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DS] ‘생체 전기’로 읽고 쓰는 세포의 기억, “살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인지적 상태”

식물, 슬라임 곰팡이 등 뇌가 없는 생명체에서도 지능의 흔적 발견
세포가 서로 협력하여 '생체 전기'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지능이 발현돼
레빈 교수의 연구는 인지의 진화와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송두리째 바꿀 전망

[해외DS]는 해외 유수의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저희 데이터 사이언스 경영 연구소 (GIAI R&D Korea)에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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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cientific American

쉼표처럼 생긴 편형동물인 플라나리아는 전 세계 호수와 연못의 진흙탕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플라나리아의 머리에는 뇌로 보이는 미세한 구조가 있고, 두 개의 눈동자는 서로 가까이 붙어 있다. 이 벌레는 바닥에 깔려 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완벽한 재생이 가능한 반전이 있는 동물이다. 플라나리아를 반으로 찢으면 머리는 새 꼬리를 생성하고, 꼬리는 새 머리를 자라게 한다. 일주일이 지나면 두 마리의 건강한 플라나리아가 생성된다.

뇌가 없어도 ‘기억’을 유지한 플라나리아, 뇌 ‘밖’에서도 발견된 지능

미국 터프츠대학의 생물학자 마이클 레빈(Michael Levin)은 플라나리아의 꼬리 부분에 특히 흥미를 느꼈다. 그는 평소 단일 세포로부터 신체가 발달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으며, 생물의 지능이 뇌 바깥에 있다는 의심을 하는 학자다. 그런 그에게 플라나리아는 완벽한 실험 대상이었다. 머리가 완전히 잘린 꼬리 조각으로부터 뇌가 있는 머리가 재생되는 일은 그 반대의 경우와는 의미하는 바가 분명 달랐기 때문이다. 기존의 연구 결과와 믿음은 뇌를 중심으로 재생이 진행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도 관측 가능하므로 그의 의심을 뒷받침하는 대상을 만난 것이다.

자연 상태의 플라나리아는 거칠고 노출된 환경보다 매끄럽고 보호된 환경을 더 선호한다. 예를 들어 바닥이 울퉁불퉁한 접시에 플라나리아를 넣으면 테두리에 모여들 것이다. 하지만 레빈 교수는 약 10년 전 실험실에서 일부 플라나리아에게 울퉁불퉁한 접시 한가운데에 간 퓌레를 떨어뜨려 맛있는 보상을 기대하도록 훈련했다. 그 결과, 플라나리아는 곧 거친 바닥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간식을 얻기 위해 울퉁불퉁한 바닥을 열심히 유영했다. 그는 대조군도 같은 보상으로 매끄러운 접시에서 훈련했다. 그런 다음 모든 플라나리아의 머리를 잘라냈다.

레빈 교수는 머리는 버리고 꼬리가 있는 부분에서 새 머리가 자라날 때까지 2주 동안 기다렸다. 플라나리아가 재생된 다음 그는 울퉁불퉁한 접시에 모든 플로나리아를 넣고 중앙에 퓌레를 떨어뜨렸다. 그 결과, 매끄러운 접시에 살았던 플라나리아는 움직이기를 꺼렸지만, 거친 접시에서 살았던 꼬리에서 재생된 플라나리아는 먹이를 찾는 법을 더 빨리 배웠다. 뇌를 완전히 잃었음에도 실험집단의 플라나리아는 간 보상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가, 즉 뇌가 없는 상태에서 보상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위의 실험은 뉴런과 같은 고도로 전문화된 뇌세포뿐만 아니라 일반 세포도 정보를 저장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레빈 교수의 실험에서 일반 세포가 전기장의 미묘한 변화를 일종의 기억으로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발견으로 레빈 교수는 ‘기저 인지'(basal cognition)라는 새로운 분야를 선도했으며, 현재 급성장하고 있는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학습, 기억, 문제 해결과 같은 지능의 특징을 뇌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인간의 예외주의’에 대한 도전, 뇌 중심적 지능에서 신체 결합적 지능으로

