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토익’ 뤼이드(Riid)의 쓸쓸한 한국 귀환
소프트뱅크 2천억 투자받고 해외 진출 나섰던 'AI 토익' 전문기업 뤼이드
미국 주요 교육 전문가 영입하며 시장 적응 시도했으나 결국 사업 철수
작년 말 퀼슨 인수하며 대표이사도 교체, 창업자 장영준 대표 사임
AI(인공지능) 기반 시험 문제 예상 서비스로 유명세를 모았던 뤼이드(Riid)가 결국 글로벌 사업을 모두 철수하고 한국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말 이미 대표이사가 교체된 만큼 예견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 없이 마케팅만 있던 AI 사업의 종말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뤼이드의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84% 증가한 109억원으로 파악됐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 폭은 33%나 줄었다. 지난해 매출도 전년 대비 64.94% 증가한 77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270억원, 당기순손실은 269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각각 64.29%, 50.85% 감소했다.
뤼이드의 실적 반등은 해외 시장으로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멈추고 국내 사업에 집중하며 수익성을 끌어올린 영향이 크다. 뤼이드는 지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에서 산타토익으로 월간 사용자 500만 명을 기록하는 등 유명세를 끌었고, 이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2로부터 2,000억원의 투자를 받으며 해외로 시장을 넓혔다.
그러나 미국 사업에서 매년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 데다, 한국에서도 수익성을 내지 못해 속빈 강정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지난해 12월 영어 학습 콘텐츠 제공업체 퀼슨을 인수하면서 퀼슨의 박수영 대표이사가 합병 법인의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창업자인 장영준 대표는 고문직으로 물러났다. 이후 올해 8월 미국 법인인 뤼이드랩스를 공식 철수, 내부 정리를 거쳐 한국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021년 뤼이드가 소프트뱅크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국내 벤처업계에서는 과연 뤼이드가 실제로도 AI 기술력을 갖춘 회사인지에 대한 논란이 팽배했다. 뤼이드는 학계에서 B~C급 정도로 분류되는 학회지들에 기본적인 딥러닝 모델을 돌린 것에 지나지 않는 내용을 바탕으로 논문을 발표한 만큼 고급 기술을 갖췄다고 마케팅을 펼쳤지만, AI 분야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데이터 전처리에 인간이 손을 많이 쓰고 분류를 세분화했을 뿐, 실제로 토익 예상 기출 문제를 뽑아내기 위한 기계적 추론이 돌아간 것은 아니라고 단정짓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AI 분야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일반 투자자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사실 관계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뤼이드가 한국 마케팅을 축소하고 미국 시장에 집중하면서 논란이 사그라들긴 했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시장이 토익 시험 등에서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 아닌, 실제 언어 실력을 갖춘 인력들을 뽑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고급 인력 시장이란 점에서, 한국 방식의 쪽집게 과외 등 현 사업 모델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컸다. 뤼이드는 미국 시장 적응도를 높이겠다는 시도로 미국의 수학능력시험인 SAT 시험 출제 기관 고위직 관계자들을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SAT, ACT 등의 미국 주요 대학 입시 관련 시험 대비용 ‘알테스트’를 출시하기도 했으나,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미국 거주 한인들의 주로 모여사는 뉴저지의 한 대학입시전문 컨설팅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대규모 투자금을 바탕으로 뉴저지 및 로스엔젤레스 등지의 주요 한인 타운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으나, 미국 입시가 단순한 SAT 입학 시험 점수에 국한되지 않는 만큼,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데 실패했다. 여기에 ‘알테스트’가 문제 예상보다는 부족한 분야 점검 등의 서비스로 변형됐던 점도 시장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기출 문제 활용의 법적 이슈 넘지 못한 것도 패인
기출 문제를 활용해 예상 문제를 추출하는 사업 모델이 미국에서 지적 재산권 침해 문제를 넘지 못한 것도 패인으로 거론된다. 실제 기출 문제를 보고 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한국, 중국과 달리 영미권 교육은 기출문제는 문제 유형 파악이라는 관점에서만 활용하고, 이후에는 관련된 분야에 대한 심층 학습을 통해 실력을 쌓아올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 주류다. 게다가 시험 점수가 높더라도 △수업 참여도 △대외 활동 △학생 논문 등 다양한 활동 결과물을 통해 시험 점수가 실력임을 입증하는 복합적인 입시가 진행되고 있어 한국식 시험 대비 서비스가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일본에서 실패를 겪은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쿄 시내의 모 어학원에서 영어 교육을 2019년까지 하다 2020년 이후로는 온라인 교육으로 이전했다는 한 교육 관계자는 “산타토익이 일본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긴장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서비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영어 실력을 시험 점수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업무 능력으로 판단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일본 학생들은 토익 공부를 영어 실력 향상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반면, 산타토익 시스템은 한국에서와 같이 시험 점수가 오르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600점 대 이상이면 기업 지원에 장애를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이은 대형 실패로 국내 벤처 업계만 위축
벤처 업계 관계자들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어리석은 투자라는 질책보다, 뤼이드 장 전 대표의 사탕발림형 마케팅이 더 큰 문제였다고 입을 모은다. 실질적인 AI 기술에 대한 연구 및 실력 향상은 전혀 없이, 외부에 AI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것이 패착이란 지적이다. 이 같은 마케팅이 일반 대중에게는 먹혔을지 몰라도, 업계 전문가들에겐 되려 전문성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부작용만 낳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산타토익의 대규모 투자 건을 보고 교육에 AI를 적용하겠다는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성공 모델이 있으니 쉽게 대박을 낼 수 있을 것”이란 안이한 관점을 가진 벤처투자자들도 대거 등장했다. 40대 초반까지 소형 주식 전문 펀드매니저를 하다 벤처투자사로 자리를 옮겼다는 한 관계자는 당시 AI 수학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줄을 서가며 기업 가치를 올려서 평가해 줬던 사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품 기반으로 막대한 투자를 받았던 스타트업들의 실체 없던 사업 모델이 드러나며 무너지자, 벤처 업계도 빠르게 냉각되는 분위기다. “벤처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되려 성실하게 사업을 키우고 있는 업체들에 피해를 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벤처사업가는 뤼이드의 장 전 대표를 코인 업계의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에 비교했다. 거품을 키우면서 시장에 큰 영향을 줬지만 기초가 탄탄하지 않았던 탓에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힌 것에 그치지 않고 시장 자체를 와해시켜 버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