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정부가 수학 교육을 포기하면 학생들은 덜 수포자가 될까?

②정부가 수포자되니 교육 빈부격차만 재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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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수학 교육을 포기하면서 비용이 사교육으로 전가되는 구조가 됐음
고교 수준 사교육이 대학 입시에만 매몰되면서 대학, 기업이 책임지는 형태가 될 것
대학과 기업이 책임지지 않으면 결국 부모가 돈을 쓴 인재들만 사회에서 쓰이는 빈부격차 재생산을 낳을지도

지난 20년간 해외 대학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받아주는 비율이 왜 이렇게 줄었을까 한번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예전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점을 적당히 받아도 미국 명문대로 유학가는게 어렵지 않았다는데, 왜 우리 세대는 이렇게 유학가기가 어려웠을까? 반면 미국에서 대학 나온 애들은 왜 저렇게 미국 대학원을 가는게 쉬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국내의 망가진 수학 교육을 꼽고 싶다. 이제 아시아 애들이 수학 문제 풀이만 잘 하는 애들이지, 영미권 스타일로 수학 교육이 된 애들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됐고, 심지어 그런 수학 교육 마저도 수준이 많이 낮아졌다는 정보가 이미 미국 대학들에 공유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정보가 다 주어져 있는데 굳이 한국 학생들로 도박을 해야할 이유는 없겠지.

반면 실력이 좀 모자라더라도 미국 대학으로 학부부터 갔던 애들, 심지어 고교부터 갔던 애들은 명문대에 우리보다 훨씬 더 쉽게 진학하고,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유학가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빈부격차가 심화된 셈이다.

정부가 수학 포기하면 교육 빈부격차만 커진다

국내 초 명문대 중 한 곳인 K대 학생 게시판에 내가 지적하는 수학적 사고력은 전혀 필요없고, 코딩테스트만 통과하면 된다는, 악에 받친 댓글이 올라온 걸 본 적이 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한국 인력들이 많을 것이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건 코딩테스트니까.

그런데, 기업들이 만들어서 팔아야 하는 상품들은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인재를 채용했건 관계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팔리는 수준의 고급 상품이어야 한다. 그래야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고, 그게 아니면 후진국의 저가 인력들과 경쟁해서 팔아야 하는데, 상품 단가를 못 맞출 것이다.

말을 바꾸면, 상품이 어느 나라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었건 상관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팔리기 위한 상품을 만들려면 그 상품 제조를 위한 기본적인 훈련을 받은 인재들이 필수라는 뜻이 된다. 자, 코딩테스트만 통과하면 된다고 악에 받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을 뽑아서 그런 시장 경쟁을 할 수 있을까?

이미 나는 개발 필요 부분을 인도, 동유럽 개발자들에게 완전히 넘겼다. 한국에서 개발자를 뽑을 생각이 없고, 몇 년이 더 지나면 나 혼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수 많은 한국 기업들이 내 말 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럼 지난 정권이 막대한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서 키웠던 코딩 학원과 그 학원에서 교육 받은 인재들이 너무 비싸서 못 쓰는 인력이 되어 버린다. 기업들이 뽑아서 써 주고 싶어도 해외에 그 상품을 팔 수가 없는데, 수익성이 안 나는데 사업을 계속 유지할 수 없지 않을까?

이걸 좀 더 일찍 깨친 인재 분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형, 저만 혼다 시빅 몰고, 한국 유학생들은 다들 독3사 타요

미국 서부 초 유명 명문대인 S모 대학에 찾아갔다가 공학 박사 유학 중이던 후배에게 연락해서 밥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그 후배가 자기 차가 너무 초라해서 형을 태우기가 좀 미안하단다.

저만 혼다 시빅(현대 아반떼 동급 차량) 몰고, 다른 한국 유학생들은 다 독3사 타거든요

난 차가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한국인 유학생 중에 어디서 나오는 장학금이 생명줄인 학생은 자기 밖에 없고, 나머지 한국인들은 다들 엄청나게 부잣집 애들만 와 있는 것 같단다.

