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악화·리니지 역풍에 위기 맞은 엔씨소프트, 일각선 정치권발 ‘게임 악마화’ 정책 비판도
실적 부진 이어가는 엔씨소프트, 2분기 매출도 전년 대비 12.24% 감소 전망
인식 악화에 부진하는 신작 게임들, 일부 게임은 '개고기 미트볼' 등 멸칭 붙기도
셧다운제 등 게임 악마화 사례↑, "사실상 정치권이 국내 게임 산업계 발전 막았다"
주요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인 리니지 시리즈의 매출이 감소하면서 국내 게임업계의 거산으로 꼽혀 온 엔씨소프트가 위기에 봉착했다. 신작의 성과가 부진하게 나타남에 따라 실적 악화가 심화하고 있기도 하다. 리니지 시리즈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맹독성 BM(비즈니스 모델)을 남발한 엔씨소프트 특유의 사업 구조와 정계·언론 등을 중심으로 벌어진 ‘게임 악마화’에 따른 국내 게임업계의 침체가 총체적인 위기를 몰고 온 것으로 분석된다.
엔씨소프트 2분기 예상 매출 3,864억원
1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엔씨소프트의 올해 2분기 예상 매출은 3,86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24% 감소했다. 영업손실도 14억원을 기록해 적자 전환할 것으로 추정된다. 엔씨소프트가 분기 기준 적자를 기록하는 건 2013년 2분기 이후 11년 만의 일이다.
엔씨소프트의 위기는 리니지 시리즈의 추락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초 리니지는 엔씨소프트의 ‘실적 대들보’였다. 엔씨소프트가 가장 마지막으로 게임별 매출 구성을 공개한 2022년 4분기 기준 전체 모바일 게임 매출 3,810억원 중 98%가 리니지 시리즈에서 나왔을 정도다. 전체 PC 게임 매출 1,044억원 중 52%도 리니지 시리즈가 차지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를 동력 삼아 2020년 매출 2조원 시대를 열었고, 이를 기반으로 거듭된 실적 잔치를 벌여 왔다.
리니지 시리즈 ‘역풍’에 신작 실적 부진까지
그러나 2021년부터 리니지 시리즈가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 2021년 4월 ‘리니지M’ 유저들이 엔씨소프트의 확률형 아이템 과금 체계에 불만을 갖고 엔씨소프트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벌이고 나선 것이다. 일부 이용자들과는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엔씨소프트가 일부 유튜버·BJ를 대상으로 진행한 리니지 2M 프로모션이 확률형 아이템 구매를 유도·조장한다는 이유로 이용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이후 리니지 시리즈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악화를 거듭했다. 돈 많은, 소위 ‘린저씨(리니지+아저씨)’들이 즐기는 게임이라는 이미지는 퇴색되고 현실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맹독성 BM’만이 리니지의 유일한 정체성이 된 것이다. 엔씨소프트라는 게임사 자체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면서 신작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실제 엔씨소프트가 10년 가까이 준비한 ‘쓰론앤리버티(TL)’는 지난해 12월 출시 직후 ‘개고기 탕후루’라는 조롱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개고기 탕후루’는 엔씨소프트가 트렌드(탕후루)를 따라가고 싶지만 고인물(개고기)이 돼버린 리니지의 정체성(맹독성 BM 등)을 버리지 못한 것을 비꼰 말이다. 최근 공개한 ‘호연’ 또한 낮은 퀄리티와 부정적 인식이 결합하면서 ‘개고기 미트볼’이라는 치욕적인 악평을 받았다. 결국 수요자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게 엔씨소프트가 처한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엔씨소프트의 실적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 2022년 1분기 기준 7,903억원에 달했던 엔씨소프트의 분기 매출은 같은 해 4분기 5,479억원으로 내려앉더니 올해 1분기 3,979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불과 2년 만에 매출이 반토막 난 것이다. 시가총액 역시 과거 상장 당시 14조원에서 현재 3조6,200억원으로 확 줄었다.
한때 120만원을 호가하던 주가도 올해 초 24만원 선까지 떨어졌고, 이후로도 하락세를 유지하다가 18일 기준 18만9,800원에 장중 마감했다. 이에 증권사들도 목표 주가를 일제히 하향하는 모양새다. 키움증권은 지난 4월 엔씨소프트의 목표 주가를 24만원에서 20만원으로, KB증권은 21만원에서 19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리니지의 성공에 매몰돼 당장의 이익 추구에 급급했던 엔씨소프트의 원죄가 발현되기 시작한 셈이다.
“정치권의 ‘게임 악마화’가 게임사 몰락 가속했다”
다만 일각에선 정치권과 언론 등을 중심으로 자행돼 온 ‘게임 악마화’가 근본적인 문제점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 차원에서 게임 산업을 직접적으로 가로막다 보니 한국 게임업계의 발전 방향성이 수익 강화에 치중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국내 게임들의 경쟁력이 상실돼 게임사의 몰락이 가속했단 것이다.
실제 우리 정부는 국내 게임 산업의 발전을 거듭 방해해 왔다. 여성가족부가 시행한 ‘강제적 셧다운제’가 대표적이다. 셧다운제는 2000년대 초반 청소년 게임 과몰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2011년부터 시행됐다. 청소년들의 게임 이용 시간을 통제함으로써 게임 중독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단 취지였지만, 실상 부모님 계정을 이용하면 쉽게 우회가 가능해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가부는 지난 2021년 6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기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청소년 이용 불가’로 전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 12세 이용 가능 판정을 받았음에도 셧다운제를 적용하기 위해 임의로 사용 연령을 조정하려 한 것으로, 사실상 셧다운제의 목적과 수단이 도치된 셈이다. 과거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장이 지적한 대로, 비합리적인 게임 악마화 제도를 ‘물고 늘어지다’ 보니 정부마저 정책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꼴이 됐다.
게임 악마화 사례는 지금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횡행하고 있다. 당장 지난달에도 KBS ‘과학수사대 스모킹 건’에 출연한 정신과 전문의가 살인 사건의 원인으로 전략 게임을 지목하며 논란이 촉발된 바 있다. 당시 해당 정신과 전문의는 “(살인 사건의) 범인은 평소 전략 게임을 즐겨 왔는데, 인생이 게임처럼 자기 전략대로 풀리지 않자 좌절했고 마치 게임을 리셋하듯 인생을 리셋하기 위해 아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선 비판이 쇄도했다. 특히 게임 이슈 유튜버 ‘김성회의 G식백과’는 정계, 정신의학계 등을 엑소시스트에 비유하며 관련 사태를 작심 비판했다. 그는 “귀신 들린 자들이 창궐하면 항상 엑소시스트가 부자가 됐다”며 “게임을 악마화하면 우리는 귀신 들린 자가 되고, 비로소 우리는 치료 대상이 된다. 게임 질병화의 막대한 이권은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조 단위 게임 중독세를 걷으려던 여가부의 4대 중독법 시도 및 피를 뽑아 게임 중독을 예방하겠다던 여가부의 디톡스 정부 사업 등 게임 질병화 사례를 추가 고발하기도 했다. 정치권과 이익 집단이 각자의 이권을 위해 게임 산업계의 몰락을 주도해 온 역사를, 엔씨소프트 침몰의 순간에 다시금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