 ‘2나노 선점 경쟁’을 의식한 전략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TSMC의 대표적인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인텔이 2나노 파운드리 역량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TSMC 역시 시장 선점을 위해 관련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 삼성전자는 2025년에 2나노 미세 공정을, 인텔은 18A(1.8나노급) 공정을 각각 도입하며 TSMC와 수주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존에 3나노 파생 공정으로 분류하던 ‘SF3P’ 공정을 2나노에 해당하는 SF2 공정으로 재정의하며 양산 시점을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