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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만 3년간 SIAI에 받은 한국인 학생들 대부분이 졸업하거나,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공지한대로 올해 3월에 SIAI 소유권이 한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가고, 내 의무는
- 그간 받은 한국 학생들에게 유종의 미를 남겨주는 것
- 교육 자료를 영어로 재구성해 향후 10년간 쓸 수 있도록 남겨주는 것
만 남았다.
한국에서 교육 못 받아 아쉬운 학생들이 있으면 올해까지만 더 챙겨주는 건 어떠냐고 요청을 받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안 하고 싶다. 지쳤다.
그간 한국에서 받았던 학생들 중 9명, 논문 쓰고 있는 3명, 그리고 논문 가능성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는 5~6명은 교육이 대성공이었다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반면, 논문 쓰는 걸 포기한 40~50명의 학생들이 얼마나 교육의 효과를 봤을지 잘 모르겠다.
다만 너무 나쁘게 볼 것은 아닌게, 최소한 그 학생들은 완성된 논문을 못 썼을 뿐, 눈을 뜨고 있는 한국인이었다. 논문을 못 써서 좌절해 있고, 가끔 여기를 눈팅하며 괴로워하고 있을텐데, 국내 초·중·고·대학 학부까지 합계 16년의 교육이 당신들을 옭아맨 탓이지, 당신들이 무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 너무 자책하지 말기 바란다.
대성공 그룹에 속한 어느 한 학생은 졸업장을 액자에 넣어서 집안에, 회사에 보여주고 있다고 하던데, 얼마나 자랑스러우면 저럴까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걸 구경만하고 씁쓸해하는 학생들의 아쉬움도 공감이 되어서, 가르친 사람 입장에서 감정이 복잡하다. 논문 쓰는 걸 포기하고 잠적(?)한 많은 학생들도 졸업장을 받아갈 수 있도록, 국내 대학들처럼 논문 안 쓰고 MSc 과정 수업 6개만 더 듣고 졸업하는 걸 (매우매우) 어렵게 스위스 학위과정 심사위원들에게 허가까지 받아왔는데, 다들 자존심이 있어서인지 그렇게는 못하겠나보다.
아니, 고급 교육의 가치를 봤기 때문에, 치사한 꼼수(?) 졸업 대신 어떻게든 석사 논문을 쓰고 당당하게 졸업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대로 포기하면 SIAI 다녔다, 글로벌 수준급 교육을 겪어보니 어떻더라고 말도 못하고 평생의 흑역사로만 남을텐데... 가르친 사람 입장에서 많이 미안하다.

SIAI Korea를 정리하면서
지난 2021년 초, 스위스 몇몇 대학들과 제휴를 통해 한국 학생들에게 AI/Data Science의 진짜 제대로 된 대학원 과정을 열어주고 싶다, 당신들이 원하면 영어권 교육도 해 줄 수 있으니 내가 한국 학생들 대상으로 학위 과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던 시절, 많은 부분 협의가 되어 제휴 계약서 서명까지 했다가 취소했던 대학교의 학장이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 Asian students have shown really bad performance in dissertations / essays. You'd better go to the US not Europe
아시아 학생들이 논문을 쓰질 못해서 졸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논문 요건이 없는 미국 MBA를 찾아가지, 유럽 대학을 찾지 마라는 충고였다.
어차피 우리 학위 과정에서 끊임없이 논문을 다루니까 괜찮을 것이다, 최소한 너네도 영어권 교육을 할려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교육을 해야하지 않겠냐, 한국에서 수익성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된 수익성은 영어권에서 나올 것이다며 설득을 했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이제 그 분의 아시아 학생들에 대한 불만을 증명할 수 있는 학생들 기록도 쌓였고, 무엇보다 왜 아시아 학생들이 논문을 못 쓰는지 알게 됐다.
학생들의 무한한 잠재력, 그걸 못 키워주는 아시아 교육
잠깐 방향을 바꿔서, 이번에 매우 좋은 논문을 쓰고 졸업을 앞둔 학생 이야기를 해 보자.