최근까지 과학자 대다수는 인지 능력이 5억 년 전 최초의 뇌와 함께 나타났다고 믿었다. 복잡한 뉴런 클러스터가 없던 시절의 행동은 일종의 반사 작용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레빈과 다른 여러 연구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레빈은 뇌의 놀라운 기능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일반 세포와 뇌의 차이를 종류가 아닌 정도의 차이로 바라봤다. 그는 세포가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협력하기 시작하면서 인지 능력이 진화한 후, 동물이 더 빨리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도록 뇌로 진화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러한 입장은 버몬트대학교의 형태·진화·인지 연구소를 운영하며 레빈과 자주 협력하는 로봇공학자 조쉬 봉가드(Josh Bongard)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두뇌는 대자연의 가장 최근 발명품 중 하나이며, 가장 늦게 나온 것”이라고 말한 봉가드 교수는 고도로 지능적인 기계를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간의 ‘뇌 중심적 지능’ 모델에서 벗어나, 육체로부터 형성되는 ‘신체 중심적 지능’의 결합으로 인지 능력을 해석하는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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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전압을 바꿔 영구적으로 머리를 재생하게 한 플라나리아의 모습/사진=Scientific American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이 아닌 동물은 고통이나 다른 감정을 경험할 수 없다고 믿었다. 마음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2018년에 ‘기저 인지’라는 용어를 만든 호주의 애들레이드대학교의 인문사회과학부 파멜라 리옹(Pamela Lyon) 교수는 인간의 지능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운명적인 예외주의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인간은 동물의 중심이 아니며, 또 다른 동물 중 하나일뿐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한편 유인원, 개, 돌고래, 까마귀, 심지어 곤충까지 인간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영리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2022년 행동생태학자 라스 치트카(Lars Chittka)는 저서 ‘벌의 마음’에서 꿀벌이 수화를 사용하고,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멀리 떨어진 꽃의 위치를 기억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혔다. 게다가 꿀벌은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며, 꽃 속에 숨어 있는 거미에게 물리는 등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통해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식물의 환경 적응과 미래 계획, 뇌가 없어도 지능의 흔적 발견돼

물론 꿀벌은 실제 뇌를 가진 동물이기 때문에 놀랍지 않은 결과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뇌가 없는 식물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지적인 행동들이 관찰됐다. 식물 지능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한 피렌체대학교의 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Stefano Mancuso)는 “뉴런은 기적의 세포가 아니다”라며, “뉴런은 전기 신호를 생성하는 일반적인 세포고, 식물에서는 거의 모든 세포가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봉선화(touch-me-not plants)의 경우, 털로 뒤덮인 잎에 자극이 가해지면 잎이 접히거나 시드는 방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호주의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학교와 이탈리아 피렌체대학교의 합동 연구팀이 하루 종일 봉선화를 해치지 않고 자극을 가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조건을 부여하자, 해당 봉선화는 자극을 무시하는 방법을 금방 터득했다. 심지어 해당 식물을 한 달 동안 내버려두었다가 다시 실험했을 때, 식물이 그 경험을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파리지옥(venus flytraps)의 경우, 덫에 달린 감각털 중 두 개를 연달아 자극해야 닫히고, 세 번 더 자극하면 닫힌 덫에 소화액을 쏟아내는 등 수를 세는 기능을 가졌다. 식물의 이러한 반응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전기 신호로 매개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식물은 놀랍게도 주변 환경을 잘 감지 한다. 식물들도 마취 가스에 의해 기절할 수 있는데, 마치 의식이 없는 것처럼 반응을 멈춘다. 또한 자신의 일부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에 의해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식물은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물이 있는 방향으로 자라고, 벌의 날갯소리를 감지해 꿀을 준비한다. 또한 해충이 자신을 해할 때를 알아채고 이에 대응하여 독한 화학물질도 만들어 낸다. 과학자들이 유채과 식물에 ‘애벌레를 잡아먹는 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겨자유를 잎에 쏟아부은 실험 결과도 있었다.