아마 집안이 좀 사는 애들은 다들 그렇게 일찌감치 해외 유학을 떠났을 것이다. 한국 교육 수준이 이렇게 망가지고 있고, 쓸데없는 공부에 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대학을 들어가도 그렇게 비용-편익 분석에서 긍정적인 값이 안 나오는데, 미국 유학가서 S모 명문 대학을 나오면 전세계 어딜가건 대접받을 수 있다는 걸 부모님들이 이미 알고 계실테니까.

학창 시절에 강남 부모들 사이에는 “자식 군대 보내면 부모도 아니다”라는 표현이 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국내 대학 보내면 부모도 아니다”라는 것과 비슷한 표현이 분명히 어떤 방식으로건 변형되어 돌고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표현이 과격하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 교육이 망했고, 한국 대학이 망했으니까’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대학 입시에서 사교육비 줄여보겠다고 전두환 정권 때부터 무려 40년째 싸우고 있는데, 줄었나? 거꾸로 수포자가 더 늘었네? 교육과정을 쉽게 하면 사교육비와 수포자가 줄어든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는 걸 반복 학습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왜 못할까?

당신들이 실험에 실패하는 사이에 한국 교육은 망했고, 한국 대학은 망했다.

수학 못 배운 직원을 채용할까? 잘 배워온 직원을 채용할까?

학부 갓 졸업하던 무렵, 외국계 증권사 IBD팀들을 들어가보려고 나름대로 온갖 노력을 다 했는데, 항상 내가 원하던 자리들은 미국 아이비리그(Ivy League) 명문대를 나온 애들한테 돌아갔다. Ivy League가 아니라 IB League(외국계 증권사의 영어 표현인 ‘Investment Banking’을 줄여서 IB라고 부른다)라는 표현도 들은 적이 있었네. 왜 그러냐니까 “넌 영어 못하잖아”라고 단칼에 자르던데, 솔직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차피 미국 명문대 나온 애들이 한국 SKY, SKP 나온 애들보다 지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미국 동료들이랑 어울릴 때도 문제 없고, 회사 일이 엄청나게 고난이도의 수학, 과학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고, 굳이 S대에서 좀 똑똑하다고 하지만 영어 못하는 애들을 뽑아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그렇게 자금 지원, 사회적 자본으로 지원을 해 준 인재에게 더 많은 사회적 기회가 돌아가는 것은 단순히 영어 문제를 넘어선 시대가 됐다. 미국만 일반 공립 학교들이 수학 교육을 포기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도 이제 수학 교육을 포기한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난 이제 한국에서 SIAI 출신 아니면 ‘기술직’에 뽑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확신을 갖게 됐는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비슷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보다 더 먼저 깨달은 회사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국 대학가서 잘 배워온 인재들이 있는데, 굳이 한국 대학에서 시간 때우기 교육을 받은 인재들을 뽑아야할까?

정부가 포기한 이상, 그런데 국내 민간에서 그걸 채워넣어주려고 해 봐야 돈이 안 되니까 포기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이상, 짐을 짊어져야하는 곳은 대학 밖에 없는데, 대학 교수들이 그렇게 열정있게 학생을 챙겨줘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그저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만 해주면서 시간을 보내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고, 프로젝트가 굴러들어오는데 왜?

폭탄이 된 학생들을 짊어질 다음 타자는 기업들인데, 위의 사실을 빨리 깨닫는 기업들일수록 한국 대학 출신들에게 ‘기술직’을 맡기질 않을 것이고, 아마 못 깨닫는 기업들은 월급만 주다가 회사가 경영 상의 위기에 빠져버릴 것이다.

1700년대, 1800년대를 거치면서 독일이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을 설립했던 이유는 영국, 프랑스 같은 경쟁 국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게르만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였다. 그 시스템을 베껴간 일본이 제국대학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다. 인재를 길러내야 서구 국가들과 싸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심지어 6·25 전쟁 중에 김일성도 서울 점령 당시에 서울대 교수들을 설득해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로 임명시켰다. 교육이 국가의 근간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했던 선택들일 것이다.

대한민국 초명문대 중 한 곳인 K대 학생마저 ‘코테만 통과하면 된다’고 악을 쓰는 나라가 됐는데, 그것도 모자라 이제 심화(?)수학을 고교에서 포기하는 나라가 됐는데, 이제 정말 ‘소는 누가 키우나’? 제대로 공부하고 싶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싶으면 금수저 물고 태어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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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정부가 수포자되니 교육 빈부격차만 재생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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