한 학생은 국내 모 반도체 대기업에 재직 중인데, 회사에서 'AI엔지니어'들 수십 명과 H100 같은 비싼 그래픽 카드까지 동원해 만든 '딥러닝' 모델이 못 풀어준 회사의 숙제 중 하나를 SIAI에서 배운 지식을 응용한 Data Science 모델로 풀어냈다. 논문을 외부에 발표하려고 특허도 내고 있고, 인사 팀에서 어떤 방식으로건 '인재'로 분류해 줄 것이다. 자신감이 넘치는지 본인은 회사 지원을 받아서 박사 과정에 들어갈려고 하더라.
SIAI 비관계자들이 무조건 MSc 아니며 안 간다고 하거나, MBA는 시간 낭비라고 하던데, 이 학생은 학부 2-3학년 수준인 MBA에서도 Technical Track보다 수학 수준을 더 낮춘 Business Track을 했다. 논문 1등상 후보 중 한 명인데, 나머지 1명의 후보도 Business Track으로 졸업하는 MBA 학생이다. 수학이 아니라 사고력이 핵심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운 학생들인 것이다.
이 학생의 포인트 2가지를 정리해 보고 싶은데,
- 통계학과처럼 이론 수업이 아니라, SIAI 교육처럼 응용으로 문제를 풀어내면서 곁다리로 계산통계학(AI의 학문적인 이름)을 공부하는 게 더 효과적인 교육인 것 같다
- (회사 지원으로 박사 과정을 가려고 하는데), 지원이 국내 대학 밖에 안 되니 옵션이 별로 없는 와중에 혹시 국내 대학에서 SIAI처럼 논문을 지도해 줄 수 있는 교수진을 찾을 수 있을까?
였는데, 1번 코멘트는 나 역시도 첫번째 석사의 마지막 시험 기간 중에나 겨우 깨달았었다.
고급 논문을 소화해서 시험 문제로 만들고, 회사 이야기까지 가미해서 만든 시험 문제를 풀면,
- 논문을 매우 분석적으로 읽는 효과도 나고
- 논문이 현장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도 하고
- 응용력도 기르는 훈련도 하게 되어서
교육의 효과가 매우 뛰어나더란다. 특히 그런 문제를 풀면서 필요한 수학, 통계학을 살짝살짝 얻어가는 구조가, 고급 수학 교과서를 열어보고 이론만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더라.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 학생은 우리 SIAI의 첫 학기, 첫 수업인 'STA501: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 모델'을 학부 시절에 듣고 다른 통계학 수업을 들었더라면 학부 때부터 통계학을 좋아하게 됐을 것 같단다. 국내 대학들이 같은 이름의 수업들을 단순히 엑셀로 그래프 그려놓고 '코딩 없는' 수업이라며 문과 학생들 대상으로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교육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SIAI의 AI MBA 과정 = 현장 중심 MBA 교육 + 쉬운 수학 + 핵심 AI 교육
학위 과정 이름이 MBA인 탓에 오해를 많이 받았다. MIT처럼 MSc Data Analytics 라는 이름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케이스 스터디라고 이름 붙여놓은 논문 해부 수업들이 전체의 1/4에 해당하는데다, 나머지 수업들도 가상의 현장에서 회사가 직면한 문제를 풀어내는 교육인만큼, MBA AI가 충분히 적절한 이름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어렵지 않은 수학으로 AI/Data Science를 가르치는데, 현장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그래서 기업에서 딱 좋아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저 학생의 2번 코멘트에 대해서는 나도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저 학생은 주제가 반도체 관련 제조업일텐데, 나는 저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저 학생의 논문에 담긴 반도체 업계 현장 상황을 이해할려고 노력을 해 줬지만, 국내 대학에 반도체 관련 전공을 가지 않는 이상, 어느 교수가 그렇게 따로 공부해가면서 학생을 챙겨줄까 싶기도 하고, 반도체 관련 전공으로 가면 우리 SIAI처럼 응용력 혹은 사고력으로 표현되는 교육 방식으로 지도해 줄 수 있는 교수진이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SIAI 설립 시점이었던 2021년 초까지 국내 주요 공대 교수진들이 가르친다는 교육 자료들을 봤을 때, 그 분들의 논문이나 길러낸 제자들을 봤을 때, 그런 훈련이 가능한 연구실을 운영하는 곳은 없었다. 내가 모든 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SIAI 방식, 혹은 글로벌 명문대 방식의 사고력 중심 교육을 하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 교과서에 있는 지식만 가르치는, 수박 겉핡기 교육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아시아 대학들의 교육이 대부분 입시를 위해 단기간 잠을 아껴서 암기로 해결하는 교육, 점수 잘 받기에 특화된 교육에 불과한 탓에, 학생들의 잠재력을 현실화 시키기 위해 실제 현장의 문제를 체계화하는 훈련을 아예 못 시켜주기 때문이다. 수학과 통계학이 천재들이 만든 무시무시한 학문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풀다보니 성장한 학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아시아식 3류 교육에 '뇌가 절여져' 있기 때문에, 아시아 학생들이 논문을 못 쓰는 것이다.