이렇듯 식물은 자신의 형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주변의 광경, 소리, 냄새를 바탕으로 미래의 성장을 계획하며, 단순한 공식으로 요약할 수 없는 방식으로 미래의 자원과 위험이 어디에 있을지에 대한 복잡한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스페인 무르시아대학의 미니멀인텔리전스연구소 소장이자 ‘플랜타 사피엔스’의 저자인 파코 칼보(Paco Calvo)는 “식물은 생존하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방대한 정보를 통합해야 한다. 식물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고 식물의 인지 능력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단세포마저도?”, 슬라임 곰팡이의 분명한 학습·기억 능력

식물이 천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식물이 제한된 조건 내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그 정보를 사용하여 필요한 것을 얻어 내는 지능의 대표적인 요소를 보여줬기 때문에 놀라운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일부 사람들은 식물은 두뇌가 없어도 높은 복잡성과 수조 개의 세포로 이뤄진 특별한 사례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단세포 생물에 대해서도 유사한 인지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세포 생물은 전통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생각이 없는’ 생물로 분류해 왔다. 아메바마저 생각하는 게 발견되면, 인간은 인지에 대한 모든 종류의 가정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사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단세포도 생각한다는 증거가 매일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슬라임 곰팡이(slime mold, 점균류)를 예로 들어 보자. 양탄자 크기만 한 슬라임 곰팡이는 수많은 핵을 가진 단일 세포며, 신경계는 없지만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 일본과 헝가리의 연구진이 미로의 한쪽 끝에 슬라임 곰팡이를 놓고 다른 쪽 끝에 귀리 조각 더미를 놓았을 때, 슬라임 곰팡이는 맛있는 자원을 찾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경로를 탐색했다. 하지만 귀리 조각을 발견한 후에는 모든 막다른 길에서 물러나 귀리로 이어지는 길로 몸을 집중하여 미로를 통과할 수 있는 네 가지 해결책 중 매번 최단 경로를 선택해 냈다. 이 실험에서 영감을 받은 연구진이 도쿄의 인구 구조를 나타내는 위치와 양으로 귀리 조각을 점균의 주변에 쌓아놓자, 점균은 자신을 변형시켜 도쿄의 지하철망 지도를 완성했다.

이마저도 단일 세포에 내제된 단순한 알고리즘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다른 실험에서도 슬라임 공팡이가 학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오드리 뒤수투어(Audrey Dussutour)가 카페인(슬라임 곰팡이가 싫어하는 성분)이 든 오트밀 접시를 다리 끝에 놓아두자, 슬라임 곰팡이는 거미 혐오증이 있는 사람이 타란툴라를 지나치려는 것처럼 며칠 동안 다리를 건너는 방법을 찾느라 꼼짝도 하지 못했다. 결국 점균은 배가 고파서 카페인이 묻은 다리를 건너 맛있는 오트밀을 찾아 먹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 혐오감을 느꼈던 음식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모두 잃었다. 점균은 한계를 극복하고 그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었고, 1년 동안 정지 상태에 놓인 후에도 그 기억을 유지했다.

세포는 ‘생체 전기’ 트랜지스터, 전압의 변화가 빚어낸 세포의 지능

다시 플라나리아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뇌가 없는 생명체가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은 어디에 저장돼 있을까? 그렇다면 정신은 어디에 있을까?

기억에 대한 정통적인 견해는 기억이 뇌의 뉴런 사이의 안정적인 시냅스 연결 네트워크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레빈 교수는 “이 견해에 분명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대학교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글랜즈먼(David Glanzman)의 연구실에서는 감전된 갯민숭달팽이의 뇌에서 RNA를 추출하여 새로운 갯민숭달팽이의 뇌에 주입함으로써, ‘감전의 기억’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새로운 갯민숭달팽이는 전기 충격이 가해졌을 때 반동하는 것을 ‘기억’하게 됐다. 이처럼 RNA가 기억 저장 매체가 될 수 있다면 뉴런뿐만 아니라 모든 세포가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포 집합이 경험을 통합하는 메커니즘은 무궁무진하다. 모든 세포는 세포 골격과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에 조정 가능한 다양한 형태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를 다른 형태로 설정하여 행동에 반영할 수 있다. 목이 잘린 플라나리아의 경우, 과학자들은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남은 몸통이 세포 내부에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가 몸이 재건될 때 나머지 몸통에 대한 정보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접시의 거친 바닥에 대한 신경 반응의 기본값이 이미 변경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빈 교수는 훨씬 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포 내부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관통하는 ‘생체 전기’를 통해 상호 작용하는 상태가 저장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리하여 레빈 교수는 세포 집단이 형태 형성 또는 신체 형성 과정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확한 위치에 팔다리와 장기를 만들어 내는 미스테리의 해답이 생체 전기에 있음을 그는 직감했다.

