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 푸르밀 사업종료 사태로 본 기업 오너의 책임

45년차, 2,000억대 매출액 기업의 갑작스러운 폐업 신 회장 일가에 비난이 쏠리는 이유, 2007 대선주조 ‘먹튀’사건 B2C 사업, 소비자 이미지를 잃는 순간 결국 폐업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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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푸르밀’ 관련 키워드 클라우드/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롯데 4남 신준호 회장이 운영하던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전 롯데우유)이 17일 사업종료와 전 직원 대상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한 푸르밀 직원이 회사 폐업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을 남기고 누리꾼들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글에는 잘 나가던 제품이 몇 년째 매출이 계속 빠지면서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도 점차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는 내부 사정이 담겨 있었다. “이리저리 치이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문을 닫는다”, “참 많이 아쉽고 슬프다”는 글에는 기업을 사랑하는 한 직원의 애환이 담겨 있어 글을 읽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진=푸르밀 페이스북

모든 적자 원인은 오너 경영의 무능함

푸르밀은 지난 2018년부터 롯데가(家) 4남인 신준호 회장과 신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공동 대표로 취임해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영업 적자로 돌아섰다. 2009년 남우식 대표 선임 이후 2017년까지 연간 2,000억대 매출액과 수십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신 회장 일가가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영업이익률이 나빠졌다는 것이 푸르밀 노조의 주장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모든 적자 원인이 오너 경영의 무능함에서 비롯됐지만, 전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사측은 2018년 15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래, 코로나-19의 여파로 매년 적자 폭이 심해져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113억원, 123억원의 적자를 보면서 더 이상 영업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올해 적자 폭도 100억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의 목적이 영업이익을 내는 것인 만큼, 영업손실이 수백억대로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 직원과 소비자를 위해서 회사를 계속 운영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같은 특단의 대책을 찾아보기도 했고, LG생활건강에 매각도 추진했다며, 사측에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LG생활건강은 푸르밀의 매출액이 2,000억원이 넘는 만큼 마지막까지 인수를 타진했으나, 노조 측에서 생산공장 인력뿐만 아니라 사무직 인력까지 고용승계를 요구하자 무리한 인수라고 판단 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노조 측은 사실 확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한 상태다.

위의 상황을 놓고 일각에서는 신 회장 일가가 과연 최선을 다했냐는 질문이 나온다. 더 이상 운영해봐야 손실이 가중될 것으로 보이니 이쯤에서 사업을 접자고 생각했다가, 회사 매각이 여의치 않자 아예 폐업 절차를 밟는 식으로 오너 일가의 이익만을 놓고 생각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 17일 ‘푸르밀’ 관련 키워드 네트워크/출처=㈜파비 데이터 사이언스 연구소

부산시민 사랑 이용한 3,000억 먹튀

부산 일대에서 푸르밀의 매출액은 전국 타지역 대비 압도적으로 낮다. 주원인은 신 회장의 2007년 대선주조 매각 사건 때문이다. ‘1도(道) 1사(社) 소주’ 제도 덕분에 부산 일대에서 사실상 독점 소주 판매업자 지위를 누려온 대선주조는 오너 일가의 방만 경영으로 상장폐지 후 폐업 절차를 밟았다.

그렇게 공장만 남은 회사를 2004년 당시 대선주조의 주주였던 최 회장의 사위인 롯데그룹 4남 신준호 회장이 600억원에 인수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부산에서는 부산의 대표 기업인 롯데에서 대선주조를 인수해 부산의 자존심인 ‘시원(C1)소주’ 기업을 살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신 회장은 3년 후인 2007년에 코너스톤에퀴티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에 무려 3,600억원에 지분을 전량 매각한다. 부산 시민들의 사랑을 이용해 3,000억원의 ‘먹튀’를 했다는 악명이 돌기 시작한 첫 사건이다.