(참고로 요즘 중국 최상위권 대학들의 교육을 보면 그들은 '탈'아시아 교육으로 미국, 유럽을 곧 따라잡을 것 같아 보인다. 중국산이면 폭탄 말고는 다 터진다던 나라였는데, 요즘 인재 교육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이제 우리나라는 중국에 모든 기술을 다 따라잡힐 것이다...)
졸업장이 뿌듯한 학생들, 졸업장이 부러운 학생들
졸업한 학생 하나가 졸업장을 액자에 넣어 집에 현판처럼 걸어놨다가, 회사에도 갖고가서 자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졸업장 수여식 날 보면, 졸업 못하는 학생들이 졸업하는 학생들을 엄청 부러워하는 게 눈에 보인다. 졸업장 들고 가면서 우는 학생도 본 적이 있다.
제대로 공부했다는 자부심이 가득차니 저런 반응들이 나올 것이고, 그런 훈련을 마쳤다는 자격증이 부럽겠지.
그 학생들 중 일부는 후배들 논문 수업에 놀러와서 이런저런 코멘트를 해 준다. 가끔 웃으면서 내년부터는 저 대신 MBA 학생들 논문 강의 해 주세요라고 농담했었는데, 그 학생들이 영어 실력만 되면 SIAI 경영진에 추천을 해 줄 생각도 있다. 충분히 해 낼 수 있겠다 싶은 분들도 많이 생겼으니까.
그 학생들은 이제 글로벌 상위권 저널들이 어떤 논문을 원하는지, 글로벌 교육에서 강조하는 사고력이 뭔지에 대해서 매우 정확한 이해도를 갖춘 학생들이 됐다.
위에 언급한 논문 1등상 후보에 오른 학생들처럼 기업 다니면서 꾸준히 논문 레코드를 쌓고 나면, 몇 년 후에는 대학 교수로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불가능한 소리라고? 국내 대학들 중에 글로벌 저널에 논문 낼 수 있는 A급 교수진을 갖춘 학교는 서울 시내 몇몇 주요 대학에 불과하다. 그런 교수가 있어야 교육부 지원금을 더 받는데, 당연히 대학들이 열심히 그런 교수 후보들을 찾지 않을까?
학부가 한국에서 별로 인정 못 받는 곳인 학생들도 많은데, 내 학부시절 친구들한테 그 학생들 사례를 설명해주니까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
너 덕분에 걔네들은 인생 역전했네?
딱히 내 덕분이라고 생각하진 않고, SIAI가 한국에서 각종 오해, 의혹, 거짓 왜곡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 믿고 와 준 학생들의 열정과, 힘든 교육 과정에도 도망가지 않고 꿋꿋이 어려움을 이겨낸 학생들의 도전 의식이 '인생 역전'의 발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학생들의 도약대가 됐을 뿐이다.

한국 학생들 구제법? 선수 학습 과정을 운영하라고?
