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생산량 증가에도 재고 14.6% 감소, AI 수요 폭증에 반도체도 덩달아 ‘호황 사이클’
반도체 생산지수 163.4,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 기록
생산 증가·가격 상승에도 재고는 14.6% 감소, 호황 사이클 기대감 확산
중국 수출 감소로 적자 쌓았지만, AI 호황에 반도체 기업 실적 개선 수순
반도체 업계의 적극적인 공정 가동으로 반도체 생산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도 재고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 호황 사이클이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6월 반도체 생산량 증가, 출하도 증가 흐름
1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사업활동동향에 따르면 6월 반도체 생산지수(계절조정)는 163.4(2020=100)로 집계됐다. 1980년 1월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최대치다. 생산이 증가한 가운데 출하도 증가 흐름을 보였다. 실제 6월 반도체 출하는 전월 대비 23.7% 증가했다. 내수 출하(지수:110.0)는 전월 대비 7.0% 감소했으나 수출(지수:199.6) 출하가 28.1% 늘었다. 전체 수출 출하 규모도 내수 출하의 약 6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생산 증가에도 출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반도체 제품 재고는 전월 대비 14.6% 감소했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35.5% 감소한 규모로, 반도체 산업의 호황 사이클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반도체 생산·출하는 이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 장비 도입이 가속하고 있는 데다 정부도 설비 확대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상태여서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6월 산업활동동향의 설비투자 측면을 보면 반도체 설비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기계류 설비 투자가 전월 대비 6.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구매 자금은 정책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가격 상승세에도 재고는 줄었다
이번 지표에서 눈에 띄는 건 최근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를 이루고 있음에도 재고가 줄었단 점이다. 통상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 충당금 환입이 이뤄진다. 충당금은 재고자산 가치가 하락할 때 회계상 반영하는 비용으로,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 재고자산 평가 충당금이 불어나 손익계산서상 비용(매출원가)이 늘어 영업이익이 줄고 가격이 오르면 반대로 환입이 이뤄져 재고자산이 증가한다. 즉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 판매가 늘어도 장부상 재고가 더 쌓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단 것이다.
실제 올해 1분기에도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바 있다.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DS 부문 1분기 재고자산은 지난해 말 31조원에서 1분기 32조원으로 늘었다. 반도체 판매 호조로 재고 자체가 줄어도 재고 감소량이 충당금 환입으로 인한 재고자산 증가량을 상회하지 못해 회계상 ‘착시’가 발생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분기 들어 재고가 줄어든 건 그만큼 재고가 대폭 줄었단 뜻이다.
중국 의존도 높던 한국, AI로 ‘반전’
당초 그간 국내 반도체 업계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반도체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이 높아진 인건비, 미·중 무역분쟁 등에 따른 다국적 기업의 생산시설 이전으로 내수용 비중을 급격히 늘린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한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액은 23억4,000만 달러(약 3조1,990억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40.8% 감소했다.
이에 반도체 기업 실적도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1분기 4조5,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삼성전자 DS 부문은 2분기에도 4조3,600억원의 적자를 냈고, SK하이닉스도 지난해 2분기 2조8,82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4조1,926억원의 흑자를 낸 바 있지만, 2022년 4분기 이후 3개 분기 연속 대규모 적자 기조를 이었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반도체 시장의 큰손인 중국이 살아나는 것만이 한국 반도체 업계가 회복하는 길이란 인식이 확산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 등 국가에서 AI 수요가 폭증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AI 산업 호황에 힘 입어 반도체 업계까지 덩달아 호조세를 보인 것이다. 실제 생성형 AI 시장이 날로 커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퉈 AI 전용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장에선 HBM·DDR5·SSD 등 서버용 메모리 제품의 수요 강세가 지속되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AI와 고성능 컴퓨팅(HPC) 부문을 중심으로 고객 수가 증가세를 보이는 등 AI 중심의 매출 성장이 가시화하는 모양새다. 올 2분기 삼성전자의 매출 증가를 견인한 것도 AI 칩셋에 이용되는 HBM 칩 및 데이터센터 서버 등 부문이었다.
향후 AI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2024년 하반기 주요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업체와 기업들이 AI 투자를 확대함에 따라 AI 서버가 (메모리) 시장의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증권업계 관계자 역시 “AI 반도체는 가시성 높은 장기 실적 성장에 기반을 두고 있어 1990년대 이름에 ‘닷컴’만 들어가면 주가가 급등했던 닷컴 버블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글로벌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이 3년 이내에 AI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 AI 반도체 수요는 향후 3년간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호재를 이어 나갈 만한 역량과 배경이 국내 반도체 업계에 내재되기 시작했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