신체에 전기가 흐른다는 사실은 수 세기 동안 알려져 왔지만, 최근까지 생물학자 대부분은 생체 전기가 주로 신호를 전달하는 데 사용된다고 생각했다. 개구리의 신경계에 전류를 쏘면 개구리가 다리를 차게 되는 일종의 단순한 작용으로 바라봤다. 뉴런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생체 전기를 사용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것이 신체가 아닌 뇌의 특기라고 믿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소수의 연구자들은 다른 유형의 세포도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기 위해 생체 전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레빈은 이 색다른 연구에 몰두하면서 컴퓨터과학에 대한 자신의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인지적 도약을 이뤘다. 그는 학창 시절 코드를 작성하며 컴퓨터가 전기를 사용하여 트랜지스터로 0과 1의 값을 이산적으로 전환하고, 모든 컴퓨터 프로그램이 이러한 이진법을 기반으로 구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부 시절, 그는 인체의 모든 세포막에 ‘전압 게이트’처럼 다양한 수준의 전류가 통과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세포막이 트랜지스터처럼 작동할 수 있으며 세포도 같은 전기 기반 정보 처리 과정을 통해 활동을 조정할 수 있음을 즉시 깨달았다.

전압 조작의 입증된 잠재력, “인지의 진화와 재생 의학에 새로운 지평 열어”

전압 변화로 세포가 서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레빈 교수는 자신의 플라나리아 농장으로 눈을 돌렸다. 2000년대 들어 그는 플라나리아의 어느 지점에서든 전압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고, 머리와 꼬리 끝에서 서로 다른 전압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약물을 사용해 꼬리의 전압을 머리의 전압으로 바꿨다. 그 다음 둘로 자르자 꼬리가 잘려 나간 머리 부분에서 꼬리 대신 두 번째 머리가 자랐다. 이어서 두 머리로 재생된 플라나리아를 반으로 다시 자르자 또다시 머리만 생성됐다. 실험 대상은 정상적인 플라나리아와 유전적으로 동일했지만, 한 번의 전압 변화로 인해 영구적으로 두 개의 머리가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레빈은 생체 전기가 체형과 성장을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위해 알에서 올챙이, 그리고 성체로 빠르게 변태하는 일반적인 실험동물인 아프리카발톱개구리로도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올챙이의 특정 부위에 특정 전압을 유도함으로써 올챙이의 어느 부위에서나 기능적인 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상처에 24시간 동안 적절한 생체 전기 신호를 가하는 것만으로도 기능적인 다리의 재생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는 서브루틴 호출이다”고 그는 말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서브루틴 호출은 기계에 일련의 하위 수준의 기계적 동작을 자동으로 시작하도록 지시하는 일종의 축약형 코드다. 추상화의 정도가 높은 하이 레벨 프로그래밍 언어의 장점인데, 기계 속을 일일이 변경하지 않고도 수십억 개의 회로를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다. 올챙이 눈을 만들 때도 같은 메커니즘이 작용했다. 아무도 렌즈, 망막 및 기타 눈의 모든 부분을 미세하게 조정하지 않았는데도 기능적인 눈이 생성됐다. 생체 전기 수준에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빈 교수는 “말 그대로 인지적 접착제”라며, “세포가 그룹 단위로 함께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레빈 교수는 이 발견이 인지의 진화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의학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체 전기를 통해 세포의 행동을 조정하는 ‘세포의 말하기’를 배우면 신체의 일부가 나머지 신체와 협력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질병인 암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상 세포는 간세포, 피부 세포 등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면서 집단의 일부로 기능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돼 있다. 그러나 암세포는 본연의 일을 멈추고 주변을 낯선 환경처럼 여기며 영양분을 구하고, 복제하고,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다른 세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즉 암세포는 독립적인 유기체처럼 행동한다.