다들 그렇게 성공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성공 사례는 전체의 30%가 되지 않는다.
수업에서 F 학점을 받고, 논문을 못 쓰는 그런 실패 사례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냥 눈을 질끈 감고 모든 학생에게 B학점 이상을 주고, 논문을 못 써도 무조건 학위증을 줄까? 국내 대학들처럼?
국내 대학 교육이 얼마나 추락했으면 국내 1등 대학이라는 내 모교가 이제 석사 과정은 졸업 논문을 안 써도 졸업시켜 준단다. 한국 대학 교육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근데,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기 학위를 주는 교육은 못 하겠다. 차라리 학생이 안 와서 학교를 폐교시킬련다.
이런 논문 써도 졸업시켜주나요? 헤헤헤
같은 치사한 학생과 엮이고 싶지 않다.
위의 긴 설명에서 언급한대로, 한국 학생들이 졸업을 못하는 이유는 '사고력 훈련'을 평생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걸 SIAI에 입학해서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뚝딱 습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SIAI 경영권을 넘겨 받는 분들이 한국 학생을 어떻게 좀 더 받아 보자며 나한테 몇 가지 요청을 했는데, 아래의 2가지로 정리됐다.
- 입학 전 선수학습과정 운영
- 한국에서 추가 논문 지도
SIAI 경영권을 넘겨주는 내 입장에서 교육 자료만 더 만들어주고는 손을 떼고 싶은데, 그 분들은 지난 몇 년간 내가 길을 닦아놨다 싶은지 한국 시장에 미련이 남나보다.
틀린 분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대 6개월, 아니 3개월 정도만이라도 교육을 시켜 놓으면 학기 시작해서 뒤쳐질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학생 생존 확률을 높이고자 2년으로 늘려놨던 과정을 1년으로 줄이자고 하는 판국이니, 한국 직장인들이 SIAI 교육을 따라올려면 더더욱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한다.
내가 아시아의 암기식 교육의 병폐를 잘 아는 사람이니 추가 논문 지도 이야기도 나온 것 같은데, 무사히 논문을 쓴 학생이 15명 남짓에 불과함에도 아시아 (같은 논문 못 쓰는) 시장에서 이 정도 수준의 석사 논문을 만들어 냈다는데 굉장히 고무적으로 평가하더라.
SIAI 학생들 졸업 논문 심사를 지난 2년간 해 주신 KAIST 기술경영 전공의 최호용 교수님도
한국에서 이 수준의 논문 쓰는 석사생들을, 박사도 아니고, 심지어 직장인들로 이걸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이야?
라는 평가를 매년 주신다.
우리 학생들은 내가 논문 지도 시간에 지적하는 내용, 코멘트 방식이 최 교수님과 너무 닮았다면서, 자기네들도 교수님과 내 스타일로 비슷한 지적을 할 수 있을 때마다 뿌듯해하는 게 보인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을 얻는 거겠지.
처음 설립할 때만해도 그 유럽 분들이 3개월, 6개월 정도 논문 Draft 평가만 해 주면 알아서들 논문을 쓸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럽에서는 그렇게만 해줘도 충분했겠지만) 한국에서 그렇게 교육했었다가는 아마 아무도 졸업을 못했을 것이다^^
일단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처음 SIAI 설립 때부터 약속한 게 있으니까 나도 책임을 진다는 생각에 오는 2025학년도 가을학기 입학 희망자를 대상으로 올 봄에 2~3달 과정의 선수 학습 과정을 개설할 계획이다. 누군가는 유럽 애들보다 더 뛰어난 졸업 논문을 쓰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위의 모 반도체 기업 재직자처럼 회사에서 지원 받아서 박사 과정을 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SIAI 교육 덕분에 '인생 역전'해서 재직하는 회사의 등급, 연봉, 회사 내의 대접이 바뀔 것이다. 졸업장을 액자에 끼워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니겠지.
또 누군가는 그걸 부러운 눈으로 쳐다만 보고 있을텐데, 저 선수 학습 과정을 듣고 누군가는 그렇게 '인생 역전'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