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 2차 반도체 공급 대란 우려 “AI 광풍에 칩 부족 사태 발생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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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 "반도체 수요 이상 20% 증가 시 수급 불균형 우려"
GPU 등 데이터센터용 칩·온디바이스 칩 등 수요 급증
AI 반도체 시장 연 40~55% 성장, 3년 후 1조 달러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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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부족(chip shortage)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거대 AI 모델의 학습에 필수적인 GPU(그래픽처리장치)와 스마트폰, 노트북 등 AI 지원기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데다 지정학적 긴장까지 고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칩 부족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거대 AI모델 개발과 AI 지원기기 탑재 물량 급증

25일(현지 시각)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이하 베인)는 연례 글로벌 기술 보고서에서 “AI 반도체와 스마트폰, 노트북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칩 부족 현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발생한 반도체 칩 공급 대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다. 당시 부품 공급망이 붕괴된 상황에서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노트북을 비롯한 가전제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가 칩 부족에 시달린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AI와 관련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도달 가능한 시장이 적어도 향후 3년간 매년 40~55%씩 성장해 2027년에는 7,800억~9,9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AI 훈련과 추론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수요가 급증하며 시장의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베인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엔비디아의 주력 GPU인 H100의 출하량은 150만 개였는데 2026년에는 차세대 주력 GPU GB200의 출하량이 300만 개로 확대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미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반도체 시장 1위 엔비디아의 GPU 등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용 AI 칩 시장에서 점유율이 80%에 이르는데 이 중에서도 GPU는 챗GPT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의 기반이 되는 거대 AI모델 훈련에 필수적이다. 또 퀄컴 등은 스마트폰과 PC에 탑재돼 클라우드가 아닌 기기 자체에서 AI 앱을 실행할 수 있는 온디바이스 칩을 설계하는데 이 칩은 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생산하는 AI 지원 기기에 탑재된다.

주요국 무역 제재 등 지정학적 긴장도 불안 요인

베인은 다양한 생산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계된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AI 기반의 전자기기와 GPU 등의 수요 변화가 칩 부족을 야기하고 나아가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베인의 기술 실무 책임자인 앤 호커는 “GPU 수요 급증으로 반도체 공급망 내 특정 요소에 공급 부족이 발생했다”며 “GPU 수요 증가에 AI 지원기기의 교체 주기를 가속화하는 흐름이 더해지면 칩 공급에 더 큰 제약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아직은 소비자들이 AI 기기 구매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AI 지원기기와 관련한 수요가 얼마나 될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보고서는 “반도체 공급망은 매우 복잡해 AI 수요가 20% 이상 증가하면 균형을 깨고 칩 부족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데 대규모 시장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AI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임계점을 넘어 공급망 전반에 걸쳐 병목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반도체 공급망은 한 회사가 아닌 여러 회사에 걸쳐 분산돼 있다. 미국의 엔비디아가 GPU를 설계하고 대만 TSMC가 이를 생산하며, TSMC는 네덜란드 ASML에 칩 제조 도구를 의존한다. 또 최첨단 칩의 경우 삼성전자와 TSMC에서만 대량 생산이 가능한 상태다. 이렇게 각 요소가 연동돼 있다 보니 수요가 급증해 이 중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전체 공급망을 마비시킬 가능성이 있다.

주요국 정부가 반도체를 전략적 기술로 간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정학적 요인도 칩 부족을 촉발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베인은 설명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수출 제한 등의 제재를 통해 최첨단 칩에 대한 접근을 막고 있다. 보고서는 “지정학적 긴장, 무역 제재, 다국적 기술 기업의 중국 공급망 분리는 반도체 공급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며 “반도체 공장 건설 지연, 자재 부족 등 기타 예측할 수 없는 요소도 핀치 포인트를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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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웰 양산 돌입, SK도 HBM3E 12단 본격 출하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블랙웰의 양산도 반도체 공급망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주력 GPU GB200도 바로 블랙웰의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고성능 AI 칩이다. 블랙웰은 한때 생산이 지연돼 내년 1분기에나 대량 생산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패키징을 변경해 HBM3E 12단을 채택하며 일정대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HBM3E 12단의 공급 물량이다. HBM3E 12단은 최고 수율 90%에 달하는 D램과 달리 수율이 50% 안팎에 불과해 블랙웰의 공급량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현재 차세대 AI 반도체 블랙웰의 대량 생산에 돌입했다. 수요 또한 매우 강력한 상태로 블랙웰 칩은 4분기 출하량 45만 개를 기록하며 1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매출 목표가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HBM3E 12단의 안정적인 수율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실제로 그동안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은 HBM3E 12단 제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수율 안정화에 공을 들여왔으며 엔비디아 역시 블랙웰의 양산을 위해 이들과 협력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블랙웰에 탑재되는 HBM3E 12단 제품의 수요는 HBM 시장 1위 SK하이닉스가 선점할 것으로 보인다. 26일 SK하이닉스는 HBM3E 12단 신제품을 세계 최초로 양산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8단 제품에 이어서 또 ‘최초’ 자리를 선점한 것이다. SK하이닉스의 12단 제품은 기존 8단 제품보다 D램 4개를 더 쌓아 올려 저장 용량이 50% 늘어났다. 그럼에도 두께는 이전과 동일하고 방열 성능은 이전 세대보다 10% 높다. 엔비디아가 HBM3E 12단의 비중을 확대하기로 한 만큼 향후 실적을 견인할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