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만큼 뜨거운 ‘열교환기 특허 분쟁’, 경동나비엔 승소에 귀뚜라미 어쩌나
귀뚜라미 ‘거꾸로 콘덴싱’ 판매 중단 위기
본안 소송 땐 대규모 손해배상 불가피
국내에서 눈 돌린 나비엔, 해외 판로 확대
국내 보일러 업체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의 특허권 침해 소송에서 법원이 경동나비엔의 손을 들어줬다. 귀뚜라미가 경동나비엔의 보일러에 적용된 열교환기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해 제품을 제품을 출시·판매했다는 판단이다. 추후 본안 소송으로 확대될 경우 대규모 손해배상 또한 불가피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보일러 시장의 1강(경동나비엔) 3중(귀뚜라미·대성·린나이) 구도가 무너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동나비엔 콘덴싱 열교환기 독창성 인정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 민사합의 60부는 지난달 30일 경동나비엔이 귀뚜라미를 상대로 한 특허권 침해 가처분 신청 소송에서 경동의 손을 들어줬다. 경동나비엔의 콘덴싱 보일러 열교환기 구조 관련 기술이 독창성을 지녔다고 판단, 귀뚜라미가 해당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해 제품을 출시·판매하는 등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본 것이다. 앞서 재판부는 두 차례의 재판을 통해 양측의 입장을 확인하고, 지난 4월 심리를 종결한 바 있다. 현재 결정문은 각 사로 송달된 상태며, 양쪽 대리인은 결정문 등본 열람을 마쳤다.
법원이 경동나비엔의 가처분 신청을 최종 인용함에 따라 귀뚜라미 일부 제품의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될 전망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귀뚜라미가 2021년 8월 출시한 ‘거꾸로 에코 콘덴싱’에 들어간 열교환기다. 열교환기는 내부에서 발생하는 열을 흡수해 난방수를 데우는 역할을 하는 보일러의 핵심 부품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시장의 지각 변동을 내다보는 모양새다. 문제가 된 제품이 귀뚜라미의 친환경 콘덴싱 주력 모델이란 점에서 당장 판매가 중단될 경우 대체할 제품이 없어 회사의 수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번 사건이 추후 본안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귀뚜라미는 이미 시장에 판매된 제품에 대한 손해배상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 보일러 시장에서 오랜 시간 이어져 온 1강 3중 체제가 무너질 것이란 전망도 이 때문이다.
귀뚜라미 “과거 기술 승계·개발, 나비엔과 무관”
두 회사의 다툼은 202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귀뚜라미는 ‘ALL 스테인리스 일체형 열교환기’가 적용된 제품을 출시했다. ‘거꾸로 콘덴싱’으로 이름을 알린 L11, S11, E11 등이다. 귀뚜라미는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재질을 이용해 열효율을 높여 가스비를 줄일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제품을 홍보했다. 또 친환경 소비 행태에 발맞춰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강조했다.
경동나비엔은 귀뚜라미가 L11 등을 출시하면서 자신들이 개발해 특허 출원까지 마친 열교환기 기술을 무단 사용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콘덴싱 보일러의 핵심은 열효율로, 열 배관 설계 및 모양, 구성 요소의 차이 등에 따라 열효율이 달라진다. 경동나비엔은 최적의 열효율을 낼 수 있는 열교환기를 개발했는데, 해당 기술을 귀뚜라미가 무단 도용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귀뚜라미는 자사 보일러에 탑재된 열교환기는 과거 기술을 승계·개발해 적용한 것으로, 그 구조 등이 경동나비엔의 것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경동나비엔의 특허가 무효라는 주장을 내놨다. 경동나비엔의 특허 일부가 출원 이전부터 활용되고 있는 만큼 ‘신규성’과 ‘진보성’이 결여됐다는 반박이다.
결국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12월 법원에 “귀뚜라미가 자사 콘덴싱 보일러의 핵심 부품인 열교환기 기술을 무단 도용했다”며 특허권 침해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에 앞서 2022년 말에는 자사 직원 8명이 귀뚜라미로 이직한 사실과 관련해 경찰에 고소를 진행하기도 했다. 영업비밀 유출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경찰 조사 마무리 단계로, 이번 법원의 가처분 인용 판결이 나오며 그 결과에도 이목이 쏠리는 모습이다.
귀뚜라미 잡고 세계 시장 공략
귀뚜라미와 치열한 법정 싸움을 이어오는 동안 경동나비엔은 해외 시장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키웠다. 국내에서 눈을 돌려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확대하겠다는 복안이다. 그 결과 경동나비엔의 수출액은 해마다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늘고 있다. 경동나비엔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수출매출은 8,146억원으로 전년(7,733억원) 대비 5.3%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매출은 3,876억원에서 3,897억원으로 0.6%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매출액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66.6%에서 지난해 67.6%로 확대됐다.
경동나비엔은 해외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둔 요인으로 현지화 전략을 꼽았다. 미국과 영국,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47개국에 수출하는 보일러와 온수기 등을 현지 맞춤형으로 제작, 생산해 그 수출량을 증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중앙아시아의 경우 보일러의 유통과 설치, 서비스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고 낙후된 탓에 현지 맞춤형 제품의 고객 만족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북쪽으로는 러시아부터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중앙아시아는 7,5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는 대규모 시장이다.
고환율과 물류비 개선도 영업 이익 증가에 일조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지난해 높은 환율로 인해 기저효과가 작용한 데다, 물류비가 안정화되면서 영업 이익 상승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2022년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을 계기로 국제 물류에 드는 비용이 높았지만, 지난해부터 안정을 되찾았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올해에도 친환경·고효율 기술력을 기반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 판로 확대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