왜 이들은 집단 정체성을 잃게 됐을까? 레빈 교수는 부분적으로는 세포의 정신적 융합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의 실패를 원인으로 꼽았다. 스트레스, 화학물질, 유전적 돌연변이 등이 모두 이러한 소통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의 연구팀은 건강한 조직에 ‘나쁜’ 생체 전기 패턴을 강요함으로써 개구리에서 종양을 유도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적절한 생체 전기 패턴을 다시 적용하여 종양을 소멸시킴으로써 암과 신체 사이의 통신을 다시 회복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생체 전기 치료가 인간의 암 치료에 적용되어 종양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또한 과학자들이 세포가 올바른 패턴으로 성장하도록 지시하는 생체 전기 코드를 해독한다면, 신장이나 심장과 같은 고장난 장기를 재생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레빈 교수는 올챙이 실험을 통해 선천적으로 심각한 뇌 손상을 입은 동물에 생체 전기를 주입한 후, 정상적인 뇌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피카소 올챙이’의 정변, 지능은 문제 해결형 세포 집단의 산물

레빈 교수의 연구는 암 치료, 사지 재생, 상처 치유와 같이 항상 가시적인 응용 분야가 있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그는 자신의 논문과 강연에 철학적 관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이전엔 이야기할 시기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2019년 ‘자아의 계산적 경계'(The Computational Boundary of a Self)라는 제목의 유명한 논문에서 그는 실험 결과를 활용하여 우리가 모두 고도로 유능한 소규모의 문제 해결 에이전트로 구성된 지성 집약체라고 주장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레빈 교수는 발톱 개구리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개구리는 올챙이에서 성체로 변하는 과정에서 얼굴이 대대적으로 개조되는데, 머리의 모양이 바뀌고 눈·입·콧구멍이 모두 새로운 위치로 이동한다. 이러한 재배치는 유전자에 의해 수행되는 단순한 기계적 알고리즘에 따라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빈 교수는 개구리 배아의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전기 신호로 뒤섞어 눈·입·콧구멍이 엉뚱한 곳에 있는 올챙이를 만들었다. 레빈은 이 올챙이들을 ‘피카소 올챙이’라고 불렀고, 실제로 올챙이들은 피카소처럼 생겼다.

리모델링이 미리 프로그래밍이 돼 있었다면 최종 개구리 얼굴은 올챙이처럼 엉망이어야 했다. 개구리의 과거 진화 과정에서 이런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개구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는 동안 눈과 입이 올바른 배열을 찾아갔다. 세포들은 추상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한 것이다. 레빈은 “이것이 바로 행동하는 지능”이라며 “변화하는 상황에 직면하여 새로운 단계를 수행함으로써 특정 목표에 도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레빈의 연구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분야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분야로, 이들은 기저 인지를 활용해 인공지능의 몇 가지 핵심적인 약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인공지능은 언어를 조작하거나 규칙이 잘 정의된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는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만,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셰익스피어 스타일의 소네트를 읊을 수는 있지만, 걷는 방법이나 공이 언덕 아래로 어떻게 굴러갈지 예측해 보라고 하면 전혀 알지 못한다.

‘구체화된 인지‘, AI 로봇이 스스로 세상과 상호작용해야

봉가드 교수는 인공지능의 약점이 어떤 의미에서 너무 머리가 좋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공지능과 게임을 해보면 어디에 균열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균열은 상식이나 원인과 결과와 같은 것들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왜 신체가 필요한지 알려준다. 신체가 있으면 결과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원인과 결과에 대해 능동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AI 시스템은 세상과 부딪히는 방식으로 세상을 배울 수 없는 상태다.”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대해 학습하는 로봇을 설계하려는 ‘구체화된 인지’ 운동의 선봉에 봉가드 교수가 서 있다. 그는 구체화된 인지가 작동하는 실제 예를 보려면 “지금 부엌을 망가뜨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한 살 반짜리 아이만 봐도 알 수 있다”라며, “그게 바로 유아가 하는 일이다. 문자 그대로 또는 은유적으로 세상을 찌른 다음 세상이 어떻게 반발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거침없이 경험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봉가드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AI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로봇 공학용 마인크래프트’라고 부르는 레고 같은 큐브로 로봇을 설계한다. 이 큐브는 블록 모양을 한 근육처럼 작용하여 로봇이 애벌레처럼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해준다. AI가 설계한 로봇은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고, 큐브를 더하고 빼면서 효율적인 움직임에 방해가 되는 디자인을 수정하고, 이동성이 뛰어난 형태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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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cientific American