신 회장은 대선주조 운영 중에 형인 신격호 회장과 경기 인근의 토지 소유권 분쟁을 벌이고 패소하면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과 척을 지게 된다. 롯데칠성음료의 지원이 빠져나가게 된 계기다. 이어 3,000억원 차익 중 일부가 대선주조 주식을 저가로 매입했던 신준호 회장 아들, 딸, 며느리, 손자 등에게 배분되었던 사실이 국세청 조사로 알려지며 부산 일대의 여론은 더 나빠졌다. 당시 신준호 회장은 대선주조 주식 인수가 경영 전략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으나, 손자의 나이는 고작 2세였다. 코너스톤은 대선주조에 대한 부산 민심 악화로 시장점유율을 잃다 결국 2011년에 부산·경남 지역의 조선 부품 전문 기업인 BN그룹에 1,670억원에 매각된다. 이 와중에도 신준호 회장은 코너스톤의 보유지분 중 500억이 자신의 채권인데 저가 매각이 될 경우 500억 회수가 불가능하다며 법정 소송을 내기도 했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오너 일가의 개인적 이득과 500억원어치 미회수 채권을 제외하고, 약 2,000억원 상당의 매각 이익이 푸르밀에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부산시민들은 “이미 우리 팔아서 3,000억 벌었는데, 굳이 우유 더 사줘야 하나?”, “어릴 때부터 다른 우유는 다 먹어도 롯데우유는 먹지 말라고 그랬다”며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사한 사건으로 1992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태로 수천 명의 기형아를 출산하게 만든 두산그룹의 OB맥주는 경상도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지다 결국 ‘카스(Cass)’로 알려진 해외 맥주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회사 폐업 위기를 탈출한 바 있다.

매각 예상하고 미리 퇴사해 수십억 챙긴 신 회장

한 부산 시민은 “푸르밀은 우유 아니라 구글보다 더 좋은 회사가 되어도 부산에서 안 써 줄 것”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미 민심이 떠난 것이다. 푸르밀의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차라리 남우식 대표 체제로 계속 갔었으면 신 회장 일가는 배당금만 먹고살았으면 되는데, 월급 주기 아깝다고 자기들이 하다가 망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실제 신 회장 일가의 비즈니스 결정을 외부인이 판단할 자격은 없으나, 경영권을 넘겨받은 이후 줄곧 영업 적자를 보다가 폐업 절차를 밟게 된 것에 노조 측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LG생활건강의 매각 협상 관련자가 밝힌 대로, 사무직 본사 직원들 고용 승계 안 하는 조건으로 위로금 명목의 인수대금 인상을 LG생활건강에서 받아들였으나 신 회장 일가가 매각 가액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SPC와 접촉했던 점과, 신 회장은 매각을 예상하고 2021년 말에 퇴사하며 수십억원의 퇴직금을 챙긴 점 등에서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대선주조를 인수했던 BN그룹에서 대선주조 임원 전원을 데리고 나와 부산 일대에서 ‘3보1배’를 했던 것처럼 신 회장 일가도 고개를 숙이고 부산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전략을 취했어야 했지만, 시기를 놓치고 지나치게 욕심을 냈기 때문에 결국은 부산 일대에서 B2C사업을 할 수가 없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BN그룹은 당시 1,670억원의 인수 가액이 적정평가액인 750억원 대비 2배 이상의 고가라는 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 시민들의 자존심을 위해 대선주조의 경쟁사인 무학의 인수를 막기 위한 가격이었다는 마케팅으로 부산 시민들의 마음을 돌렸다. 당시 무학의 인수 제안가격은 1,200억원에서 1,400억원 사이로 알려져 있다. 즉, 최소 200억원 이상의 마케팅 비용을 인수 가액으로 써서 부산 시민의 마음을 돌린 것이다. B2C 사업은 결국 소비자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을 담보로 한 ‘먹튀’를 저지른 기업가의 끝을 보고 있는 셈이다.