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 못 버텨” 위축되는 유럽 배터리 시장, 동아시아 3국은 꿋꿋이 ‘투자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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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완성차 기업, 줄줄이 유럽 배터리 투자 줄였다
유럽 유력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도 구조조정·투자 축소
"오히려 배터리 투자 속도 낸다" 동아시아 3국의 정반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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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배터리 시장이 본격적인 침체기에 돌입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줄줄이 유럽 내 배터리 생산 시설 투자를 축소·중단하는 가운데, 유럽 배터리 시장의 대표 주자인 노스볼트마저 사업 확장 속도를 늦추며 ‘덩치 줄이기’에 착수하는 모습이다.

유럽 배터리 시장 투자 위축

24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볼보트럭은 내년부터 스웨덴에 짓기로 했던 신규 배터리 생산 공장 착공을 1~2년 뒤로 연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볼보트럭의 유럽 내 전기트럭 시장 점유율은 56.9%에 이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5분기 연속 전기트럭 주문이 감소세를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전반을 휩쓴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이 배터리 투자 축소로 이어진 셈이다.

이탈리아 정부 역시 최근 다국적 자동차 제조 업체 스텔란티스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배터리 합작 공장에 지급하려던 보조금 2억 유로(약 3,000억원)를 다른 사용처에 쓰겠다고 전했다. 해당 공장 건설이 지난 6월부터 중단된 데 따른 조치다. 앞서 스텔란티스는 벤츠, 토탈에너지와 합작사 오토모티브셀컴퍼니(ACC)를 세우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기가팩토리 3곳을 건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ACC는 현재 프랑스 공장만 가동 중이고, 독일과 이탈리아 기가팩토리는 건설을 중단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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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스볼트

유럽 배터리 대표 주자 ‘노스볼트’도 휘청

유럽의 대표적인 배터리 제조 업체인 스웨덴 노스볼트 역시 궁지에 몰렸다. 노스볼트는 유럽 당국과 자동차 제조사들이 아시아 배터리 공급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힘을 모아 설립한 기업이다. 2021년 경쟁사들보다 앞서 첫 배터리 셀을 생산했으며, 150억 유로 이상의 자금을 조달해 유럽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신생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노스볼트는 배터리 제조부터 재활용까지 모든 사업을 망라하는 ‘올인원’ 기업을 목표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왔으나, 최근 전기차 캐즘 현상과 누적되는 악재로 사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노스볼트는 지난 7월 BMW와 맺은 20억 달러(약 3조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구매 계약 취소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라며 “생산 역량 부족, 주요 고객사인 폭스바겐 독일 공장 폐쇄 등도 (노스볼트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상황이 악화하며 성장 둔화가 기정사실화하자, 노스볼트는 생존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노스볼트는 스웨덴 내 인력 1,600명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 세계 노스볼트 직원 20%, 스웨덴 직원의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스웨덴 북부 셸레프테오 공장 확장 계획도 전면 중단키로 했다. 폴란드 그단스크에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시스템 공장 역시 일부 또는 전체 매각을 검토 중이다. 장기간 고수해 오던 공격적인 사업 확장 정책에 본격적으로 제동이 걸린 셈이다.

동아시아 3국의 공격적 투자

유럽 배터리 시장이 눈에 띄게 위축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경쟁 구도가 동아시아 3국을 위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한 시장 관계자는 “한국, 중국, 일본은 전기차 캐즘이 장기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배터리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며 “유럽 배터리 업계가 성장 동력을 잃을 경우, 동아시아 3국의 패권 경쟁이 시장에서 한층 두드러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최근 중국 배터리 업계는 거대한 내수 시장 규모와 막대한 보조금에 힘입어 시장 영향력을 꾸준히 키워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자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 하에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을 ‘3대 신산업’으로 지정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3~9배 달하는 산업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기술 우위 확보를 위해 차세대 배터리 양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 5,800억원을 투자해 충북 오창공장에 46파이 배터리 양산 라인을 구축했으며, 올해 말부터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2027년께 양산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지난해 말부터 고객사들에 샘플을 공급, 전고체 전지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SK온은 ‘인터배터리 2024’에서 ESS(에너지 저장 장치, Energy Storage System) 관련 제품을 최초 공개하고, 미국 IHI테라선솔루션과 북미 ESS 사업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ESS 부문에 힘을 싣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