2020년에 그의 AI 로봇은 걷는 방법을 스스로 학습했다. 이 성과는 레빈 교수의 연구실에도 영감을 줬는데, 아프리카발톱개구리에서 살아있는 피부 줄기세포를 떼어내어 물속에서 집어넣으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했다. 세포들은 참깨만 한 크기의 덩어리로 융합되어 하나의 단위로 작용했다. 피부 세포에는 일반적으로 성체 개구리의 표면에 보호 점액층을 유지하는 작은 털인 섬모가 있지만, 이 생명체는 섬모를 노처럼 사용하여 새로운 환경(물)을 헤쳐 나갔다. 개구리의 피부 조직들은 미로를 헤쳐 나갔고, 다쳤을 때 상처를 봉합하기도 했다. 생물학적으로 좁은 공간에 갇혀 살던 개구리들은 새로운 존재가 되어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동일한 게놈을 공유했지만 ‘개구리’는 분명 이전의 개구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세포가 원래 ‘제노푸스’ 개구리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레빈과 봉가드는 이들에게 ‘제노봇'(xenobots)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2023년에 그들은 인간의 폐 세포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거뒀다. 인간의 세포 덩어리들은 스스로 조립되어 특정한 방식으로 유영했다. 터프츠 연구팀은 이를 ‘앤트로봇'(anthrobots)이라고 명명했다.

인식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 ‘진화’에 담긴 지능의 眞 의의

레빈에게 제노봇과 앤트로봇은 실제 세계에서 인지가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또 다른 신호로 작용했다. “일반적으로 어떤 생명체에 대해 질문할 때 ‘왜 그런 모양을 하고 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할까?’라고 묻는다. 물론 정형화된 대답은 진화다. 오랜 세월 동안 선택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제노봇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좋은 제노봇이 되어야 한다는 환경적 압박도 없었다. 그렇다면 왜 세상에 나온 지 24시간도 안 돼서 생존에 유리한 효율적인 행동을 보여줬을까? 나는 진화가 특정 문제에 대한 특정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화는 ‘문제 해결형’ 기계를 만들어 낸다.”

물론 제노봇과 앤트로봇의 능력은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특정 목표와 필요를 가진 개별 단위가 모여 협력할 때 지능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창이 됐다. 레빈은 혁신을 향한 이러한 타고난 성향이 진화의 원동력 중 하나이며, 찰스 다윈이 말한 것처럼 세상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끝없는 상태로 이끌고 있다고 봤다. “우리는 아직 이에 대한 좋은 어휘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이 모든 것의 미래가 화학적인 이야기보다는 정신의학적 이야기처럼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 우리는 압박감과 추억, 매력에 대한 미적분을 계산하게 될 것이다.”

레빈은 그의 비전이 슬라임이든 실리콘이든 상관없이 우리 자신과는 다른 마음을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했다. 애들레이드의 리옹은 이 친밀감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기저 인식의 진정한 가능성이라고 확신했다. “우리는 인간을 창조의 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풀잎이나 위 속의 박테리아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즉 우리가 정말, 정말 깊은 차원에서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전체 패러다임이 바뀐다.”

리옹은 인간이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기본적으로 ‘인지적 상태’라고 정의했다. 모든 세포는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평가하고,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배제할지 결정하고, 다음 단계를 계획한다. “인지는 진화의 후반부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인지다”라며 “살아있는 모든 것은 이 놀라운 일을 하고 있다”고 리옹은 말했다.

영어 원문 기사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