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인상에 정전까지” TSMC, 대만 전기 공급에 발목 잡혔다
무리한 탈원전으로 에너지 공급 불안정해진 대만
TSMC, 급격한 전기 요금 상승·잦은 정전에 '난색'
"TSMC 전력 수요, 갈수록 증가" 중장기적 리스크 우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대만 TSMC가 전기 요금 인상과 빈번한 정전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반적인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 파운드리 업계 피해가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
TSMC 옥죄는 ‘전기 요금‘
5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만의 급격한 전기 요금 상승으로 TSMC가 경쟁력에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웬델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투자자들에게 “지난 몇 년간 전기요금이 두 배로 올랐다”며 “내년에는 대만의 전기 요금이 우리가 공장을 운영 중인 국가 중에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대만은 자국 내 업체들에 세금 환급 등 여러 혜택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영 전력회사인 대만전력공사의 손실이 급증했고, 전기요금 인상도 불가피해졌다. 이에 대만은 성장세가 강한 분야를 중심으로 급격한 전기 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올해 4월 전기요금 인상 당시 평균 인상률은 11%였지만 TSMC를 포함한 대규모 산업용 사용자의 인상률은 25%였다. 지난 10월에도 일몰 산업 또는 전력 사용량이 감소하는 분야의 기업과 가정용 요금은 동결된 반면, 대규모 산업용 사용자의 전기 요금은 14% 인상됐다.
잦은 정전도 TSMC의 시장 경쟁력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지목된다. 지난 10년간 대만의 전력 예비율은 정부 목표치인 15%를 빈번하게 밑돌았으며, 수시로 곳곳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TSMC와 같이 안정적 전력 공급이 중요한 파운드리 기업에는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다.
탈원전이 전력 부족 불렀다
대만 전력 부족 문제의 배경에는 ‘탈원전 정책’이 있다. 대만은 탈원전 정책에 따라 2018년부터 작년까지 총 4기의 원전을 폐쇄했다. 올해 7월에는 제3원전 1호기 가동이 중단됐고, 내년 5월에는 제3원전 2호기도 폐쇄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제4원전은 2021년 국민투표에서 상업 발전 방안이 부결돼 공정이 90% 이상 진행된 사태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대만 전체 전력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탈원전이 시작되기 전 12% 정도였으나, 지난해에는 6.3%까지 감소했다. 올해 원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 정부는 2025년 탈원전을 완성하면서 석탄·가스 화력 발전 80%,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20%로 전력 구조를 개편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작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9.5%에 불과했다. 원전의 ‘빈자리’가 사실상 채워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원전 대체를 위해 가스발전소를 대거 건설한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지난해 기준 대만 전체 발전량의 44.1%를 가스발전소가 차지했다. 문제는 대만이 천연가스 공급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가스 가격 폭등, 공급 감소 등 악재가 발생할 경우 에너지 공급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진다는 의미다. 실제 대만전력공사는 최근 국제 가스 가격 상승에 따라 대규모 적자를 떠안았고, 손실을 메우기 위해 계속해서 전기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전기, TSMC 신용등급에도 영향 미칠 것”
불안정한 에너지 공급 상황은 자연히 대만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인 TSMC에 큰 부담을 안기고 있다. 대만 경제일보에 따르면 10월 중순부터 적용된 대만 전기요금 인상안에 따라 TSMC는 연간 112억 대만달러(약 4,663억 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금융 서비스 업체 S&P글로벌은 전력 문제가 중장기적으로 TSMC의 신용 등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다. TSMC의 3나노 파운드리 미세공정 등 첨단 기술 발전이 전력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차후 전기 요금 부담이 가중되며 신용 등급이 미끄러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S&P글로벌은 TSMC가 3나노 반도체를 생산할 때 쓰는 전력량이 10나노 공정 대비 약 2배에 이른다고 분석했으며, 인공지능(AI) 시장 성장에 따른 TSMC의 첨단 반도체 패키징 증설도 전력 사용량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바라봤다.
S&P글로벌은 현재 대만 전체 공급량 중 8% 수준인 TSMC의 전력 사용량이 2030년에는 24%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차후 대만 정부가 전력 공급량 확대에 실패할 경우, 급증하는 TSMC의 전력 수요가 거대한 ‘리스크’로 부상할 것이라는 평가다. S&P글로벌은 “대만은 가정용 전력 사용량 감소에도 TSMC의 수요 증가에 영향을 받아 예비 전력량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당분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