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야기] 우리나라 제약업은 연구개발 중심일까 카피약 판매 중심일까? ①
한국 제약업계, 리베이트 관행에 후진국형 가격 경쟁 구도 이어져
2009년 8월 리베이트 근절 선언 후 설비투자에 자금 투입 성향 나타나
2010년말까지는 설비투자 효과 미비로 두드러진 시장 변화 없어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에 제정된 리베이트 과징금 상향 조정안에 따른 세부운영지침을 발표했다. 지난 2018년 9월 약가인하 처분을 명시한 이른바 ‘남인순법’에 이어 지난해 12월의 ‘이용호법’이 반영된 세부 지침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제도 개선을 통해 제약사와 의료진에 대한 처벌 조항을 구체화했다. 특정 약품을 구매하도록 사실상 강요하는 구조가 되는 처방전에 따라 제약사 매출액이 결정되는 이상, 제약사들은 너도나도 리베이트라는 형태로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구조에 있는 구조를 깰 수 있는 방법은 정부 개입 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 공정위의 관점이었다.
실제로 리베이트 약제 상한금액 감액, 요양급여의 적용정지 및 과징금 부과 등등 각종 절차가 세분화되었으나, 의사와 제약사 간의 리베이트 구조가 법적 처벌에 의해 얼마나 사라졌는지, 처벌의 수위가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만 있을 뿐, 제약사들의 영업구조가 개선되었거나 의료진의 처방 방식이 바뀐 사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제약 업계 – 600여개의 카피약 제조 전문 유통회사?
공정거래위원회가 리베이트에 철퇴를 가하겠다는 방침을 공표하기 직전까지 한국에서 제약업계 수위에 있던 회사는 동아제약, 광동제약 등이 있었다. 동아제약은 피로회복제로 잘 알려진 ‘박카스’, 광동제약은 기능성 음료로 알려진 ‘옥수수 수염차’가 매출액의 절반 이상이었다. 제약회사지만 실제로 약품을 제조해서 판매하기보다, 광고 홍보를 통한 기능성 음료 시장을 선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식음료 유통회사’에 가까운 매출액 구조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식음료보다 제약업에 충실한 제약회사가 대부분이었으나, 자체 신약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종근당을 비롯한 소수의 제약사에 지나지 않았고, 절대 다수의 제약사들은 해외에서 특허가 만료된 약품의 ‘카피약(Generic)’을 대량 생산해 판매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신약 개발을 위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쏟는 글로벌 최상위권 제약회사 대비 국내 제약사들은 연구보다 당장의 매출액을 만들어내는데 급급할 수 밖에 없는 영세 구조로 운영됐고,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제약 공장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국에서 1963년에 시작된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규격에 맞춘 의약품 제조나 품질관리 규칙을 한국에 적용하고자하는 시도는 수십년간 계속되어왔으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원료의약품에 대한 품질관리기준마저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약사들은 2008년 4월 GMP-약사법 시행규칙이 변경되고, 미국FDA에서 수입 약품에 대해 GMP요건을 충족시켰는지 여부를 따져 수입 허가를 내주겠다고 선언하자 다수의 제약사들이 공장에 설비투자(CAPEX)를 단행하게 된다.
리베이트 기반 가격 경쟁의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창인 가운데, 동아제약을 비롯한 제약업계 상위업체들은 GMP규정에 맞는 공장 설비를 가동하기 위해 자금 확보에 나섰으나, 금융위기 상황이라 뜻대로 진전이 되지 않았다. 당시 D모 제약사의 재무이사(CFO)와 주식 발행을 통한 자금 확보를 논의했다는 모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제약업계 전체가 발등에 불이 떨어질만한 상황인 것처럼 들었으나, 정작 자금 마련이 쉬운 회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2009년 8월부터 리베이트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강화되자, 제약사들 대부분은 그간 판매관리비에 포함시켰던 각종 리베이트 비용을 급속하게 줄이고 남은 자금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게 된다.
2009년 리베이트 규정은 리베이트 사항이 적발될시 1차 20% 가격 할인, 2차 30% 가격 할인을 강제했고, 반복될 경우 보건복지부의 보장 리스트인 ‘급여목록’에서 해당 약품을 제외한다는 강수를 뒀다. 정부 보조금 형태로 들어가는 급여 항목에서 삭제될 경우, 환자 부담금이 큰 폭으로 증가해 사실상 한국 제약 시장에서는 사형 선고나 다름 없는 처벌이 됐다.
실제로 상위 5개 제약사의 리베이트성 판관비 대 매출액 비율은 2009년 8월부터 1년 사이에 7.9%에서 5.4%로 크게 감소하게 된다. 시장 집중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C5(상위 5개 기업 집중도), HHI(Herfindahl-Hirschman Index, 시장점유율 제곱의 합에 10,000배를 곱해준 지표)는 1년 사이에 각각 39.3%에서 32.2%로, 503에서 447로 떨어졌다.
제약업계 상위권 기업들이 리베이트를 제공하기 어렵게되자 시장점유율을 잃은 것이다.
가격 경쟁에서 상품의 품질 경쟁으로
서튼(Sutton, 1991)[1]에 따르면, 상품의 품질 차이가 거의 없을 경우에는 가격 경쟁이 일반적인 시장인 반면, 품질 차이가 두드러지게 될 경우 가격에서도 큰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이 1980년대 필름업계를 비롯한 주요 산업에서 경쟁 구도 변화를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과 달리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는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서유럽 및 영미권의 최상위 제약사들이 상품 품질 경쟁을 하는 것에 대비, 개발도상국의 카피약 판매회사들은 품질보다 저가 마진으로 매출액을 최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해석으로 한국 시장을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리베이트 폐지를 위해 2009년 8월에 이어 2010년 11월에 또 한 차례 규정을 강화하는 등,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시장 개입에 나서자 제약회사들은 리베이트를 줄이고 잉여 자본을 과거 등한시했던 GMP 규정 충족에 투입하는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관점은 시장 내의 불법을 근절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리베이트가 철폐되면서 경쟁 구도가 가격 경쟁에서 상품의 품질 경쟁으로 강제로 이행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됐던 것이다.
실제로 경쟁 구도의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2009년 하반기부터 2010년까지 6개 분기동안 리베이트 감소추이는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났으나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즉각 매출액으로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제약사들은 솜방망이 처벌에 안심하고 2010년까지 물밑에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 무려 2021년까지 계속해서 처벌 조항이 바뀐 것도 그 때문이다.
[1] Sutton, John, 1991, Sunk Costs and Market Structure (M.I.T. Press, Cambridge, 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